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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Heidelberg Catechism)’이 동성애자 탑압위해 조작되었다니?

Heidelberger Katechismus von 1563

제목을 적어놓고 보니 좀 그런데, 한 4년전에 페이스북에서 답글을 하나 적어둔 것에 ‘좋아요’가 튀어 올라와 기억이 새롭게 돋아나 한 번 옮겨볼까 한다.

PC로 보이는 한 사람의 글이 다음과 같이 올라와 있었다.

성경문자주의자들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조작:
동성애자 문제와 관련해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라틴어 판본은 1563년에 출판되었는데, 루터신학 대신 개혁신학을 받아들이기 위한 것이었다.
문제는 87항에 구원받지 못할 자들의 목록에 “동성애자들”을 포함시킨 것은 1962년판부터였다는 사실이다. 원문에도 없었으며, 독일어판, 네델란드어판, 영어판본에도 없었던 단어를 1962년 판본에서 슬쩍 끼워넣은 것이다.
이것은 물론 1961년에 New English Bible을 출판하면서 고린도전서 6:9에 “동성애자”를 넣은 것과 직결된다.
제임스왕의 흠정역을 보면, 동성애자는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9] Know ye not that the unrighteous shall not inherit the kingdom of God? Be not deceived: neither fornicators, nor idolaters, nor adulterers, nor effeminate, nor abusers of themselves with mankind,
그러나 개역한글, 표준새번역, 공동번역까지 모두 동성애자들(남색)로 번역해놓았다.
개신교인들이 신주단지 모시듯하는 <요리문답>을 조작하는 것만이 아니라 성경본문을 왜곡하는것이 이리도 쉬운 일이었다니!

그래서 여기에 대해 이런 답글을 달아주었다.

독자에따라 좀 어려울 수 있겠지만 보관해두었다가라도 양자를 한 번 비교 정독해보시길 권한다.

말라코이는 부드럽다는 뜻의 형용사이며 남성형 복수로 쓰였습니다.
아르세노코이테스 중성 복수로 같은 종류끼리 학대(abusers of themselves with mankind)한다고 직역할 수 있지만 말라코이 보다는 명백한 성적 표현입니다.
문제는 말라코스에서 온 말라코이 즉 부드럽다는 뜻의 형용사인데(-코이, 남성복수로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번역자라고 가정할 때 부드러운 죄라고만… 직역해야 할지 아니면 앞뒤 단어 모두 성범죄 가운데 박힌 이 남성형 형용사로 지목하는 ‘부드러운 남자’는 명백한 동성애라고 의역을 해줘야 할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그것은 각 번역자의 몫입니다. KJV가 그렇게 번역했고 그 후발 번역들이 풀어 의역해줬다고 해서 나중 것들이 마치 특정인들을 음해하는 번역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도리어 이단은 의역에서 발생하기 보다는 직역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에 궁궐의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를 표현한 말라카의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 고전 6:9의 문맥상 앞뒤 성적 범죄 중간에 박힌 말라코이를 “궁궐에서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이라고 생뚱 맞은 번역일 수는 없듯이-)
가령 지금 이 포스팅에서도 “동생애 지칭 번역이 아니다”라고 논지가 전개됨으로써 “동성애”라고 한 기번역들에 대한 반동을 일으켜 동성애에 우호적인 ‘의역’이 발생하고 있는 뜻하지 않은 예시와 같습니다.

 
 
 
 


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Twtr |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주임교수 | 파워바이블 개발자 | 저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2017), 영혼사용설명서 (2016),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논문: 해체시대의 이후의 새교회 새목회 (2013), 새시대·새교회·새목회의 대상 (2011), 성서신학 방법에 관한 논고 (2011). 번역서: 크리스티안 베커의 하나님의 승리 (2020). | FB | Twtr | 개인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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