설교

음행, 간음, 이혼, 재혼

이 글은 이혼과 재혼 규정에 관한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논점 차이를 밝힌 글이다. 우선 마가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에 장가 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 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 이것이 여성에게 불리해 보이는 이유는, 남성이 새 여자와 재혼을 했는데도 그 영향이 이전 아내에게 미치는 반면, 여성이 재혼을 한 경우엔 이전 남편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이는 ‘간음’에 대한 판정 문제 때문인데, 어찌하여 남성이 여성을 버리고 새 여자와 재혼을…

“사람을 낚는 어부ㅡ”라 하신 적이 없다

이 글은 전문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을 위해 쉽게 쓴 글이다. 전공자나 신학적인 기반이 좀 있는 독자의 경우 신학적 문제가 작동한다면, 보다 전문적으로 쓰인 이 글까지 읽어야 한다.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ㅡ” 이 말씀은 아마도 우리 모두에게 가장 익숙한 성경구절 중 한 말씀일 것이다. 그러나 미안한 말이지만 원래에는 “사람을 낚는 어부” 라는 말이 없다. 사람을 어떻게 낚는단 말인가. 단지, 할리에이스 안트로폰(ἁλιεῖς ἀνθρώπων), “사람들의 어부들”이 되게 한다 하셨을 뿐이다. “사람을 낚는 어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는 이 과잉된 표현은 마치…

시므온(Συμεών)에 관한 기호와 해석

해석이란 무엇인가? 해석이란 길을 내서 걷는 일과도 같은 것이다. 나는 유년 시절에 생각하기를 사람이 오랜 세월을 살다보면 이 세상의 모든 길을(심지어 골목길까지) 한번쯤은 반드시 밟고 지나가게 될 것이라 여겼다. 그것이 헛된 망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쯤 인간은 누구나 매우 한정된 길과 공간을 맴돌다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언어도 마찬가지이다. 무수히 많은 지식을 접하고 경험하고, 무수한 지식을 재가공해 발화하지만 그 형식이 실은 제한된 길만큼이나 한정되어 있다. 무수히 많은 동사가 있지만 ‘나’, ‘너’, ‘그(들)’ 따위의 한정된 인칭에 막혀 그 동사가 지닌 경험들은 간소화되고…

누가복음의 “가정불화” 본문주석

    신약성서에 나오는 ‘가정불화’ 본문은 두 가지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둘은 같은 어록(Q)이지만 다르게 다루고 있다. 이 글은 누가복음 중심의 주석이다. 우선 마태의 본문부터 볼 필요가 있다. “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마태복음 10:34-36. 다음은 누가의 본문이다. “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50…

누가의 ‘주기도문’은 마태와 어떻게 다른가

    이 글은 누가의 주기도문이 마태의 주기도문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정리한 글이다.   1) 주기도문은 부적인가? 얼마 전 미국 플로리다주 펜사콜라 시의회 회의장에서 어떤 자가 사탄을 소환하는 기도를 하자 주변에 있던 크리스천들이 주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주기도문이란 이 같이 악령을 내쫓는 부적 내지 주문의 기능을 하는 기도문인가? 마태복음은 예전(liturgy)으로 쓰기에 더 적합한 정형을 이루고 있지만, 누가복음의 주기도문은 그 기도문의 유래를 밝히는데 주력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임을 우선 일러둔다. 이 글에서 그것을 요약할 것이다.   2) 세례 요한이 제자에게 가르쳐준…

바울이 받은 ‘아포칼립시스’(ἀποκάλυψις, 계시)

    바울은 살아생전에 평생을 정체성에 시달렸다. 그가 과연 사도인가? 라는 문제인데 자고로 사도라 함은 두 가지 요건 즉, 실존 예수의 목격자이면서 그분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실이 있어야 하는데 그에게는 베드로나 주의 형제 야고보 같은 이렇다 할 증거가 없었던 것이다. 이 사도성(apostleship)문제는 복음 전도 때 겪는 일반적인 장벽과는 별개로, 그가 전하는 복음의 정통성 문제로 비화되기 일쑤였다. (바울 자신은 자기가 전하는 외의 복음을 ‘다른 복음’이라고 불렀지만 다른 복음 입장에서는 그의 복음이 ‘다른 복음’이었기 때문이다.) 좀 엉뚱하지만 이런 상상을 해봄직하다. 왜 바울은 네…

완벽한 구원―칭의(“의롭다 하다”)

    근간에 기독교인의 타락을 알리는 잦은 소식으로 공연히 ‘칭의’의 교리가 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의 구원이란 중생과 변화를 수반하기 마련인데 구원 받은 자가 어찌 저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구원의 진리인 칭의는 구원된 신분을 표지하는 정의이지, 그 개개인의 윤리를 표시하는 지표가 아닙니다. 칭의(δικαίωσις, 동사 δικαιόω /의롭다고 하다)라는 단어는 본래 바울이 하나님께서 예수님 믿는 사람들에게 이루신 결과를 표현하기 위해 들여온 용어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바울이 혼자서 창작한 용어가 아니라 신명기 25장 1절에 근거한 어떤 명제에 기인하는 용어라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행동’ 자체

    * 성령을 어떤 추상적인 ‘덩어리’로 여기는 막연한 전제가 있기 마련이나 그 영의 실체는 ‘행동’ 자체임을 주석. 우선 다음 본문을 유념할 것이다.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ㅡ(롬 8:13-14)고 했을때, 14절을 이렇게 번역하면 훨씬 더 좋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만큼 하나님의 아들들이(기 때문이)다ㅡ” ὅσοι γὰρ Πνεύματι Θεοῦ ἄγονται, οὗτοι υἱοί εἰσιν Θεοῦ. *대부분의 역본에는 관계형용사 ὅσοι가 덜 반영되었다. 관계형용사를 유의하여 8장…

우리가 아버지를 ‘아는’(ἔγνω) 원리

    * 이글은 우리가 ‘아버지를 안다’고 했을때 그 ‘아는’ 방식에 관해 쓴 글이다.     사진으로 보니 제법 광택이 나지만 실물은 볼품없이 낡은 30-40년이 족히 넘은 시계다. 30여 년 전에 아버지께서 새 시계를 차면서 이걸 금고에 재워 두는 것을 내가 어느 날 보고서는, “아버지 그 시계 저 주세요.” 했더니 어린 나에게 선뜻 내줄 정도로 당시에도 낡은 시계였다. 근 10년을 손목시계 없이 살다가 오랜만에 차니까 좋다. 매우 낡았는데도 좋다. 아버지 것이니 좋다. 아버지는 범인(凡人)의 삶을 살다 가셨는데도 (낡은 시계가) 참으로…

내가 믿는 신으로 과연 구원 받을까?

    내가 청년 때에 예수님을 처음 영접하고 나서 여러 변화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당시 홍대 근처에서 살고 있었는데 홍대 앞에서 강남역에 갈 때에는 항상 47번 좌석버스를 타고 다녔다. 이 버스가 얼마나 드물게 오는 지, 47분 만에 한 번 오기 때문에 47번 버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예수님 믿고 생긴 변화란, 집을 나서면서부터 ‘하나님, 버스가 와 있게 해주세요…’ 하고 중얼거리면서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것이었다. 어떤 날은 신기하게 버스가 짠ㅡ 하고 대기하고 있기도 하고, 어떤 날은 10분만 기다리면 되기도 하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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