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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꿈과 해석에 관한 기독교인의 바른 이해를 위해 쓰는 연재 글이다.

 
 
 
지난 월요일 수업 시간에 구약의 예언자 특히, 예레미야나 에스겔과 같이 당대에 친일파 소리 들었을 ― 그들은 친 바벨론파였다 ― 예언자들의 삶과 예언 그리고 성취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4년여 전에 꾸었던 꿈 이야기를 했다.

그 꿈에 대한 당시 해석을 일체 말해주지 않고 그 꿈에 대해 소상히 그림까지 그려가며 소개했다.

그러자 꿈과 성취에 대한 체험을 꽤나 했을 법한 학생들의 해석들이 나왔다.

주된 해석은 내 꿈에 나오는 피가 나쁜 것이냐 좋은 것이냐로 집약되었다.

피는 좋은 의미인가? 나쁜 의미인가?

아래 당시의 그 꿈 내용과 해석을 보면 알겠지만,

나는 교회를 나쁜 교회와 좋은 교회로 상정하고 있다.

지금은 좀 생각이 바뀌어 있다.

나쁜 교회, 좋은 교회가 어디있겠는가?

그렇다면 꿈이 바뀐 것인가? 해석이 바뀐 것인가?

해석은 유동적일까?

꿈과 해몽의 대가 요셉의 이야기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그 해석한 대로 되어 나는 복직되고 그는 매달렸나이다”(창 41:13)

요셉의 꿈 해몽을 받았던 두 관리 중 살아남은 관리인 술 맡은 관원장이 하는 말이다.

여기서 정확히는 ‘그가 해석한 대로ㅡ’이다.

이 대목을 70인역 번역자들은 συνέκρινεν라는 Aorist를 사용하고 있다.

그가(요셉이) 해석했던 것이 지금도 ㅡ 그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회고하는 시점까지도 ㅡ 열려있는 상태인 것이다.

현재는 그가 해석한 대로 열려있는 것이다.

해석과 예언은 하나님의 예정을 알아 맞추는 것일까?

우리가 해석한 대로 하나님께서 실행해나가는 것일까?

예레미야나 에스겔은 신통력을 소유했다기 보다는 당시의 정세를 읽어냈고 그것이 맞아떨어졌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에스겔, 제2이사야의 예언 대로 움직였다고 보면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요셉의 꿈과 그의 해석 대로(συνέκρινεν) 실행하신 셈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미래를 알아 맞추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현재를 실행하시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저 70인역 번역가의 문법 Aorist의 의미 아니겠는가?

내가 4년 전에 꾼 꿈의 해석은 여전히 열려있는 것이다.

 

interpret_20120507
2012.5.1의 꿈

2012년 5월 7일

지난 5월 1일에 꿈을 하나 꿨습니다.
그러나 해석이 완결되지 않아 그림으로 남겨두었었습니다.

사각의 두 방이 있는데 하나는 작고 하나는 직사각형의 방입니다.
분명 겹쳐있습니다. 둘 모두 교실 같이 생겼는데 꿈속에서 나는
저 두 방은 두 교회임을 명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한 방에는 두 남녀가 있고 아기를 안고 있습니다.
다른 한 방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방을 둘러서 있습니다.
모두 한 줄로 줄을 서서 들어오다가 둘러서 있는 것입니다.
이들 중 한 쪽 부류의 사람들은 성분이 좋은 사람들입니다.

교탁과 같이 생긴 중심에는 한 명의 우두머리와 리더 그룹이 있는데
깡패집단 같기도 하고 공산당원들 같기도 했습니다.
두 부류 중의 성분 좋은 사람들의 얼굴이 다른 한 편보다 밝았지만
무서워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둘러선 사람들 중 대각선 방향에 있는 사람 하나를 사살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작은 방에 있는 두 사람은 부부인 것같은데 여성분이 나에게
아이의 세례를 부탁합니다.
아이 머리에 먼저 손을 얹어 안수를 해주는데
바닥이 발목도 안되는 물이 고여 있다가
이내 아이의 몸을 담글 수 있을 정도의 물 깊이가 된 것같습니다.

세례를 주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침례입니다.
애의 머리 부분을 감싸 담갔다가 올렸는데
물에는 아이의 머리에서 흘러나온 듯한
피가 옅게 퍼졌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꿈에서 이미 교회라고 지각을 했기 때문에
이것은 두 종류의 교회라고 생각은 했습니다.
그리고 한 쪽 교회는 나쁜 이미지상이라고도 알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 두 방의 연관성,
더 구체적으로는 나와의 연관성을 연결 지을 수 있는 그 무엇을
못찾았었습니다.

마지막 해석을 난해하게 했던 것은
두 방이 명확하게 대비를 이루어야 하는데
뚜렷한 대비에 교란이 있어서였습니다.

다른 작은 방의 교회가 더 좋다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
피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작은 방이 큰 방보다 분명히 더 좋기는 좋은데
왜 세례 받은 아이 머리 뒤에서 피가 고여 나왔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제 주일 성만찬 예배 후
다함께 식사를 하고나서 대화 하면서 이 꿈 얘기를 나누다가
세례 풀에서 본 피의 느낌이 어떠했느냐는
물음 속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확정 지을 수 있었습니다.

(1) 두 방 모두 사각이며 크고 작은 대비
(2) 두 방에 모두 사람이 있었으나 가족과 공포집단의 대비
(3)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대비,
이건 내가 대비로 발견하질 못했던 것인데,

두 방에 모두 피가 있었던 그 자체입니다.
피뿐만 아니라 죽음도 각 방에 있었다라는 겁니다.
세례 풀에서 본 피의 느낌이 어떠했느냐라고 했을 때,
나는 ‘피’라는 자체에만 경계를 한 나머지 해석이 교란을 받았는데,
세례 풀에서의 피는 결코 나쁘거나, 두렵거나, 다른 방의 피처럼
혐오스럽거나 하질 않았다는 점에서
이것은 생명과 연결된 것이라는 제안에 동의 안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대비가 적어도 세 쌍 이상의 구조를 이루고 있는데다가
모두는 일반적 대비지만 그 중 딱 한 가지 바로 그 피/죽음 대비에서
강한 해석학적 기도(plot)를 밀고 들어오기에
계시성에까지 충족시켜 주었습니다.

이 계시의 적용에 있어 처음엔

내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교회상(像)들일까 {과거}
이 두 교회상 중 어느 하나가 미문교회라는 것일까 {현재}
아니면 앞으로 저런 집단으로서가 아닌 이런 교회를 추구하라는 것일까 {미래}

셋 가운데 3항 즉,
전자 두 개항은 대단히 세속적인 적용으로써
세상에서 통용되는 그것들과 다를 바가 없으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언에 직면하는 마땅한 태도 곧,
미문(美門)교회에 대한 <앞으로의 명령>으로만 결론을 맺습니다.

가족같은 교회 구성원 모두에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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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우리는 하나님의 미래를 알아 맞추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현재를 실행하시려는 경향이 있다.

 
 
 


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Twtr |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주임교수 | 파워바이블 개발자 | 저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2017), 영혼사용설명서 (2016),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논문: 해체시대의 이후의 새교회 새목회 (2013), 새시대·새교회·새목회의 대상 (2011), 성서신학 방법에 관한 논고 (2011). 번역서: 크리스티안 베커의 하나님의 승리 (2020). | FB | Twtr | 개인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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