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 란(亂)이 될뻔한 종교개혁

동학 란(亂)이 될뻔한 종교개혁

개혁과 혁명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제도로의 복귀 또는 제도로서의 복원에 달려 있을 것이다.

루터의 진정한 개혁의 자리(setting in Reformation)는 가톨릭과의 배타적 관계보다는 농민과의 관계에서 빛난다. 소작농은 루터의 개혁에 있어 든든한 하부 토대(플로레타리아트)였지만 루터의 과(過)를 말할 땐, 정작 이들의 혁명을 외면하였다고들 말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후들은 루터의 이름을 빌려 그들 가운데 약 6000명을 처형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 루터가 농민들에게 어떤 절절한 심정을 가졌는지를 헤아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루터가 직접 쓴 글을 다 읽지는 않고들 말하기 때문이다.

이는 종교개혁이 동학 수준으로 끝날 수도 있을 뻔한 상황을 방증한다.

어떤 한 혁명이 갖는 가치가 평가를 받는 것은 그 란(亂)의 후예들의 선전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혁명의 실질적 주체가 사회에 어떠한 덕을 끼쳤는지 그 덕의 가치로서 스스로 임하는 것이다. 이것이 후대에 개혁이라 명명된다.

마틴 루터가 가톨릭, 제후들, 농민들 사이에 끼어 있는 절절한 심정이 잘 드러나는 본문 일부를 번역해 옮기면 다음과 같다:

1. 여전히 친애하는 친구들이여, 사람들에게 복음 설교를 금할 뿐 아니라 견딜 수 없는 억압을 하는 제후들과 지주들이 받아야 할 상당한 보응을 하나님께서 바로 그들이 앉은 그 지위와 자리 아래 두었다는 사실을 내가 인정하고 있음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는 너무나도 진실이며 확실한 것입니다. 그들에겐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 역시 선한 양심과 정의로써 대의를 취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선한 양심을 보전한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고 여러분을 도우실 것이라는 그 위로의 특권의 자리를 여러분은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잠시 여러분은 최악의 환경과 사투를 벌일 처지였지만, 마침내는 여러분이 승리할 것이고 모든 성도와 여러분의 영혼은 영원토록 보전될 것입니다.

3. 하지만 여러분에게 공의와 선한 양심이 없다면, 그땐 최악이 되고 말 것입니다. 비록 잠시 동안은 이기고 모든 제후들을 죽일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결국에는 몸과 영혼을 영원히 잃고 말 것입니다. 이것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몸과 영혼을 영원토록 걱정해서 하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고려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도 심각한 것은 여러분이 얼마나 강하고,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틀렸는지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여러분에게 정의와 양심이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4. 그러므로 친애하는 형제들이여, 내가 부탁을 좀 하겠습니다. 온유하면서도 형제다운 방법으로 여러분이 하는 일을 부지런히 찾으십시오. 아울러 여러분은 그 모든 종류의 영과 설교자(선동자)들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사단은 많은 무질서와 살인의 악령들을 일으켜 세웠으니, 세상을 그것들로 채워버렸습니다.

5. 여러분이 하려고 하는 그 시도의 횟수만큼이나, 오로지 듣고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중에는 살인의 영혼에 중독된 이들도 있습니다. 그로인해 나를 미워하고 나를 위선자라 부를지라도 나는 여러분에게 빚진 진실한 권고를 아끼지 않겠습니다. 그건 나에 대한 걱정이 아닙니다. 여러분 가운데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과 정직한 사람을 하나님의 진노의 위험에서 구하는 것이면 나는 충분합니다. 나머지는 나를 더욱 많이 경멸하겠지만 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나를 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6. 나는 그들보다 크고 강한 분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나에게 시편 3편을 통해 가르치십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나 한 사람을 두고 싸웠지만 난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 신뢰는 그들의 신뢰보다 오래 지속될 것입니다. 나는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생략] ㅡLuther: Admonition to Peace. A Reply to the Twelve Articles of the Peasants in Swabia (1525).
(‘평화에의 권면: 슈바비아의 농민들이 채택한 12조항에 대한 대답’ 중에서)

악마의 백파이프인 루터(Luther as the Devil’s Bagpipes), 1535 by Eduard Schoen. 당대에 反 루터계에서 사용한 선전물에서 사용된 일러스트레이션.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혁명의 이름을 내 걸고 정권까지 잡은 자들이 루터와 동시대를 살았다면, 아마도 저 목판화 선전물 속의 주인공이 되어 있기보다는 저런 선전물을 만드는 주체에 더 가까웠을 것같다. 그 정도로 선전에 능한데다가 덕까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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