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 란(亂)이 될뻔한 종교개혁

동학 란(亂)이 될뻔한 종교개혁

개혁과 혁명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제도로의 복귀 또는 제도로서의 복원에 달려 있을 것이다.

루터의 진정한 개혁의 자리(setting in Reformation)는 가톨릭과의 배타적 관계보다는 농민과의 관계에서 빛난다. 소작농은 루터의 개혁에 있어 든든한 하부 토대(플로레타리아트)였지만 루터의 과(過)를 말할 땐, 정작 이들의 혁명을 외면하였다고들 말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후들은 루터의 이름을 빌려 그들 가운데 약 6000명을 처형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 루터가 농민들에게 어떤 절절한 심정을 가졌는지를 헤아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루터가 직접 쓴 글을 다 읽지는 않고들 말하기 때문이다.

이는 종교개혁이 동학 수준으로 끝날 수도 있을 뻔한 상황을 방증한다.

어떤 한 혁명이 갖는 가치가 평가를 받는 것은 그 란(亂)의 후예들의 선전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혁명의 실질적 주체가 사회에 어떠한 덕을 끼쳤는지 그 덕의 가치로서 스스로 임하는 것이다. 이것이 후대에 개혁이라 명명된다.

마틴 루터가 가톨릭, 제후들, 농민들 사이에 끼어 있는 절절한 심정이 잘 드러나는 본문 일부를 번역해 옮기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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