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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익명(Anonymous)에 대한 문자적 유래 입니다.

Anonymous(어나니머스)는 onym이라는 말에 an이라는 접두어가 붙어서 된 말이다. onym은 name의 어근이다. onyma은 onoma와 더불어 희랍어로서 onym에서 ‘o’가 탈락되고 음가를 통해 name이 되는 과정을 거쳤다. ous는 ‘있는’(full)이라는 접미이고 a(n)는 부정(not)이다. 이렇게 해서 이름(onym/name)이 없다(an/not)는 뜻 즉, ‘이름을 숨긴’을 뜻하는 ‘익명의’라는 어휘가 태어나 ‘가명의’라는 뜻은 물론 ‘무명의’(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특징이 없는’(이름을 붙일 수 가 없는)이라는 뜻으로까지 사용되었다. ous가 빠진 anonym은 ‘가명, 변명, 익명, 작자 불명의 저작’이라는 뜻으로 쓰기도 한다.
그리고 anonymous에서 an을 제거하면 ‘이름이(onym=name) 있는(ous=full)’으로 쓰면 ‘이름을 밝힌’이 된다. 또 접두를 바꿔서 몇가지 단어가 나온다. acronym은 ‘이름(onym)의 첫 글자(acro=head)’라는 뜻에서 ‘두문자어’가 되었다(AIDS같은-). allonym은 ‘다른(all=allo=other) 이름(onym=name)’이라는 뜻에서 ‘필명’(남의 이름으로 출판된 작품) 등의 말이 되었다. antonym은 ‘반대되는(anti=against) 이름(onym=name)’이라는 ‘반대말’로, synonym은 ‘같은(syn=same) 이름(onym=name)’이라는 ‘비슷한 말’로, homonym은 homo(same)가 붙어서 ‘동철이의어’이 되었다(can[깡통]과 can[할 수 있다]의 예). patronymic은 ‘patro(father)’와 결합되어 ‘아버지의 이름을 딴’이라는 뜻으로, pseudonym은 pseud(거짓의, 가짜의)와 결합되어 ‘익명, 아호’의 뜻으로 활용되었다. 이상 anonymous의 용법이다.

다음은 그 익명에 대한 몇 가지 예시입니다.

(1) 조직이나 집단 속에서

우리는 어떤 조직이나 집단에 속해서 나의 뜻을 관철 시킬 때, “누가누가 이렇게 말하더라”(“-카더라”: ○○가 ~라고 하더라)는 식의 문장을 만들어 의견을 발의하고, 제시하고, 대변하고, 반론하고, 관철시킵니다.

(2) 가난한 자와 약자 앞에서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붓자, 제자 중 하나(가룟 유다)가 책망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가난한 자는 가룟 유다가 사용하는 익명입니다. 즉 삼백 데나리온은 가난한 자가 아닌 자기가 갖고 싶은 재물인 것입니다.

(3) 형제 앞에서, 아버지 앞에서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을 때 가인이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요셉을 해한 형제들은 요셉의 옷을 아버지에게 가져나가 보이면서 “아버지의 아들의 옷인가 아닌가 보소서” 라고 말합니다. 가인은 자신을 “아우를 지키는 자”라는 익명 속에 자신을 감추고, 동생을 해한 형제들은 자신들이 해한 동생을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익명 속에 감춥니다.

(4) 원시인들의 경우

다음은 민속학적 고찰인데, 미개인이나 원시인들은 자기 종족의 왕을 뽑을 때 경건하게 뽑습니다. 어찌나 경건하게 생각하는지 왕이 쓰던 물건에 자기 신체가 접촉하기라도 하면 큰 일이 날 것처럼 여길 정도입니다. 어느 날 왕의 쓰던 물건을 자기도 모르게 접촉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걸 안 순간 며칠을 시름시름 앓다가 실제로 죽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이같은 신적 권위가 있는 왕에게는 중요한 임무가 하나 있었습니다. 종족의 안위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 중에는 하늘에서 비가 오게 하는 것까지 포합됩니다. 가뭄이 들면 그 왕은 어떻게 해서든 대개 비가 오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날은 아무리 해도 비가 안오는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 왕을 세운 종족은 가차없이 그 왕을 죽였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왕을 세웠습니다. 그런 식으로 다른 왕을 세워 나갑니다. 다시 말하면 이들에게 있어 왕은 욕구와 그 앙갚음의 익명의 대상인 것입니다.

위에 열거된 예시들은 모두 익명(anonymous)에 관계된 인간이 갖는 행태입니다.

(5) 십자가에서

그 익명성을 모두 제거하고 일한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 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드러냈고, 또한 자신의 실체를 밝혔으며, 궁극적으로 십자가에 달린 예수는 익명이 아닙니다. 그의 실명 나사렛 예수께서 달리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에 달리실 당시 그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이것은 위에서 열거된 전자들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익명성인 것입니다. 즉 익명이 아닌 실명으로 하였지만 그것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철저한 희생일 때 형성되는 익명성입니다.

이것이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옵시며”의 본질이며, 그래서 이름(onym)은 그와 같이 우리의 뿌리가 되는 것입니다.

* 2013.7.28일자 설교,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옵시며 | 눅 10:1-4; 골 2:6-15 (c.f. 호 1:2-10; 시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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