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받았어도 기생충은 기생충

오스카 받았어도 기생충은 기생충

오스카 감독상 받은 봉준호 감독

유감스럽게도 이 글은 세계에서도 인정받은 영화 <기생충>을 다시 한번 비판한 글이다. (이전 비평 참조: ‘기생충’ 같은 영화 <기생충>) 오스카 상을 받았어도 기생충은 기생충이기 때문이다.

문득 오스카 상을 받은 역대 수상작 가운데 생물을 모티프로 만든 작시가 무엇이 있을까 떠올려 봤다.

레버넌트 (2015)

곰을 모티프로 하여 작시한 <레버넌트>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침 흘리는 과장된 연기에도 불구하고 곰이라는 짐승이 갖는 웅장한 서사를 극대화 함으로써 개척 시기의 아메리카 대륙을 잘 표현하였고, 새를 모티프로 작시한 <버드맨>은 지루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한 슈퍼히어로 출신 배우가 (목숨을 건) 실사 연기를 통해 마침내 진정한 연기자로 거듭난다는 점에서 날아다니는 새를 매개로 한 인간 내면의 서사를 잘 연결 지었던 기억이다.

Birdman (2014)

그러고 보니 오스카를 각각 4개, 3개를 받은 이 영화 두 편은 공교롭게도 한 명의 감독 작품이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Alejandro González Iñárritu). 이 사람도 미국인이 아니다.

곰과 새에 비하면 그야말로 기생충은 파격적인 생물인 셈이다. 알레한드로는 곰, 새… 이런 것을 선호한데 반해, 봉준호는 기생충, 괴물, 옥자(삼겹살?)…

하여간 오스카 100년사( 史 )에 한국을 기생충으로 각인시켰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이같이 파격적인 모티프와 봉준호의 탁월한 작시 능력만으로 오스카 벽을 뚫은 게 아니라는 사실이, 정작 오스카를 통해 드러났다는 사실은 매우 역설적인 대목이다.

회장님이 왜 거기서 나와?

어느 사회고 재능만 가지고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말해주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이 역시 내 이전 비평에 신랄하게 밝혀 놓았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미국 영화계 Me too는 성 문제가 아니라 자본 구조의 문제), 영화 시장 자체가 그렇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장본인들일 것이다. 유명 가수보다 뛰어난 무명 가수가 많듯이, 봉준호보다 뛰어난 무명 감독은 얼마든지 있는 까닭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봉준호나 CJ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왜? 자본가가 문화 분야를 겨냥해 제작뿐 아니라 그 작품의 시상을 위해 투자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자본이 갖는 자유와 실력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또한 재능 있는 영화 감독이 투자자 눈에 드는 것도 재능 이상의 실력이다. 돈도 실력이야―인 것이다.

CJ의 기획을 알리는 뒷 기사들

영화 <기생충>이 갖는 기생충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자본이 갖는 실력과 자유를 그 어떤 작품보다 한껏 이용했으면서도, 정작 그 자본의 토양과 체제에 대한 혐오를 온 사회에 전가해놓음으로써 부가가치를 창출한 이중성의 문제이다. 우리가 보편 사회로 살아가는 우리의 얼굴 한국을 기생충으로 세계에 소개해 말할 수 없는 부와 명예를 거머쥐고는, 정작 그 기생(寄生) 사회를 고스란히 자기 몸체에 수록한 괴생명체가 이 영화이다. 한 마디로 기생충이다.

저 분들이 이 여성을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고 최고은 작가

이 여성은 영화 시나리오 작가다. 10년 전에 죽은 분인데 우리 같은 일반인에게도 잘 잊히지 않는다.

굶어 죽었기 때문이다.

이 여성의 죽음에 대해 당시 언론에서는 비교적 소상히 다루었다. 이 여성 시나리오 작가는 살던 셋 방의 이웃 세입자 방 문에 이런 메모를 적어 놓았다고 전한다.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적어 놓은 것이다.)

“그동안 너무 도움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 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주세요…”

이게 왜 <기생충> 탓이야. 그렇지. 기생충 탓이 아니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군가 좋은 기회를 만나 자기 재능을 세계에 알리고 상도 받는가 하면, 이렇게 굶어 죽는 재능인도 공존하는 것이지. 반성은 할지언정 누가 누구를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자본, 맘몬이 갖는 속성이니까.

그렇지만 영화 <기생충>에게는 한 마디 할 수 있다.

그 어떤 사회 분야보다도 가장 자본의 속성을 향유하고, 그 어떤 사회 음지보다도 처참한 모습을 자기 몸뚱이에 고스란히 은닉하고 있으면서도 기생충을 언제나 다른 누군가로 특정하는 까닭이다. 그것이 바로 이 업종이 안고 있는 문제이다.

그나마 당시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양심 있는 일부는 이같은 부고(訃告)를 내보냈다.

◌ 추상미: 최고은 작가의 죽음이 너무 아프다…가슴이 저리고 아리다…그녀는 얼마나 이해받고 싶었을가….

◌ 엄지원: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족한 재능으로 큰 운으로 밥 걱정 없이 사는 내가 참으로 초라해지는 밤입니다. 고인의 죽음이 남긴 메시지 잊지 않겠습니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찾을게요. 미안함과 아픔을 전합니다..편히 쉬세요.

◌ 김종관 감독: 갑작스레 안부 전화가 오고 간다 내 동료가 내가 벌거벗은 날

◌ 이준동 대표: 최고은 작가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고, 난 변명의 여지가 없이 공범이다.

◌ 김조광수 대표: 나도 17년 전에 돈이 없어 며칠을 굶고 신세가 서러워 울었던 적이 있다. 후배들에게 종종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하면 꿈을 이룰 수도 있다”고 말해 왔는데 이제 그런말도 못하겠다.

◌ 박효주: 남는 밥좀 주세요…최고은 작가의 죽음이 하루 종일 마음을 무겁게 누르고 저 말이 계속 마음에 사무친다…아 진짜 정말 좋은 곳에 가세요. 제발

이때 봉준호 감독은 <괴물>을 만들고 있을 시기이다.



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University Lecturer | 저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2017), 영혼사용설명서 (2016),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논문: 해체시대의 이후의 새교회 새목회 (2013), 새시대·새교회·새목회의 대상 (2011), 성서신학 방법에 관한 논고 (2011). 번역서: 크리스티안 베커의 하나님의 승리 (2020). | FB | Twtr | 개인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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