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바르트의 하박국 2장 4절 주석

칼 바르트의 하박국 2장 4절 주석

 
 
칼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1919년)은 기독교 역사를 바꾼 30대 사건 중에 하나로 꼽을 정도로 센세이셔널 한 저서이다. 칼 바르트를 세상에 알린 이 책은 한 마디로 ‘초월적 하나님’ 앞에서의 ‘유한한 인간’인 자신의 고백이기도 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그 자신이 스위스의 초라한 탄광촌 사펜빌(Safenwil)에서 전혀 존재감 없던 목사였던 까닭일 것이다. 20세기 초 유럽이 ‘하나님의 초월하심’을 잊어버렸을때, 칼 바르트의 이 새로운 정의는 기독교와 교회의 진정한 위치를 각인시켰다. 어떤 사가는 이르기를 ‘기독교 신학자들의 놀이터에 떨어진 폭탄’이라고도 한 바 있다.

이 글은 그 책 가운데서도 칼 바르트가 말하는 로마서 주제로서 다름 아닌 하박국 2장 4절에 대한 주석 부분이다. 의역을 하였으나 그의 독특한 문장의 각을 살리기 위해 직역을 살렸으므로 문맥을 잘 음미해가면서 읽으면 좋을 것이다. 인용이 끝난 다음에는 약간의 해제를 달았다.

gods-answer-no

“스스로 심판대 아래 납작 엎드리는 자를 구원할 만한 다른 의(義)는 없다. 그런 이는 스스로 두려워할 줄도 알고 희망에 거할 줄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살아남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이생의 헛됨을 깨닫고 있다. 썩어가는 가운데 썩지 않을 것에 대한 기대가 없이는 결단코 가망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참된 삶이 아니고서는 결단코 가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참된 삶의 기대는 거기서 나오는 것이다.

바로 이 위대한 ‘가능성’이 그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하찮은 가능성이 추구하는 목적과 종말을 일러주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한결같음(미쁘심)이라고 말하든지, 혹은 사람의 믿음이라고 말하든지, 그 둘은 사실상 같은 것이다.

예언자의 언어들은 이미 이 쌍방향 지점을 지목해왔다.

그것은 바로 예언자들의 “안돼”(NO)라는 말들 속에서 도망칠 수 없었던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하나님의 ‘한결같으심’이다.

하나님 거룩한 그분 한분, 그분은 다시 말해 ‘모든 나머지 전부’(the altogether Other)이시다.

그것은 우리가 만나는, 바로 그 “안돼”(NO)를 인정하는 이들의 경외심과, 바로 그 부정하심 속에서 오는 공허함(void), 꿈틀거림(move), 지체됨(tarry), 그 모두를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만의 경외감 안에서 만나게 되는, “인간의 믿음”이다.

하나님의 한결같으심(faithfulness)과 사람들의 충실함(fidelity)이 부딪히는 ― 부정적 의미의 부딪힘 ― 그곳에 그분의 의(義)가 나타나 있다. 그곳이 의인이 사는 곳이다. 이것이 바로 로마서의 주제이다.”

해제:

이것은 로마서 1장 17절에 나오는 하박국 선지자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합 2:4) 라는 말씀에 대한 칼 바르트의 주석이다.

그의 문장들을 살펴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칭의론 뉘앙스와는 많이 다르다. 특히 믿음의 기원을 NO! 라는 부정형에서 산출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그는 구원 받을 사람은 준비된 자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부각하고 있다. 심판대 아래 스스로 부복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부패 속에서 썩지 않으려고 애써야 한다고 하고 있다… etc 반드시 그러한 (부정적) 기대감에 상당한 준비가 이미 되어 있는 자여야 한다고 역설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가 말하는 의는,
(1) “있다”도 아니고, (2) “나타났다”도 아니다. (3) “나타나,” “있다”에 가깝다.

이들 셋은 다음과 같은 차이이다.

(1)은 원래부터 완성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2)는 난데없이 갑자기 나타난 걸 말한다. 그러나 (3)은 원래부터 있던 것이 비로소 드러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바르트의 주석은 (3)항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

칼 바르트는 말한다. 예언자들이 줄기차게 외쳐댔던 “안돼”(NO)라는 언어 속에서만 하나님의 미쁘심, 한결같으심, 충실하심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가 말하는 <믿음의 기원>이다.

끝으로 “God the Holy One, the altogether Other.” 라는 문장은 “하나님 거룩한 그분 한분, 곧 그 모든 나머지(다른) 전부”라고 직역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결국,

“하나님의 모든 ‘안돼!’(No)라는 응답은 사실상 단 한 개의 ‘그래!’(Yes)인 것이며, 또한 그 모든 ‘그래!’(Yes)라는 응답 속에는 ‘안돼’(No)라는 단 한 개의 하나님 응답이 들어 있다”

라는 파라독스로 그는 설명한다.

 

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University Lecturer | 저서: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도상해석학과 신학의 지평융합: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후 해체시대의Post Secular 새교회 새목회 (2013). | Fb/@pentalogia Twtr/@pentalogia | You can add my to your circles. 로 연결해 보세요. 개인블로그

Comments

comments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Left Menu Icon
Mi Moon (美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