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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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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타주》해제 #19. 하나님의 ‘자의식’

      헤겔의 여파가 어떤 것인지 한 컷 더 할애 해야겠다.

      1770년생인 헤겔이 1831년에 콜레라로 죽고 나서 Young Hegelians(청년 헤겔파)라는 학문적 좌파가 결성되었는데,
      이것이 19-20세기를 이끌고 나갈 인본주의의 옹달샘이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서 칼 마르크스, 포이에르바하, 엥겔스도 한 샘물을 마셨다.

      그런데 어인 일인지 이 좌파는 내부적으로 다시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로 갈라서는 분열을 거듭한다.

      칼 마르크스, 포이에르바하, 엥겔스 등이 그룹 내 좌파로 부상하면서
      오늘 이 글에서 주목할 부르노 바우어(Bruno Bauer, 1809-1882)라는 사람은 이 좌파 그룹의 창단 멤버임에도 어이없이 우파가 되고 만다.

      헤겔의 직계 제자였던 이 사람은 본(Bonn)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는 강사 신분이었는데
      급진 좌파에서 볼 때 헤겔 철학은 여전히 신학이었기 때문이다.

      바우어의 신학 자체도 대학 강단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좌파였는데,
      이거 보다 더 한 좌파는 뭐냐?

      저 유명한 테제,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신의 형상대로 하나님을 창조하였다!” ㅡ포이에르바하

      플라톤 시절에 고대의 철학이 신학으로부터 유출되었는데,
      이 시대에 비로소 철학이 신학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는 순간이다.

      또한 이 초강 좌색(左色) 명제가 시사하는 바,
      부르노 바우어가 가르친 최신 신학은 근대 유물론 및 공산주의를 태동케 한 숙주 역할도 했던 셈이다.

      그러면 바우어의 신학은 무엇인가?

      한 마디로 ‘예수 신화’로 점철 될 수 있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예수는 2세기 그리스-로마의 신화적 산물이라고 간주하는 이 트렌드 신학은
      바우어에게서 구체적으로 텍스트에 그것을 가하게 되었는데, 복음 텍스트에 헤겔을 입혔다는 사실에 바우어의 특징이 있다.

      그는 복음서 전반의 텍스트 형성 과정을 진화론적으로(아직은 진화론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함) 설명했는데,

      1단계) 유대교 율법 Vs. 바울의 보편적 복음 간의 갈등
      → 2단계) 보편 복음 Vs. 열광주의(cf. 몬타누스) 간의 갈등
      → 3단계) 보편 복음 Vs. 영지주의 간의 갈등 → 4단계) 평화스런 합(合)의 완성 → 5) 그것이 요한복음

      [* 이렇게 되면 문제가 뭐냐 하나님의 글이 아닌 사람의 필요 충분의 글이 성경]

      머 대략 이런 식의 과정에 의해 도출된 게 복음(서)라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명실상부 T.E.X.T.라는 설명이다.

      모 틀린 말은 아닌데
      이러한 텍스트에 대한 관점은 두 가지 결과를 가져왔다.

      첫째, 텍스트에 달라 붙어 있는 미신들을 모조리 제거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 텍스트에는 더 이상 신적 기운이 없게 되었다.

      자석에서 신적인 기운을 빼버리면 그저 돌/금속일 뿐이었던 것처럼,
      텍스트에 달라붙은 신화를 보두 제거하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특히 그 텍스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의 이야기를 담은 ‘복음’일 때,
      그 ‘복음’에서 신적 기운을 다 빼고나면 무엇이 남을까?

      그것은 바로,
      ‘자의식’만 남아 있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헤겔의 옹달샘에 들어있던 샘물의 액기스/원액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 이전에는 그런 것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신적 존재,
      신의 아들로만 여겼던
      예수의 ‘자의식’이라는 것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담력과 길이 열리게 되었다.

      사실, 예수의 ‘자의식’을 상상하는 이런 방식의 신학은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이미 헤겔이 태어나기 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이것이 본격적인 방법으로서 신학이 된 것은 헤겔의 제자 바우어에게서,
      특히 바우어의 문하생으로부터 제철을 만나게 된다.

      참고로 일찍이 1774년 경 라이마루스라는 사람은 이런 생각을 소개한 바 있다.

      “What was the significance of eschatology for the mind of Jesus?”
      (예수의 마음속에서 종말론의 중요성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로부터 20-30년 뒤 바우어의 제자인 슈트라우스가 이런 의구심을 대중에게 소개했다.

      “Did the historical Jesus think of himself as the Messiah? or as just a prophet?”
      (예수는 자기 자신을 메시야라고 생각했는가? 아니면 단지 예언자라고 생각했는가?)

      원리를 알고 나니 자석이 별로 신기하지 않은 것처럼,
      예수에게서, 특히 그의 TEXT에게서 신성을 제거하고 나니
      이제 예수는 실패한 혁명가 젤롯이요,
      그의 TEXT는 노예의 도덕으로 밖에는 안 보이게 되는 것이다.

      * 헤겔이 착안한 하나님의 ‘자의식’과 그 후학이 착안한 메시야의 ‘자의식’에 관한 다음 아티클을 참조할 만 할 것이다. (어벤져스/아이언 맨 영화를 모티프로 작성하여 읽기 편하다.)

      참고: http://mimoonchurch.com/?p=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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