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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한 법정 앞에 세워진 정의의 상이다. 팔뚝상

정의(Justice)의 심볼로 세워진 동상은 대개가 여신상인데 이 동상은 기이하다. 여신은커녕 상반신·하반신도 없고 팔뚝만 있다. 게다가 이상한 말이 적혀 있다. “하늘이 무너져도 이 땅에는 정의를(???)”. 솟아날 구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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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지방법원 천안 지원

우리나라에서는 대법원을 포함, 주로 법정 앞에 정의의 여신상이 세워져 있지만 유럽에서는 교회, 학교에서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는 심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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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에 있는 이 여신은 아예 한국여자 단미(?)

이 여신의 이름은 본래 디케(Dike)이다. 디케는 그리스에서의 이름이고 로마에서는 유스티티아이다. (그리스의 디오니소스는 로마의 바쿠스[영/ 바카스], 아프로디테는 비누스[영/ 비너스], 제우스는 쥬피터…하는 식으로) 디케는 질서(에우노미아)와 평화(에이레네)라는 이름을 가진 두 여신과 함께 제우스의 둘째 부인 테미스에게서 난 세 자매 중 하나이다. 그럼 그녀의 이름 유스티티아란 뭔가?

그리스·로마 신화란게 인물이나 스토리상 오락가락하는게 다반사지만, 눈 가리고 칼과 천칭 든 이 여신상을 디케의 어머니 테미스라고 하는 버전도 꽤 있다. 그러나 로마 시대로 접어들면서 이 정의의 여신을 유스티티아로 선호하는 경향이 더 생겼을 것인데, 그것은 아마도 Justice라는 어휘 과정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바로 그녀의 이름 유스티티아(Justitia)는 Justice의 유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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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atue of Justice is perched on top of the dome of the Central Criminal Court, the Old Bailey, in London.

그녀가 유스티티아였든 테미스였든, 이른 시대의 작품에서는 그녀가 눈을 가리지 않고 칼만 들고 있는 모습이었으나 눈을 가리고 오른 손에는 칼, 왼손에는 천칭을 든 모습으로 형상이 바뀌어 가는 시대는 역시 중세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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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is from the Temple of Nemesis, Rhamnous, Attica, signed by the sculptor Chairestratos, c. 300 BCE

천칭 들고 사람을 심판하는 모티프가 윤색된 이유는 아마도 중세 기독교 문화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물론 천칭/저울이 기독교(성서)에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집트의 정의의 신 마트(Maat)도 여성신이며 저울을 가지고 사람을 심판한다. 천칭의 한쪽에는 죽은 자의 심장을, 다른 한 편에는 타조 깃털을 올려놓고 달아본다. 죄가 있는 만큼 심장의 무게는 깃털보다 무거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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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e we see the heart on the left scale, the feather on the right, the weighing being conducted by our old friend Anubis, Guardian of the Shoreline (and we have previously considered the Weighing itself too, when meditating on the scarab stone).

이제 세월이 흐르고 나라마다 여신의 모양도 다르고 손에 들고 있는 것도 약간씩 다르다. 법전을 들고 있다든지, 여성이 한복 같은 걸 입고 있다든지…

최근 들어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으로 여신이 눈을 가린 것을 ‘제대로 보지 않겠다’는 의미로 비꼬아 해석 하기도 하지만, 눈을 가렸다는 의미는 안 보겠다는 의미보다는 ‘듣겠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그런데 천안에 있는 저 동상에는 아예 상반신도, 하반신도 없이 팔뚝만 있는 것이다. 여성이 아닌 남성 팔뚝에다가 왼팔에는 천칭을 들고, 오른 팔은 칼을, 중앙에는 법전을 깔고서. 그리고 그 이상한 말.

“하늘이 무너져도 이 땅에는 정의를(???)”

이 말은 아마 Fiat Justitia Ruat Caelum(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라는 법학계의 유명한 경구를 응용한 것이라고 간주했을 때 이 동상의 도상해석이 가능할 것도 같다.

우선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라는 텍스트의 컨텍스트(context)를 하늘을 초월한(무시한) 땅으로부터의 정의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늘이 없다하더라도 땅으로부터 칼과 천칭이 튀어 올라와서는 달아보고 찌른다는 것이다. 게다가 다른 여신들의 천칭은 모두 수평에서 고정인데 저 천칭만 기울어 있지 않다.  수평으로 달려는 의지보다는 찌르려는 의지가 앞선 까닭일까.

따라서 이 동상에서 나타나는 도상에 해석을 가한다면, 그것이 심판을 하늘로부터 위임 받았다기보다는 도리어 하늘에게 맡기지 않겠다는 의지의 도상에 가깝다는 해석에 다다를 수 있다. 마치 창세기에서 땅 자신이 스스로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것만 같으며, 그것은 차라리 아벨의 핏소리를 머금은 땅에서 들려오는 땅의 원한 같기만 하다. 이것이 눈감은 여신보다 더 정의로운 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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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천칭, 텍스트.
이 세 가지는 판검사용 도구만은 아니다.

목사/사제의 전통적 도구이기도 하다.
그것은 목사들이 심판자라서가 아니라, 목사로서 주된 직무가 칼로 심령과 골수를 찔러 쪼개고 들어가 그들의 심장을 깃털처럼 가볍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들도 판검사처럼 텍스트를 중앙에 놓고들 일한다. 심지어 법복까지 똑같이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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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적으로 미국인들이 법원 판결/선고를 낼 때 대체 왜 Sentence라는 단어를 사용하는지 궁금함을 갖고 있었다. sentence는 ‘문장’이라고 하는 명사도 되기 때문이다.

Judge sentences driver in crash that killed Michelle Circoloff Ganton to 7 years, 2 months to 15 years in prison.

보통 우리나라의 경우는 마침표가 미국인들만큼 중요성 있게 강조하지를 않는다. 사실 격문 쓸 때는 우리글에서도 반드시 마침표를 찍어야 함에도 영어 배울 때처럼 강조 받지는 않는다. 모국어라서?

그렇지 않다. 마침표가 영어 문법에서 유달리 강조되는 이유는 영어에서의 마침표는 ‘문장’이 성립하는 법정적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법원의 판결은 한마디로 ‘문장의 끝’인 셈이다. 종교적 의미로 보면 로고스의 끝이라고나 할까.

이 sentence가 (견해를 가져오는 어떤) ‘느낌’을 뜻하는 라틴어 sentire에서 비롯된 sententia(견해)를 거쳐 ‘글 요약’, ‘법정 선고’을 뜻하는 오늘날의 sentence 쓰임새가 되기까지는 공교롭게도 종교개혁 직전부터 집중적 틀을 갖추는 양상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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