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가 아무리 튼튼해도, 나뭇대 허리가 아무리 굵어도, 가지와 잎이 너무 무성하면 부러지고 마는 것을 보았다.
차라리 허리가 가늘고 길되 가지와 잎은 꼭대기 언저리에 적당한 갯수와 부피로만 있거나 – 바닷가의 소나무들처럼 – 아니면 아예 가지와 잎이 산들산들 있거나…

잎만 무성하면 가지가지를 멍청하고 어정쩡한 굵기로 만들며, 그 어정쩡한 가지들이 허리 비례에 안맞게 비대해지거나 가지수만 많아져, 바람이 셀 때 여지없이 허리를 두 동강내고 만다.
인간의 경우는 정 반대다. 신체의 뿌리는 머리이다. 왜냐하면 발이 뿌리일 리는 없으니까. 플라톤이 말하지 않았던가.
머리의 생각은 길고, 굵고, 미세할수록 그 신체를 튼튼하게 하지만, 상대적으로 손과 발이 지나치게 무성하여 쓸데없는 일들에 손을 대고, 쓸데없는 길로 다니게 되면, 이 역시 그 몸통을 두 동강내기 일쑤다.
중심축이 없는 헛된 손놀림 하도록 만드는 자들과 이 길 저 길로 끌고 다녀 허리를 결단나게 만드는 자들을 주의하라.

“약간 하위 신들이 인간의 몸을 만들 때 머리를 어떻게 만들지 선택해야 했다. 머리를 보다 견고하게 만들어 사유 능력은 떨어지더라도 수명을 길게 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아주 약하게 살짝 덮어씌우기만 하여 보다 높은 수준의 정신생활을 영위하도록 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가운데 후자를 택했다. 간장(肝臟)이 비록 낮은 곳에 위치해 있지만 어떤 고상한 생각을 반영하고, 십이지장도 그 길이가 길어 식사 시간을 오래 소요함으로써 결국 충분히 명상에 잠길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제공한다. 역시 이런 면에서 신체의 최고 정점은 그 직립이다. 천공의 모형인 둥근 머리를 위로 치켜든 인간은 식물처럼 땅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 천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플라톤)

오늘 학교 강의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이번 태풍(볼라벤)에게 맞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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