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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슈아. 최근 고토신학을 추종하는 이들 중심으로 예수가 아니라 예슈아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급부상하고 있어 몇 가지 유념할 것들을 급히 정리하였다.

예수를 버리고 예슈아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근거는 다음 포스터에 잘 요약된 것 같아 우선 옮겨왔다.

예슈아
예슈아로 호칭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들

그러면 상기의 주장이 왜 빈약한 근거인지 설명해 드리겠다.

다들 익히 알다시피 예수는 여호수아(יהושוע)에서 유래하였다. 그러나 여호수아의 본명은 호세아(הושע)였다(민 13:8). 호세아가 여호수아가 된 것은 모세가 그렇게 불렀기 때문이다(16절).

여호수아(יהושוע)를 음가 대로 읽으면 ‘예호슈아’인데 희랍어 성서는 Ἰησοῦς(이에수스)라 기록하였고, 이것이 라틴어로 Iesus(이에수스)가 되었으며 ‘I’가 영어로 오는 과정에서 Jesus가 되었다. 우리말로는 선교 초기 야소(耶蘇)라 불렀으나 예수라는 본래의 음가로 개정되었다.

그렇다면 예슈아는 어디서 온 말인가.

그것은 예수를 현대 히브리어로 다시 치환시켜 얻은 말이다. ישֵׁוּעַ (예슈아)

사실 야소(耶蘇)라 불러도 랑그에 아무 변화 없듯이 빠롤을 예슈아로 쓰는데는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부르는 본인들이 좋다는데.

그러나 그 랑그를 뒤집어 가공하려는 것은 큰 문제이다.

한 마디로 예수는 ‘저주 받은 자’라는 뜻이므로 거짓 이름이라는 주장이며, 그렇기에 예슈아‘만’ 진짜 이름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예수 그 이름이 ‘저주 받은 자’라는 전통은 역사적으로 3단계에 걸쳐 이행되어 왔다.

1) 유대인들이 그렇게 가르쳤다. 신명기 법전에 따르면 나무에 달린 자는 메시야가 될 수 없다는 근거에서이다(이들에게 법은 예언이다). 실제로 그 주장은 타당한 것이었다. 실제 저주 받아 죽었기 때문에. (참조. 신 21:23)

2) 이 가르침을 뒤집은 것이 바로 바울이다. “그렇다! 신명기 법전 대로 그는 저주 받아 죽은 자가 맞다!”라는 케치프레이즈를 통해 그 자체가 복음이 되었다. 단, 그 저주는 우리 죄 때문에!―라는 핵심의 복음이다. 역사적 바울은 ‘전도’라는 무식한 방법 하나로 이 슬로건을 복음으로 관철시키고 만 것이다.

3) 마지막 단계에는 그리스도교께서 세계를 평정하면서 안티세미티즘(반 유대정책)의 피해를 본 유대인들이 예수라면 치를 떨게되어 위 1단계 전통을 철저히 재생 교육시켜옴으로써 그 전통을 자신들의 게토 중심으로 관철시켰다는 사실이다. 현대 히브리어 사전에 예수=저주 받은 자, 등재되었다나?

그렇다보니 메시아닉 쥬(예수 믿게 된 유대인)에게는 예수라는 이름이 신성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미주 메시아닉 쥬 중에는 제우스[Zeus]가 연상된다고 Jesus를 싫어한다고.)

여기에 자기들 나름대로 고토신학을 선호하는 와중에 한국인들 중심으로 ‘옛 것은 좋은 것이야ㅡ’ 라는 막연한 신토불이 사상이 덧씌워진 웃지 못할 사태까지.

Jesus가 사전에 ‘제기럴!’로 등재된 게 과연 Jesus 잘못인가? 숙고해야 할 일이다. 오마이갓, 갓땜처럼 지저스 크라이스트를 내뱉어온 어군의 잘못일 뿐이다.

다음을 유념해야 한다.

1. 호세아에서 모세를 통해 여호수아로 변화를 겪은 이름 여호수아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모세/율법의 예언에 ‘나 같은 선지자’(신 18:15, 18)를 세운다 하였는데 그는 여호수아였으며, 초대교회 설립자들은 이 예언을 적극 수용했다는 사실.
(예언으로서 율법은 예언서 라인과는 또다른 차원의 예언 라인이라는 사실 유념)

2. 예수 시대에 예수라는 이름은 너무나 일반적 이름이라서 인기가 없었고(요즘 같이?), 십자가 사건 이후에는 예수를 믿거나 안 믿거나 모든 사람에게 회피된 이름이었다(요즘같이?). 저주 받은 자의 이름이었기 때문에.
버려진 이름 예.수.

3. 야웨 신앙의 기원은 히브리 전통이 맞지만 헬레니즘은 이 전통을 세계로 파급시킨 중요한 물결이었다는 사실을 유념할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 문화를 표명하는 용어 헤브라이즘은 엄밀한 의미에서 헬레니즘을 포함하는 용어이다(서양 문명 사조를 ‘헤브라이즘’, ‘헬레니즘’ 둘로 나눈다면서도).
가령 히브리어에서 헬라어로 번역된 구약성서인 셉투아진트는 조그마한 히브리인들의 문명이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는 터미널 역할을 한 중차대한 문헌인데,
신약성서에서 언급되는 ‘성경(에)’라는 말은 바로 이 성경을 두고 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신약성서의 저자들이 거의 다 이 희랍어로 된 구약성경을 참조하여 신약성서를 써나갔기 때문이다.

4. 예수 만큼 중요한 어휘 ‘크리스토스’(Χριστός)는 신약성서의 저자들이 지어낸 말이 아니라, 히브리어 ‘메시아’(마쉬아흐/(מָשִׁיחַ), 렘 42:2)를 이 셉투아진트에서 크리스토스로 번역된 것을 가져온 말인 것이다.

5. 그렇다면 ‘예슈아 크리스토스’ 할건가?
아니면 예슈아 마쉬아흐? 아예 히브리어로 다바꿔?

6.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 터지는 소리는 히브리어가 아닌 희랍어 즉 헬라어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 손가락이 아닌 태양을 볼 것이며,
* 심볼 보다는 에쎈스를,
* 기호 보다는 기의를… 살필 것이다.



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Twtr |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주임교수 | 파워바이블 개발자 | 저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2017), 영혼사용설명서 (2016),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논문: 해체시대의 이후의 새교회 새목회 (2013), 새시대·새교회·새목회의 대상 (2011), 성서신학 방법에 관한 논고 (2011). 번역서: 크리스티안 베커의 하나님의 승리 (2020). | FB | Twtr | 개인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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