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개혁 세력들의 허구성―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

교회 개혁 세력들의 허구성―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

교회 개혁 세력들의 허구성―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

 
 
우리나라 교회 개혁이 한창인 것 같은데, 종교개혁 시대의 도상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
1. 한 거대한 물고기가 좌초해 있는 도상이다.

2. 네덜란드 화가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의 작품이다. 제목은 “큰 물고기는 작은 물고기를 먹는다.”(Big Fish Eat Little Fish, 1556)

Big Fish Eat Little Fish, 1556,  Drawings & Prints by Pieter Bruegel the Elder.

3. 제목대로, 크고 작은 수많은 물고기가 이 좌초한 거대 물고기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큰 물고기가 해변에 좌초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좌초한 것인지 아니면 포획된 물고기인지도 알 수가 없다.

4. 헬멧 쓴 남자 하나가 물고기 배를 커다란 칼로 가른다. 배를 가르니까 더 다양한 바다 생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이 도상의 배경이 되고 있는 ‘땅’, ‘공기’, ‘물’에는 온통 이상하고 환상적인 물고기로 채워져 있다.

5. 무엇을 말하는가?

6. 이 그림은 당대 교회의 좌초를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실은 종교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 한 시대의 좌초를 의미한다. 헬멧 쓴 일군의 십자군이 배를 가르며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자세히 보면 칼에 십자가가 그려져 있다.

7.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브뤼겔의 눈에는 이와 같은 종교·사회 개혁이 원만한 시각으로 비치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물고기가 새처럼 날아다니는가 하면, 발이 달린 물고기가 달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개혁은 이상하고 환상적인 다양성 속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8. 십자가가 새겨진 칼을 들고 물고기 배를 가르는 헬멧 쓴 남성은 전형적인 네덜란드 병사 복장이다. 이 과정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들은 물고기 수확물이라기보다는,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삼키고 있는 그 구조 자체에 대한 수확이다. 그것이 이 개혁의 도상을 기이하게 만들고 있는 주범이다.

9. 난파된 바다 괴물이 해변에 좌초된 모습을 그리는 것은 당시 르네상스의 한 알레고리였다는 점에서, 이것은 창세기에 등장하는 큰 바다짐승(창 1:21)으로부터 요나가 들어갔던 큰 물고기에 이르기까지, 리바이어던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뱃속에서는 요나가 아닌 ‘작은 물고기 속의 더 작은 물고기’라는 사슬 구조가 쏟아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몸집이 비대했던 단일 리바이어던이 여러 개로 개체화 되어 쏟아져 나왔을 따름인 셈이다.

10. 브뤼겔 시대의 거대한 교회가 좌초한 것 처럼, 오늘 이 시각 우리 사회의 교회도 좌초하였다.

11. 게다가 개혁을 한다고는 하는데 더욱 기괴해졌다.

12. 좌측의 한 남성은 배를 가르고 수확한 물고기를 나무에 포로 걸어 말리고 있다. 음식으로서 생선은 브뤼겔의 도상 속에서 사육제의 육류에 반하는 핵심 상징인데, 낚시를 해서 잡은 물고기가 아니라 남의 뱃속에 들어 있던 물고기라니… 그리고 가장 우측 해변의 낚시 하는 남성은 미끼가 역시 작은 고기이다. (종래의 구조를) 응용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의 복장은 수도사와 광대의 복장을 섞어 놓은 듯 하다.

13. 이 도상의 핵심 장면은 아마도 가장 전면의 쪽배 위에서 한 남자가 아들과 함께 뭔가 제스쳐를 취하는 장면일 것이다.
뭐라는 것일까? 해변 땅바닥에는 Ecce라고 씌어 있다. 라틴어 ‘보라’(Behold)ㅡ는 뜻이다.

14. 이 사람의 동작이 갖는 의미는 하단에 적힌 문장과 관련있다. 네덜란드어로 적힌 그것은 이런 내용이라고 한다.

“보라― 아들아. 나는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먹는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알고 있었단다.”

대문자로 적힌 이 구어체 고대 라틴 격언에 따르면 약자에 대한 강력하면서도, 본능적이면서도, 끊임없이 먹고 먹히는 그 무의미한 세계를 주제로 보여준다 하겠다. 게다가 그의 아들이 이 교훈을 이해했다는 사실은 배에서 또 다른 사람을 향해 “보라ㅡ” 하는 아이의 똑같은 제스쳐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 배 위의 다른 남자도 큰 물고기에서 작은 물고기를 추출하고 있는 것이다.

15. 참고로 이 그림의 연대가 1556년이라는 점을 상기했을 때, 아우스부르그 종교화의가 있던 해 바로 다음 해였다. 이 시기에는 개신교 중에서 루터파만 안전할 수 있었다. 다른 말로 하면 같은 개신교이지만 어떤 개신교는 안전할 수 있고, 어떤 개신교는 안전할 수 없는 기이한 시기였던 것이다.

16. 이 시대의 우리는 어떤 리바이어던에 감금되어 있는가? 아니, 이렇게 물어야지. 우리는 방금 어떤 리바이어던 뱃속에서 쏟아져나왔는가? 요즘과 같은 개혁이 개혁이라면 “큰 물고기는 작은 물고기를 먹는다.” 라는 말은 아래와 같이 바꿀 수 있을 것이다.

“큰 물고기 뱃속에는 작은 물고기들이 있다.”

좌초한 세습교회에서 고기들을 포획하는 방식은 우리가 이 시대에 가장 흔하게 목격할 수 있는 종교개혁의 한 형식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낚는 어부 복장을 하고서 좌초한 물고기 배를 갈라내서 썩기 직전의 물고기를 탐닉하는 행위에 견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 다음은,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기이하고도 환상적인 일들이
‘땅’, ‘공기’, ‘물’ 가운데서 일어날 차례이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대비할 수 있을까ㅡ.
 
 
 

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University Lecturer | 저서: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도상해석학과 신학의 지평융합: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후 해체시대의Post Secular 새교회 새목회 (2013). | Fb/@pentalogia Twtr/@pentalogia | You can add my to your circles. 로 연결해 보세요. 개인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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