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의원 아드님이 ‘미개인’이라고 부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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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의원 아드님이 ‘미개인’이라고 부른 날

정몽준 의원님의 아드님이 우리를 “미개인”이라고 부른 날, 과거에 읽은 어떤 책들의 내용이 떠오르고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런 내용이다.

고대 왕국을 두고, 백성은 오로지 군주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전제 국가였을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가 생각하는 군주 제도에는 전혀 적용될 수 없다. 백성이 군주를 위해서 존재하기는커녕 정반대로 군주야말로 백성을 위해서 존재했다.

군주의 목숨은 백성을 위하여 자연이 제대로 운행되도록 명령함으로써 그 지위가 지니는 의무를 다할 때만 귀중했다. 군주가 이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순간, 그때까지 백성들이 그를 향해 기울이던 배려, 헌신, 종교적이기까지 하던 경의는 온데간데없어지면서 바로 증오와 경멸의 대상으로 바뀐다.

그런 군주는 불명예스럽게 왕좌에서 쫓겨나는데, 이 경우 운이 좋아야 목숨을 보전할 수 있다. 신처럼 섬김을 받다가 어느 날 문득 범죄자처럼 처단당하는 것이 그들의 군주였다.

<중략>

남부 기니의 케이프 파드론 부근에 있는 샤크 포인트(상어갑)의 사제왕(司祭王) 쿠쿨루는 숲속에서 홀로 산다. 이 왕은 여자에게 손을 댈 수도 없고 그 집을 떠날 수도 없다. 사제왕인 그는 왕좌를 떠날 수 없다. 그래서 잠도 왕좌에 앉은 채로 잔다. 왜 그래야 하는가 하면, 그가 바닥에 눕는 순간부터 바람이 일지 않아서 배라는 배는 모두 그 자리에 멎고 말기 때문이다.

그는 바람을 단속할 뿐만 아니라 대기의 상태를 일정한 수준이 되도록 보살핀다.

<중략>

지배자에 대해 원시인들이 가진 태도의 또 한 측면은 신경증에서는 흔한 사례이면서도 그 과정은 피해망상(Verfolgungswahn)으로 알려진 신경증의 경과를 상기시킨다. 가령 한 특정인이 지니는 의미가 턱없이 과장되고 이 특정인이 행사할 수 있는 절대적인 능력이 터무니없는 선까지 확장되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경우 환자들이 체험하게 되는 바람직하지 못한 일에 대한 모든 책임은 모두 이 특정인에게 전가된다. 왕에 대한 미개인들의 태도가 이 환자들이 취하는 태도와 똑같다.

미개인들은 저희들 왕에게는 비와 햇빛, 바람과 일기를 통제하는 능력이 있다고 여긴다. 이렇게 믿고 있다가 자연으로부터 성공적인 사냥과 풍작에 대한 희망이 배신당했다고 여기는 순간 이 책임을 왕에게 돌려 왕좌에서 내쫓거나 죽이거나 한다.

<중략>

기독교의 신화도 이러한 왕의 진화사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cf. Sigmund Freud, <종교의 기원>(1997), p. 88-9.

이것은 프로이트가 자기 환자들과 미개인을 동일선상에 놓고 이론을 일으키는 과정의 한 대목인데, 이런 작업은 <황금가지>라는 위대한 저서가 없었다면 당대에 끝내기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프로이트가 빠뜨렸지만 <황금가지>의 저자 프레이저(G. Frazer)는 자기 책에서 이런 대목도 담고 있다.

“콩고강 어귀에 있는 봄마 숲 한 언덕 위에 ‘남불루 부무’라는 비와 폭풍의 왕이 살았다. 나일강 상류의 부족들에게는 일반적인 의미로서의 왕은 없다. 그 부족들이 왕으로 승인하는 유일한 사람은 비의 왕뿐이다. 그는 우기에 비를 내릴 수 있게 하는 힘을 가진 것으로 믿어지고 있었다.

3월 말에 비가 내리기 시작할 때까지 이 지방은 메마른 불모의 사막이다. 그 때문에 부족의 중요한 재산인 가축들이 목초량의 절대 부족으로 죽어간다. 그래서 3월이 끝날 때가 가까워지면 부족의 주민들은 비의 왕 앞에 가서 바싹 말라버린 목초지에 하늘의 물을 달라고 송아지 한 마리씩 바친다. 만일 비가 내리지 않으면 부족 사람들은 비의 왕 앞에 몰려와 비를 내리도록 강요한다.

그래도 여전히 비가 내리지 않으면 그들은 왕의 배를 가른다. 부족 사람들은 왕의 뱃속에 폭풍우가 간직되어 있다고 믿고 있다.”

정몽준 의원 아드님께서 이런 걸 다 알고서 “미개인”이라고 하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세월이 아무리 흘러가도 “미개인”, “현대인”의 경계란 사실 없는 것이다.

내 아들이 혹은 딸이 저 아래 있다면…

현대인들은 세련되어서 대개 삼일장으로 끝내지만, 동양에서는 – 아마 북방불교에서 들어왔을 것으로 – 칠칠일(49일)을 슬퍼한다.

성경에서는 입다의 딸 죽음을 두고 두 달 간 애곡 하였다고 했다. 우는 기간에는 슬픔과 분노 그리고 쓰라린 미움과 복수심, 그 모든 게 다 지나가게 마련이다. 미개인에게나 현대인에게나.

피에타도 꼭 세련되고 우아한 피에타만 있는 건 아니다.

Röttgen Pietà, from the Rhineland, Germany, ca. 1300-1325.  Painted wood, 2′ 10 1/2″ high.  Rheinisches Landemuseum, Bonn.

Detail

에필로그.
오늘도 읽기 어려운.. 참기 힘든 기사가… <그토록 살리려했던 사람은… 단원고 정차웅군.>
이 ‘의원 아드님’과 이 아이의 나이가 별로 차이가 안나는 걸로 알고 있다.

우리 모두에게 치유가 임하소서…

Lamentation, fresco from Nerezi near Skopje, R.o.Macedonia | Date 1164 | Medium fresco | St. Panteleimon’s Church, Nerezi

* 회화 피에타로서 가장 오래된 것은 아마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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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University Lecturer | 저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2017), 영혼사용설명서 (2016),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논문: 해체시대의 이후의 새교회 새목회 (2013), 새시대·새교회·새목회의 대상 (2011), 성서신학 방법에 관한 논고 (2011). 번역서: 크리스티안 베커의 하나님의 승리 (2020). | FB | Twtr | 개인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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