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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moon
    키 마스터

      “나는 아이입니다”

      솔로몬이 일천번제 후에 신의 현현 앞에서
      “나는 아이입니다”라 하였을 때의 나이를 20세 안팍으로 보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다. 아주 애가 아님.

      ‘나는 아이입니다’라는 표현은 예레미야가 처음 부름 받았을 때도 사용한 표현이다. 이 때 예레미야의 나이 역시 20대 초반 정도로 추정을 한다(아무리 적어도 13세).

      “나는 아이입니다”란 문장은 히브리어 특유의 ‘명사문장’이다.
      동사 없이 명사로만 된 문장이란 소리다.(“나는 아이”)

      솔로몬과 예레미야의 고백은 둘다 명사문장이지만 양자 간에는 차이가 있다.

      아노키 나아르(אָֽנֹכִי נַעַר)
      나아르 아노키(נַעַר אָנֹֽכִי)

      솔로몬은 “나는 아이(입니다)”라 말했고,
      예레미야는 “아이는 나(입니다)”라 말한 것이다.

      전자의 명사문장을 동질문장(identification)이라 부르고, 후자를 분류문장(classification)이라 한다.

      전자는 ‘나’가 ‘아이’인 동시에 ‘아이’가 바로 ‘나’이다. 반면 후자의 ‘나’는 ‘아이’에 포함되는 ‘나’이다. ‘나’는 ‘아이’(어린)로 분류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솔로몬과 예레미야의 내면을 읽을 수 있다.

      솔로몬은 왕이었던 아버지와 견줄 때에
      자신은 언제나 ‘아이’이다.
      아버지 왕을 대신할 수 없다는 심성이다.

      예레미야는 다른 예언자들과 견줄 때에
      자신은 언제나 ‘아이’이다.
      예언자의 언어는 성숙한 어른의 언어인데
      자신의 언어를 언제나 ‘아이’로 분류(classification)하는 심성이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말을 하기에” 작은 아이라 하였고, 솔로몬은 “출입을 하기에” 작은 아이라 하였던 것이다. (출입은 ‘판단력’의 관용적 표현이다)

      이것이 겸손의 원리이다.

      현대인에게 있어 “나는 아이입니다”는 대개 자기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의 기제로 나타난다. 자기 과거에 관한 변명을 자랑거리나 무용담으로 재구성하여 겸손하게 늘어놓기를 즐거워 한다. 그대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대상에게는 폭력적으로 돌변하는 것이 현대적 의미의 ‘나는 아이’이다. 동질성도 분류성도 아닌, 단지 기제의 노예로 임하는 것이다.

      이러한 소아증 기제를 집단 히스테리로 활용해 정치 문화 경제에서 재미를 본 대표적인 예로 다음을 들 수 있다.

      ‘나는 꼼수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너희들 잘못이 아니다.’
      ‘왜 분노하지 않는가.’
      ‘나는 복음이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소아증 히스테리가 아니라
      동질성과 분류성 회복이 절실한 때이다.

      “나는 아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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