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이 설교금지법으로 변하는 원리

차별금지법이 설교금지법으로 변하는 원리

차별금지법안 취지를 설명하는 장혜영 의원

“차별금지법은 ‘설교금지법’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입법 의원 인터뷰를 보았다. 차별금지법을 찬성하는 기독교 매체에서 인터뷰를 한 것 같다.

해당 국회의원의 입법취지는 선량한 동기에서 출발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한 입법 의원으로서 법이 갖는 기본적인 구심력에 관하여 간과하는 것으로 보여 유감이다. 만일 그 구심력을 알고도(혹은 기대하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권리 침해가 없을 것이라 말하는 것이라면 기만이기 때문이다.

이 입법자들은 이 법안에 대해 흔히 이렇게 요약한다.

1) 차별금지법은 새로운 법이 아니다. 2) 이미 존재하는 법이다. 3) 유명무실하던 것을 한 단계 더 권고할 수 있는 정도의 조처 법안이다. 이 요약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헌법은 “누구든지 성별ㆍ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영역에서 차별이 여전히 발생하고 있고, 차별 피해가 발생한 경우, 적절한 구제수단이 미비하여 피해자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에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學歷), 고용형태, 병력 또는 건강상태, 사회적신분 등을 이유로 한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ㆍ예방하고 복합적으로 발생하는 차별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포괄적이고 실효성 있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함으로써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평등을 추구하는 헌법 이념을 실현하고, 실효적인 차별구제수단들을 도입하여 차별피해자의 다수인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신속하고 실질적인 구제를 도모하고자 합니다.

2020-06-30에 회부한 차별금지법안 서문

이것을 알아야 한다.

법의 구심력이란 한 법이 발호하였을 때 파생하는 강력한 동력/힘을 말한다.

이를테면 한 입법 의원이 “토지 소유권을 국가가 가져야 한다”고 발언하였을 때 이는 새로운 법안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미 토지 소유권은 ‘국가’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토지의 지대(또는 공시지가)가 국가에 의해 급상승하면 어떻게 될까? 세금의 증폭으로 토지를 소유할 수 있는 개인은 아주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과거 한 정당 대표의 ‘토지 국유화’ 발언

그렇다면 왜 이와 같은 토지 통제권이 있는데도 “토지 소유권을 국가가 가져야 한다”고 명문화하려는 것일까. 그것은 입법 의원 스스로 자문해야 할 일이다. 극소수의 지주를 중세 봉건사회에서는 기사 계급이라 불렀다면, 오늘날에는 사회주의 당원 계급이 이 기사 계급을 대신한다는 사실을 참고할 수 있다.

차별금지법은 반드시 ‘설교금지법’으로 이행하도록 되어 있다.

한 체제에서 종교의 자유는 ‘자유’의 총화이다. 특히 여러 종교 중에서도 기독교의 상징인 ‘설교의 자유’가 갖는 역동은 사회의 모든 자유를 극대화시키고 기여했다. 이를 테면 한 진보주의자가 사회와 권력에 기탄 없는 비판을 가할 때 이러한 언어 자유의 모형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아니다. 다 기독교식 언어 자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차별금지의 모형은 서구의 종교개혁에 준거하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이 없었다면 프랑스 혁명도 없는 것이며, 프랑스 혁명이 없었다면 대국(大國)에 아들과 딸을 보내야 하는 신세인 대한민국의 자유는 훨씬 지연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 사회주의 당원의 자제들은 볼모가 아닌 유학이라는 형식을 띠어 보낸다.)

그러므로 한 사회의 궁극적 자유는 종교의 자유이며, 종교의 궁극적 자유는 곧 ‘설교의 자유’이다.

물론 몰상식한 설교가들이 몰상식한 설교를 늘어놓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설교를 제어하는 장치는 그보다 더 우수한 설교이지 ‘설교금지법’이 아니다.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유능한 국회의원은 언어의 자유가 있다.

오늘날 우리 주변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희소한 권능이다.

‘서울 이순신이 관기와 잠자리를 하였기로서니 그의 존경심이 훼손되어야 하느냐?!’라는 언어가 난무하는데도 이런 언어를 다스릴 만한 국회의원이 별로 없다. 아마도 자신들만의 ‘차별금지법’이 작동하는 까닭일 것이다.

이 무소불위의 ‘차별법’을 깨뜨릴 수 있는 권역을 우리가 종교라 부른다.

특히 그 중에서도 기독교의 ‘설교’이다.

※ 차별금지법 입법 예고 마감일이 내일 15일까지인 것으로 압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 중에 이 법안 입법 취지와는 달리 악용될 우려에 동의하는 분은 국회 입법 예고 시스템에 반대의견이라도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이 분 인터뷰는 모순이다. 설교금지법이 아니라면서 ‘포괄적’이라는 말을 쓰기 때문

에필로그. 1세기 유대교는 ‘안식일을 지키라’는 법을 유지하기 위하여 여러 유권해석과 법안들을 따로 상정해놓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안식일 전 날에는 약도 복용해선 안 된다’는 취지로까지 발전한 법안도 있었다. 약을 신체에 투여했을 시, 안식일에 효과가 작동한다면 안식일을 범한 것이라 간주한 까닭이다. 법을 자꾸 파생시키기보다는 철학과 덕으로 국가를 가꾸는 입법 의원들이 되시기를.



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University Lecturer | 저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2017), 영혼사용설명서 (2016),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논문: 해체시대의 이후의 새교회 새목회 (2013), 새시대·새교회·새목회의 대상 (2011), 성서신학 방법에 관한 논고 (2011). 번역서: 크리스티안 베커의 하나님의 승리 (2020). | FB | Twtr | 개인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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