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nt_2

신영복보다는 구텐베르크를─종교개혁 503주년

종교개혁 503주년이다. ‘서양 종교 기념일이 뭐 그리 중헌디?’ 반감이 앞서는 분 중에는 최근에 기독교인도 꽤 있는 것 같다. 그만큼 사회에 민족주의가 발흥한다는 방증일 것이다. 민족주의가 종교를 압도하는 것은 민족주의가 종교보다 더욱 종교적으로 임하기 때문이다. 토템과 터부 시대로의 복고인 셈이다.

기독교를 포함한 유서 깊은 종교 중 서양에 기원을 둔 종교는 거의 없다. 서양을 경유한 동양 종교들이 있을 뿐이다. 동양의 종교들이 서양에서 토템과 터부를 제거당하고 다시 역류하는 이치다. 이것을 우리가 종교개혁이라 부른다.

특히 개신교는 그 성격 자체가 서지 혁명이기 때문에 개신교가 우리 사회에 처음 경험되었을 때부터 서지(書誌), 즉 글과 기록이라는 체험으로 강타했다. 기독교와 성서가 우리 사회의 문맹률을 현저히 감소시킨 역량은 사회적인 영역이지 종교적인 것이 아니다. 종교개혁은 태생 자체가 종교를 사회가 변혁시킨 사실에 유래한다.

흔히 종교개혁을 떠올리면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A4지 몇장 꽝꽝 못박자 사람들이 촛불 들고 벌떼처럼 일어난 기획 선동인 줄 알지만, 여러 신분의 사람이 이미 저마다 자신의 위치에서 각자의 필요를 절감하여 일어난 점진적이고도 지속적인 혁신 운동이라는 사실을 유의해야 한다.

점진적이고도 지속적인 개혁의 중심에는 바로 구텐베르크라는 인물과 그의 혁신이 자리한다.

종교개혁의 완성이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덕분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종교개혁의 구심축을 언제나 마틴 루터로 지목하는 관행 때문에 구텐베르크는 마치 마틴 루터의 피고용인처럼 연상되지만 종교개혁은 구텐베르크가 죽은 지 50년 뒤에 일어나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마틴 루터의 비텐베르크 거사는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의 최종 결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교개혁은 서지 혁명이기 때문이다. 이 서지 혁명은 구텐베르크의 생애에 걸쳐 전개되었다.

마인츠 태생인 구텐베르크는 본래 귀족 출신이지만 계급 다툼이 한창이던 시기에 추방당한 아버지를 따라 슈트라스부르크에서 자란 인물이다. 그는 상인 계급으로 거듭났다. 상인 및 수공업 장인 계급의 중흥은 오랜 세월 진행된 십자군 전쟁의 여파이다. 종교개혁을 향하여 세력이 무르익어 가던 시기이다.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디자인할 때는 백지 상태에서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다. 그의 아버지가 세력 다툼에서 밀려 이주하기 전에 하던 일은 조폐국 금화 찍어내는 일이었다. 금화 생산에 필요한 압착기 기술은 구텐베르크 인쇄기에 있어서 중요한 메커니즘이다. 포도주 즙을 짤 때 사용하는 압착기를 변형하여 중량을 늘리고 일종의 나사식 볼트를 고안해 활자판을 안정적으로 누를 수 있도록 하여 정교한 인쇄가 가능하도록 했다.

그렇지만 인쇄는 이런 하드웨어로만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활자 기술이 있어야 한다. 스티브 잡스의 80년대 매킨토쉬 컴퓨터를 반도체 혁명 정도로 아는 사람도 있지만 폰트(서체/활자) 혁신이 핵심이었다는 사실은 구텐베르크의 경우와 같은 것이다. 구텐베르크의 활자판은 각 글자를 그룹으로 묶어 정교하게 절단하도록 만들어진 주형을 통해 생산되었다. 그리고 잉크의 문제도 있었다. 인쇄시 잉크는 더하지도 덜하지지 않게 특히 번지지 않게 도포되어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기술이 유성잉크 기술이다. 이러한 인쇄술을 오늘날 옵셋 인쇄라 부른다.

이러한 인쇄 기술은 수도원의 수도사가 하는 일을 대체해버렸다.

구텐베르크의  42-Line Bible이라 불리는 판본

흔히 ‘구텐베르크의 성경’, 하면 백지에 검정 글씨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상기와 같이 화려한 인쇄 판본이다. 아래와 같은 필사본을 대체해버린 것이다.

1240-1260년대 필사본 (독일)

필사본의 당시 가격은 어마어마 했다. 집을 몇 채나 살 수 있는 값어치였다고 전한다. 종이 대신 사용되는 송아지 양피지가 1-2,000장이 필요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성서에 대한 교회의 독점권은 그런 가격대에서 결정되었다. 단지 교권만이 성경과 대중의 만남을 가로막은 것은 아니란 뜻이다.

성경의 대중화로 인해 수도원과 수도사들이 독점하던 필사본의 매력이 사라진 일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로 인하여 수도원과 수도사들의 내부적인 부패는 자연스럽게 소멸되어 갔다. 수도원과 수도사 수요 자체가 구미를 잃어간 것이다.

구텐베르크 성경의 미려함은 필사본을 압도했다.

그러나 구텐베르크는 상업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했다. 상기의 <42행 성서>라 불리는 ‘구텐베르크 성경’을 출판할 당시 요한 푸스트라는 자본가에게 자금을 대여한 것이 결국 성경 사업권을 빼앗긴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소송의 결과는 참담했다.

인쇄기 한 대만 건진 그는 작은 도시로 이주하여 남은 생애를 성경 인쇄에 보냈다고 하는데 이는 전기작가들이 만든 신화일 것이다. 저 <42행 성서>외에는 근거로 남은 게 없고 말년에는 시력을 완전히 잃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이룩한 인쇄 혁신으로 인해 그가 죽은 후 마틴 루터가 등장하여 종교개혁을 감행할 시점에는 인쇄본 성경이 무려 900만 권 이상이 출판된 상태였다. 물론 이 성경의 언어는 제롬이 번역한 라틴어 불가타 성경이다.

‘종교개혁─마틴 루터─쿠텐베르크’, 조합을 떠올리면 마치 혁명가가 인쇄소를 찾아가 이 혁명 전단을 인쇄해주시오! 하고 전개된 거사로 연상하지만 성경의 대중화는 이미 출발을 한 상태였다는 사실을 유의해야 한다. 구텐베르크의 초기 인쇄술은 면죄부를 찍어 파는 일에 종사하였으나 폭발적인 성경 인쇄 사업으로 이행한 것이다.

이것은 마틴 루터의 공적을 깎아내리고 구텐베르크의 공적을 높이 사려는 취지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어떤 추동이 발현되었을 때 그 추동에 담긴 기제가 영속적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함이다.

구텐베르크와 마틴 루터. 상공인과 종교인, 서로 영역과 분야는 다르지만 구텐베르크의 인쇄 혁신은 마틴 루터의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와 만났을 때 서지 혁명이라는 충격파가 되었다. 이것이 문자/서체 체계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것이다. 이 전통에 입각했을 때 우리 사회는 토템과 터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것은 기독교가 토템과 터부를 압도하는 마력을 소유해서가 아니라 그 문자와 서체가 지닌 힘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토템과 터부를 벗겨내는 힘.

이처럼 문자와 서체가 지닌 힘이 실제계에서 역동한다는 사실은 상대적인 개념을 통해서도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데,

바로 다음의 경우처럼 서체가 지닌 또 다른 힘이다.

처음처럼. ‘부드러운’ 소주 광고

종교개혁 기념 글을 소주 광고로 마무리하게 되어 미안하지만 2020년 종교개혁 기념일에 즈음하여 이 소주병을 안 떠올릴 수가 없다. 정확히는 소주가 아니라 소주 라벨에 적힌 글씨이다.

이 서체는 아마도 민족주의로 살아가는 우리 시대에 문화와 종교를 불문하고 가장 영향력을 끼치는 모종의 영적 기운을 표지하는 서체일 것이다.

처음처럼. 소주가 ‘부드럽다’…라…

서체의 원작자에게 뒤집어 씌운 고난 받는 의인 메타포는 알콜에 대한 상업적 마케팅으로는 성공적이었을지 모르겠으나 정치·경제·문화에 끼친 여파는 가히 파괴적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여기서 이 ‘부드러움’은 언제나 서체의 필사자로 하여금 부드러운 이미지로 존재하게 하지만, 자신의 서체를 받아든 그 수령자에게서는 토템과 터부 특유의 강력한 기제 곧, ‘내가 앙갚음을 하리라!’로 임하기 때문이다.

서체에 담긴 놀라운 주술이 아닐 수 없다.

적어도 기독교인만큼은 이 ‘토템과 터부의 약속’에서 부디 벗어나길 바라며─.

낙태된 자들에 의한, 낙태된 자들을 위한, 낙태된 세상

‘낙태’란 말을 보통 유산(流産)과 구별된 의미로 쓰지만, 유산 자체는 본래 자연유산(stillbirth)과 인공유산(abortion)의 통칭이다. 낙태와 유산이 구별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기독교 경전에서도 낙태는 유산(abortion)과 구별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 시대 법리가 발달해서가 아니라 다산이 미덕인 시대에 인공유산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공유산 개념 자체가 없었던 것 같지는 않다.

서로 다투다 임신한 여인을 쳐서 낙태하게 하였을 때는 벌금 처벌을 받는 경우도 있었던 까닭이다(출 21:22). 유산의 원인을 의식하고 있었던 셈이다.

보다 정교한 의미로서는 낙태된 생명도 ‘존재’로 인식한 흔적이 있다.

욥은 “낙태되어 땅에 묻힌 아이처럼 존재하지 않게 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특히 그는 그렇게 낙태된 생명을 가리켜 “빛을 보지 못한 아이들”이라며 존재로 명시했다(욥 3:16).

2세기 초 교회 지도자인 오리겐은 플라톤의 영혼 선재설을 따라 아기가 생성되기 전부터 영혼이 있다고 가르쳤다.

그렇지만 출생하는 시점에 영혼이 창조되어 결합하는 인상을 주는 본문이 없는 건 아니다. 창세기 2장 7절, 전도서 12장 7절, 이사야 57장 16절, 스가랴 12장1히절, 히브리서 12장 9절은 다 영혼창조설에 인용되는 대표적인 예시이다.

(아담을 제외한) 인류의 영혼이 남성과 여성이 결합하여 생성하는 단계에서 직접 생산되는 것이라는 합리적 이해가 도입된 것은 16세기 종교개혁 이후의 일이다. 창세기 2장 2, 21절, 로마서 5장 1절, 히브리서 7장 9-10절을 토대로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 6:3, 그리고 찰스 핫지(Charles Hodge), 레이몬드(Robert L. Reymond) 등이 이와 같은 입장이다.

12세기 중세까지만 해도 가톨릭은 임신한 태아의 영혼을 이해할 때 “영혼 없는 태아”에서 “영혼 있는 태아”로의 발전단계로 규정하다 13세기 들어서는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남자의 배아는 임신 40일 후, 여자 배아는 90일 후 “영혼이 불어 넣어진다”고 규정하였다. 다소 미개한 논리지만.

이것은 성서 지식이라기보다는 논리의 조직이다.

창세기 2장 7절에 나오는 네페쉬 하야(נֶפֶשׁ חַיָּֽה)란, 그야말로 살아있는 존재로서 어떤 지식이나 이성을 초월한 존재 자체로서의 개념인 바, ‘배아’라 하여 영적 존재가 아닌 것으로 여기는 개념을 성서의 인식으로 볼 수는 없는 이유이다.

심지어 배아가 되기 전 태어나지도 않은 후손을 (아브라함의 허리에 들어있는) 존재로 여겼던 관념 따위를 기억할 것이다.

이는 어떤 관념이 아니라 연대된 생명으로서의 인식이었다.

한글 성경에는 낙태라는 말이 8번 정도 나오는데, 사실 명시적인 낙태라는 개념으로서 어휘는 욥기 3:16에 나오는 네펠(נֵ֣פֶל)일 것이다.

untimely birth, 즉 ‘조기 출산’이라는 뜻의 명사이지만 ‘떨어지다’라는 동사 나팔(נָפַל)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고대에 과연 현대적인 의미의 abortion, 즉 ‘인공유산’ 내지 ‘인공낙태’가 있었을까.

당연히 있었다.

다만 현대인에게는 낙태를 어떤 ‘의술’이라 여기는 교묘한 관념을 구현한다. 그래서 그 ‘의술’이 가하냐 불가하냐로 판단을 내리려 한다.

그러나 본질상 낙태는 의술이나 과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말이다. 의료적 기술 이전부터 그 어휘가 정확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듯이 그것은 ‘떨어지다’인 것이다.

욥기와 창세기는 거의 동시대 언어로서 창세기에 나오는 이 대목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이 ‘네피림’이라는 명사가 바로 나팔(נָפַל)이라는 동사에서 나온 말이다.

한 마디로 ‘낙태된 자들’이라는 소리다.

이들 네피림은 하늘(하나님의 아들)이 땅(사람의 딸)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그야말로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은 결과로서 존재라 할 수 있다.

1세기 예수 시대는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 자체가 ‘낙태된 세상’이었다. 종교적으로 이 세상을 영지주의라 부른다. 모든 사람이 하나 같이 자신을 낙태된 것만 같은 존재로 여긴 것이다. 현대에도 이런 네피림은 얼마든지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목격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권력이 주입하고 있는 교시는 언제나 ‘낙태된 세상’인 까닭이다. ‘헬조선’,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대한민국’…. 그런 다음 자신들이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아 낳은 듯, 사생아 같은 자신들의 죄상들은 모조리 낙태시킨다. 그들의 모든 죄상은 세상에 빛도 못 본채 덮인다. 낙태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이 기도하는 낙태 합법화 기조는 너무나 당연한 절차로서, 낙태를 ‘의술’로 보게 만드는 수법은 네피림으로서 자기 존재의 정당성을 얻으려는 전략적 윤리에 불과하다.

유대/기독교 성서는 자연유산(stillbirth)이나 인공유산(abortion), 둘 모두를 죄(ἁμαρτία)로 보는 시각을 갖고 있다.



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University Lecturer | 저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2017), 영혼사용설명서 (2016),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논문: 해체시대의 이후의 새교회 새목회 (2013), 새시대·새교회·새목회의 대상 (2011), 성서신학 방법에 관한 논고 (2011). 번역서: 크리스티안 베커의 하나님의 승리 (2020). | FB | Twtr | 개인블로그

예수의 제자와 히포크라테스의 제자

함께 읽을 글: 내가 의사들의 파업을 지지하는 이유

구약시대의 의료

유대인은 하나님의 율법에만 순종하면 건강을 보장 받는다고 믿었다. 그 율법에는 여러 건강 관련법이 포함되어 있다. 정기적인 휴식, 양질의 음식, 오염된 물 엄금, 결혼 규정, 청결, 전염병 격리 등에 관한 규정이다. 형법과 연계된 이런 위생법은 다른 주변국보다 높은 수준의 건강을 안겨줬다.

하지만 건강이 형법 원리와 연결된 결과, “율법을 어기면 질병이 생긴다”는 저주의 원리로 작용했다(참조. 신 28:60-61).

그리고 유대인은 의사를 부르지 않았다.

의사에게 의지한 사람은 하나님 뜻에 어긋난다는 비난을 받았다. 역대하 16장 12절의 아사 왕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시이다. 치병의 올바른 절차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었다(민 21:7; 왕상 20; 대하 6:28-30; 시 6; 107:17-21).

다른 나라의 병에 관한 태도는 유대인과 사뭇 달랐다.

이집트와 바벨론에서 질병은 악령의 활동에 대한 결과로 진단되었다. 이에 대한 대응이 의사의 역할이다. 의료 행위가 마술 수준에 그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미개한 마술 행위 속에서도 수술을 통한 의학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이들에게는 의료 행위를 통제하는 법도 있었는데 함무라비 법전에 따르면 남성이 구리 랜싯(의료용 양날 칼)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의 눈을 수술했을 때 그 사람이 눈을 잃으면 의사의 눈도 같은 구리 랜싯으로 빼내야 했다.

한편 이집트인은 뇌수술에 능했다. 두개골에 구멍을 뚫어 수술을 감행했다. 악령이 빠져 나가도록 하려는 목적에서였다. 이 과정에서 물리적 내부의 압력이 완화되면 그것을 치료라 느꼈다. 이런 기술은 여호수아가 점령했던 가나안족의 후예 라키슈(Lachish)에서도 시술되었다. 또한 이집트인은 치과 진료를 했으며 일부 페니키아인은 금니를 소유하고 있었다.

주변국의 의료에 대한 이런 이해는 앞서 유대인의 신학적 입장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에게 영향을 미쳤다. 유대인 중 일부는 악령을 막기 위해 부적을 착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욥기가 기록될 무렵에는 양상이 달라졌다. (욥의) 병은 죄의 결과가 아니라는 선언이 그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초림하기 200여년 전 기록인 전도서에 따르면 하나님은 치유자이시며 사람에게 치유의 선물을 주셨다고 전한다. 이사야는 말하기를 유대 민족의 상태에는 정화, 붕대, 연고가 필요하다고 했다(사 1:6). 아사 왕의 경우처럼 의사들은 주변에 존재했으며, 출애굽기 21장 9절은 사지가 다쳤을 때 목발을 사용하였음을 암시한다. 히스기야는 종기를 치료하기 위해 찜질을 한 것 같다(왕하 20:7).

몰약과 섞인 포도주가 진통제로 사용되었는가 하면(참조. 마 27:34), 맨드레이크 뿌리는 임신을 돕는 것으로 여겨졌다(창 30장).

이미 모세가 갓난아기였을 시대부터 조산술이 성행했다(출 1:15; 겔 16:4).

Healing of the Man Born Blind, painted by El Greco in 1567

예수시대의 의료

예수님 시대에는 도리어 의학에 대한 불분명한 태도를 보인다.

마가복음 1:32-34에는 질병에 관한 당시의 인식을 보여준다. 질병에는 나병, 역병(이질, 콜레라, 장티푸스)뿐 아니라 시력을 잃는다든지, 청각장애 같은 장애가 포함되었다. 간질이나 기타 신경 장애도 존재해왔다(참조. 삼하 12:15; 왕상 17:17; 왕하 4:20; 5:1-14; 단 4:33).

그런데 유대인은 앞서 의사들을 수용한 선조들과는 달리 의사에 대한 불신이 있었다. 질병과 죄의 연관성이 있다고 믿은 것이다(참조. 요 9:2). “의사는 자기 스스로를 고치라”(눅 4:23)는 경멸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모든 마을에는 의사가 있어야 했음은 분명하다. 여성출혈병 문제로 해당 여성이 여러 의사와 상담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막 5:26). 성전에는 언제나 의사가 상주했다. 그런데도 마가는 의사에 대해 부정적이다 (막 5:26).

예수님의 태도는 구약과 모순되지 않았다.

그는 질병을 세상에서 사탄의 악한 활동의 ​​결과로 여기는 듯 보였다. 그러므로 싸워야한다고 했다.

하지만 질병이 반드시 개인의 죄의 결과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요한복음 9장이 그 명백한 경우이다.

길을 가다 태어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을 보고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다. “선생님, 이 사람이 맹인인 것은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입니까, 그의 부모입니까?”

“이 사람의 죄도 부모의 죄도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는 하나님의 역사가 그의 삶에 나타나도록 일어난 일”이라고 해명했다.

예수께서는 질병이란 영혼이 그 질병을 소유한 결과임을 또한 수용했다(마 12:27).

초대 교회 시대에 기독교 사회가 의사를 받아들이는 일에 가속화한 데에는 질병에 대한 예수님의 이러한 정의에 근간한다.

이제 의사로서 누가는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의 명시적 동반자이다(골 4:14).

다시 말해서 현대인은 누가를 생각할 때 오늘날의 의료 수준에 의거한 첨단 과학도로 여기지만
전통 유대교에서는 수용을 주저하는 주술이요
새로운 세대에게만 유용한 과학이었을 것이다.

즉 누가의 등장은 의사/의술의 수용 여부에 관한 상징적인 일면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는 그리스인이었고 당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는 의술 학교들이 여럿 있었다.

히포크라테스의 가르침이 상징된 헬레니즘의 의료가 초대 교회 특히 바울의 선교 여행에 동반되었다는 사실은 새로운 이해와 지식이 선교의 주요 동력으로 활용되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기독교는 히포크라테스의 후예와 함께 종교의 선진화를 꾀하였다면, 히포크라테스의 후예는 왕족이나 귀족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기독교를 통하여 대중화를 이룩한 것이다.

21세기 한국의 초엘리트 왕족들이 의사들을 공공재로 전락시켜 자기 자식들에게 기술을 빼돌리려는 이때에 이들 고대 사회 의료인들의 생존의 방식을 세심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함께 읽을 글: 내가 의사들의 파업을 지지하는 이유



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University Lecturer | 저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2017), 영혼사용설명서 (2016),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논문: 해체시대의 이후의 새교회 새목회 (2013), 새시대·새교회·새목회의 대상 (2011), 성서신학 방법에 관한 논고 (2011). 번역서: 크리스티안 베커의 하나님의 승리 (2020). | FB | Twtr | 개인블로그

예배를 위해 저항하지 않는 목회자들의 수법

이데올로기가 팽창하는 사회에서는 종교도 양극단으로 치닫기 마련이다. 예루살렘이 무너진 1세기 팔레스타인 유대교 사회가 그랬으며, 그들의 선조인 고대 이스라엘이 멸망해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도 그러했다. 예루살렘은 그렇게 두 번 파괴되었다.

그런 사회가 도래하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덩어리의 빛깔도 둘로 갈라지는 법이다. 메시지가 양분된다는 소리다.

그 양분된 메신저로서의 표상을 꼽으라면, 한편에 예레미야를 다른 한편에는 하나냐를 세울 수 있다.

한 사람은 낙관론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비관론자이다. 예언자이자 선지자인 이들은 자신의 낙관론으로 혹은 비관론으로 사람들에게 미래를 펼쳐보인다.

이때 낙관론을 펼치는 예언자는 대개 계시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대에 의존한다. 특히 그 기대를 경험으로 변용하는 기술을 구사한다. 과거에 이러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대의 이 낙관론자는 이르기를 과거에 침략자(산헤드립)들이 들이닥쳤을 때 하나님의 보살핌으로 침략자들이 어떻게 순순히 물러갔는지 경험을 말한다.

반면, 비관론자는 경험과 기대에 의존하지 않는다. 현실을 직시하고 그 토대로 계시를 직접 작성한다.

능란한 낙관론을 펼치는 예언자의 이름은 하나냐.
절박한 비관론을 펼치는 예언자의 이름은 예레미야.

하나냐가 구사한 낙관의 기술은 이런 것이다.

1) 구체적인 사실을 추상적인 기대로 바꾸고, 2) 그 추상적인 기대에서 다시 구체적인 기대로 바꾼 다음 최종적으로는, 3) 질을 양으로 바꿔치기 하는 수법이다.

이전에 일어났던(산헤드립이 거저 물러갔던) 경험에 의존해 추상적인 기대를 구체적인 기대로 탈바꿈시킨 다음, 거기서 추론되는 ‘평화’(질)를 자신의 안전한 ‘지위’(양)로 바꿔치기 한다.

이것이 이들의 예언이다.

멀쩡한 예배를 폐쇄당하고도 저항의 말 한마디 못하면서 오히려 폐쇄당한 예배를 나무라고, 낙관을 입힌 새 예배를 선호하는 우리 시대 목회자들은 이 대열에 포함될 것이다.

하늘의 계시를 직접 작성했다기보다는 가이사가 부르는 평화의 노랫말 가사를 받아 적는 것에 불과하다. “평화가 경제다” 뭐 그런 가사들이다.

이런 부류의 선지자는 엄밀한 의미에서 부르주아지이다.

계시를 직접 받아본 일이 없다. 기대를 양으로 바꾸는 변용에 능할 뿐.

반면, 예레이야는 낙관론자들에 비하면 예언에 관한한 철저하게 유물론자이다.
추상적이지 않기 때문에.

사물을 직시하고 통찰한다. 이것이 그가 ‘직접’ 작성하는 계시의 실체이다.

가이사의 노랫말을 설교하는 자들과는 달리 직접 받아 기록해 전해야 하는 예레미야는 그야말로 말씀의 노예이다.

예배를 고수하는 목회자들이 이 같은 노예들일 것이다.

이들은 하나냐와 달라서 예배를 추상화할 줄 모른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를 영과 진리로 드려야 한다’며 추상화시키는 자들과는 다르다. 그들이 추상화한 예배에서 자신들의 ‘양’(量)으로 바꿔치기 할 때에도 이 노예들은 추상화된 낙관론을 배격할 뿐이다.

추상적인 ‘기대’를 물(物)로 바꾸는 저 기획은 언제나 맘몬이다.

자고로 마오쩌둥은 추상적인 질(質)에서 물(物)로 치환하는 기술을 혐오하였으나, 마오쩌둥이 칭송한 노예는 오히려 예레미야와 그의 후예들인 반면, 마오쩌둥이 싫어한 수법을 쓰는 하나냐의 후예들은 오히려 마오쩌둥과 친숙한 사회를 살아간다. 이것이 이 변종 시대의 특징이다.



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University Lecturer | 저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2017), 영혼사용설명서 (2016),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논문: 해체시대의 이후의 새교회 새목회 (2013), 새시대·새교회·새목회의 대상 (2011), 성서신학 방법에 관한 논고 (2011). 번역서: 크리스티안 베커의 하나님의 승리 (2020). | FB | Twtr | 개인블로그

8·15 코로나 박해를 대하는 한국교회 엘리트주의 방식

어게인 1907

십여 년 전 ‘어게인 1907’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한국교회에 강타한 적이 있다. 2007년을 앞두고 몇 년간을 들썩였는지 모른다.

‘1907’이란 숫자는 한국 기독교 역사에 있어 마치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오순절 성령 강림처럼 부흥의 분기점이 되었다 하여 “한국의 오순절 강림일”로 불리며 가장 의미 있는 사건의 발생 연도로서 기리는 상징 수이다.

2007년을 앞두고 몇 년 전부터 그 해가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100주년이라는 상징성의 극대화 때문인지 마치 시한부 종말의 사인처럼 기독교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설렘을 자아냈다. 2007년에 무슨 이벤트가 있는지, 그것을 주관하는 주체는 누구인지, 전혀 알지도 못하고 정해진 바도 없으면서 몇몇 인기 찬양 인도자 중심으로 그렇게 2007년을 향하여 돌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7년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평화와 평등만 외치는 낭만주의 기독교인은 아마도 1907 ‘평양’에서 일어났다는 그 한 가지 사실만 부각하여 2007년 실제로 평양에서의 ‘평양 대부흥 1907’을 복고하리라 야심에 차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단상의 ‘의자’ 가지고 싸우느라 부활절 연합 예배 하나도 제대로 못 치르게 된 대형교회 또는 교파주의자로서는 ‘1907’은 큰 구미를 끌기 어려웠을 것이다(내 자리 어디야).

2007년이 되자 한국교회를 강타한 것은 ‘아프칸 피랍 사태’였다.

탈레반이 한국 개신교인 단기 자원봉사자 23명을 피랍하여 감금 억류하다 심성민씨와 배형규 목사, 두 명을 살해하고 나머지 단원을 42일만에 풀어준 사건이다. 당시 개신교는 단기 선교라는 ‘관광 상품’에 물질과 시간이나 허비하는 상식도 없는 독선의 집단이라는 집중포화를 맞았다. 그 상식의 돌팔매에는 개신교 엘리트들이 던지는 돌이 다량 섞여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실제 1907

기독교인에게 ‘1907’은 막연한 로망 내지는 상징성으로만 남아 있다.

역사적 날줄이 실제로 어떻게 임하였는지는 잘 기억 못한다. ‘1907 대부흥’이 과연 성공한 부흥이었느냐는 그 후 3년 뒤에 일어난 사건을 통해서만 제대로 된 평가를 할 수 있다. 3년 뒤에 일어난 충격적 사건은 ‘한일 병합 조약’이기 때문이다. 대부흥회 후 3년 뒤에 나라를 완전히 잃고 만 것이다.

책으로 만나는 역사는 자기 필요한 것만 골라 극적으로 읽을 수 있지만, 실제로 살아 내는 역사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것은 마치 BC 7세기 유다왕국 요시야 왕의 대대적인 종교개혁에도 나라가 멸망하고 말았던 비극처럼, 그리고 ‘어게인 1907’을 고대한 한국교회에는 탈레반의 테러와 더불어서 같이 쏘아 대는 엘리트 기독교도들의 조준 사격처럼, 1907년의 통렬한 대 회개 운동은 ‘한일 병합 조약’이라는 결과로 매듭되었다.

…회원 또는 후원 구독자 회원에게 공개된 콘텐츠입니다. 콘텐츠에 따라 회원가입만으로도 접근 가능한 경우가 있고 후원 구독자로 기한 약정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로그인 후 확인하십시오. 콘텐츠 공개 정책 보기.

This content only allowed by Contributors or Sponsor. You are a anonymous. Please be a contributors or sponsor through donation.



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University Lecturer | 저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2017), 영혼사용설명서 (2016),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논문: 해체시대의 이후의 새교회 새목회 (2013), 새시대·새교회·새목회의 대상 (2011), 성서신학 방법에 관한 논고 (2011). 번역서: 크리스티안 베커의 하나님의 승리 (2020). | FB | Twtr | 개인블로그

내가 의사들의 파업을 지지하는 이유

고대 그레꼬 로만시대의 외과 수술 도구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이른 고대에도 눈에 칼을 대는 백내장 수술이 있었다는 보고는 깜짝 놀랄만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깜짝 놀랄만한 의료 기술에도 당시의 의사들은 치료에 실패하면 죽음을 면치 못하였다. 왕족과 세도가들이 그리 처후하였다. (의술은 왕족의 전유물이었던 걸 알 수 있다)

이런 열악한 신분을 신적 지위에까지 올린 것은 히포크라테스(Ἱπποκράτης)의 공적일 것이다. 자신들의 혈통을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Ἀσκληπιός)와 접목시키고 자신들의 의술에 덕목을 입힌 결과였다. 이른바 히포트라테스 선서는 한마디로 그 신적 지위에 대한 심볼인 셈이다.

모든 시대 모든 나라 의사의 전통 선언문으로 차용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Hippocratic Oath)는 히포크라테스가 자기 선대의 의료적 견해들을 정리하면서 직접 시행해보고 그 치료의 결과들을 자료화하여 도출해 낸 요약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래 전문을 읽어보면 알다시피 환자 치료에 관한 직접적인 내용이라기보다는 사회 윤리적 측면을 강조하되, 특히 의사들의 가문(이나 이너써클)을 위한 조언을 주된 내용으로 담고 있다. 서로의 아들을 가르치고 자신들의 교사를 보살 피는 내용이다.

역사적으로 고대의 어떤 의료 그룹이 이 문서를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히포크라테스는 이를 논거로 세우려는 집단의 소구가 만들어낸 이미지임을 알 수 있다. 실존적 히포크라테스는 BC 430년경 플라톤에 의해 언급된 정도가 그 유래인 까닭이다.

이 선언문 중에서 매우 특이한 본문 하나를 소개하려고 한다. 우선 그 전문이다.

…회원 또는 후원 구독자 회원에게 공개된 콘텐츠입니다. 콘텐츠에 따라 회원가입만으로도 접근 가능한 경우가 있고 후원 구독자로 기한 약정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로그인 후 확인하십시오. 콘텐츠 공개 정책 보기.

This content only allowed by Contributors or Sponsor. You are a anonymous. Please be a contributors or sponsor through donation.



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University Lecturer | 저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2017), 영혼사용설명서 (2016),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논문: 해체시대의 이후의 새교회 새목회 (2013), 새시대·새교회·새목회의 대상 (2011), 성서신학 방법에 관한 논고 (2011). 번역서: 크리스티안 베커의 하나님의 승리 (2020). | FB | Twtr | 개인블로그

진중권의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신학적 서평

진중권,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 (천년의상상, 2020)

이 글은 진중권 교수의 책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역사편에 관한 간략한 서평이다.

1. 안티 기독교 세 사람

나는 오래 전에 <안티 기독교 세 사람, 니체, 김용옥 그리고 진중권>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한 일이 있다. 제목만 들으면 세 사람을 비판한 내용 같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세 사람이 기독교에 대해 어떻게 오해하게 되었는 지 공통점을 소개한 내용이었다.

제목만 보고 달려온 팔로어들에게 한 동안 시달려야 했지만, 나의 추론은 그렇게 빗나간 것이 아니다. 세 사람의 담론에서는 적어도 힌두교나 이슬람교 토양에서는 맡올 수 없는 흙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안티 크라이스트 (The Antichrist)를 제창한 프리드리히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하였을 때 Gott gestorben(God died)이라 쓰지 않고 Gott ist tot(God is dead)라고 쓴 것은 하나님이 사망(died)했다는 뜻이 아니고, 사람들이 만든 하나님이 낡아져가고 있다(is dead)는 뜻이라는 사실도 나는 이해했기 때문에 이들의 방법적 안티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들 셋 중에서 진중권은 제외하기로 했다.

2. 고양이 사물화(Verdinglichung)를 통한 해석학

이는 딱히 그가 지금 월교(月敎) 신자들과 고독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는 이유에서만이 아니라, 바로 이 책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를 읽고 얻은 어느 정도의 확신에 기반한다.

이 책은 ‘고양이’라는 생물을 매개로 해석학을 구현하는 책이다.

그의 고양이는 여기서 사물화(making into a thing)된 생물이다. 저자는 고양이를 인류보다도 더욱 ‘생물’이라 웅변하지만 사실은 그 웅변속에서 고양이는 더 사물화된다. 왜냐하면 사물화 속에서 생기(生起)하는 것만이 언제나 해석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해석의 대상만이 진정한 생물이다.

…회원 또는 후원 구독자 회원에게 공개된 콘텐츠입니다. 콘텐츠에 따라 회원가입만으로도 접근 가능한 경우가 있고 후원 구독자로 기한 약정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로그인 후 확인하십시오. 콘텐츠 공개 정책 보기.

This content only allowed by Contributors or Sponsor. You are a anonymous. Please be a contributors or sponsor through donation.



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University Lecturer | 저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2017), 영혼사용설명서 (2016),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논문: 해체시대의 이후의 새교회 새목회 (2013), 새시대·새교회·새목회의 대상 (2011), 성서신학 방법에 관한 논고 (2011). 번역서: 크리스티안 베커의 하나님의 승리 (2020). | FB | Twtr | 개인블로그

차별금지법이 설교금지법으로 변하는 원리

차별금지법안 취지를 설명하는 장혜영 의원

“차별금지법은 ‘설교금지법’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입법 의원 인터뷰를 보았다. 차별금지법을 찬성하는 기독교 매체에서 인터뷰를 한 것 같다.

해당 국회의원의 입법취지는 선량한 동기에서 출발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한 입법 의원으로서 법이 갖는 기본적인 구심력에 관하여 간과하는 것으로 보여 유감이다. 만일 그 구심력을 알고도(혹은 기대하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권리 침해가 없을 것이라 말하는 것이라면 기만이기 때문이다.

이 입법자들은 이 법안에 대해 흔히 이렇게 요약한다.

…회원 또는 후원 구독자 회원에게 공개된 콘텐츠입니다. 콘텐츠에 따라 회원가입만으로도 접근 가능한 경우가 있고 후원 구독자로 기한 약정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로그인 후 확인하십시오. 콘텐츠 공개 정책 보기.

This content only allowed by Contributors or Sponsor. You are a anonymous. Please be a contributors or sponsor through donation.



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University Lecturer | 저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2017), 영혼사용설명서 (2016),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논문: 해체시대의 이후의 새교회 새목회 (2013), 새시대·새교회·새목회의 대상 (2011), 성서신학 방법에 관한 논고 (2011). 번역서: 크리스티안 베커의 하나님의 승리 (2020). | FB | Twtr | 개인블로그

“자살하면 정말 지옥에 간다는 근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 글은 몇 해 전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 검찰 수사 직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두고 여러 목회자가 자신의 이념에 준거해 왜곡된 구원관을 유포하는 것을 바로잡고자 작성한 글이다. 그 이후로도 정치인의 자살은 근절되지 않고 있고 이를 미화하는 정치적인 정서는 사회를 어둠에 빠뜨리고 있는 실정이다.

“자살하면 정말 지옥에 간다는 근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근래 받은 질문이다. 과거에는 ‘자살하면 지옥 간다’라는 금칙이 기독교 내에서 계명으로 각인이 되어왔지만, 지금은 이 금칙이 사실상 붕괴된 것처럼 보인다.

세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첫째, 자살자가 너무 많아졌다. 둘째, 자살의 양상이 (가령 자기 통제가 불가능한 정신적 공격에 따른 경우 등) 다양하다. 셋째, 영향력 있는 목회자들이 진리가 아닌, 자기 이념에 준하는 발언으로 자살을 사실상 순교로 승격시키고 있는 여파이다.

이 셋 중 앞의 두 가지는 교회가 짊어지고 가야 할 과업이지만, 세 번째는 지탄받아 마땅한 일이다. 저런 목회자들의 발언은 생명과 직결된 이 금제를 해제시키는데 발빠르게 조력할 뿐 아니라, 사실상 중세교회의 면벌부에 상응하는 2차 오판을 양산하고 있음에도 자기 인기에 영합한 무책임한 레토릭을 도무지 그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부쩍 자살과 순교의 경계가 모호해진 진원지가 사실은 이 분들의 입에 있다. 이들에 따르면 예수의 죽음도 자살인가.

“자살하면 지옥 간다”는 금제는 어제나 오늘이나 흔들림이 없다.

성경에 나오는 자살은 총 여섯 장면이다.

가장 처음으로 자살하는 인물은 아비멜렉이다. 기드온의 서자(庶子)로 태어나 배다른 형제 70명을 죽이고 권력을 쥐었으나, 한 여인이 던진 맷돌 위짝에 머리를 맞아 절명하기 직전, 여자의 손에 죽었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 병기병의 손을 빌어 자결한다(삿 9장).

다음은 아히도벨이다. 다윗의 반역한 아들 압살롬에게 다윗을 궤멸시킬 모략을 제시했으나 압살롬이 자신의 계략을 수용하지 않자, 압살롬이 멸망할 것을 직감하고 목을 매 자살한다. 어차피 계략이 수용되지 않았는데 왜 자살했을까. 그는 압살롬에게 아버지의 후궁들을 범하라고 조언한 인물이다(삼하 17장).

그 다음은 시므리이다. 아사 왕을 죽이고 왕이 된 바아사가 북이스라엘을 통치한지 24년 되던 해에, 바아사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바아사를 죽이고 왕이 된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7일밖에 왕이 되지 못했다. 강력한 장수 오므리가 깁브돈에서 블레셋과 전쟁을 하다 말고 돌아와 시므리의 쿠데타를 종식시켰기 때문이다. 시므리는 왕궁에 불을 지르고 그 안에 들어가 스스로 타 죽는다(왕상 16장).

그 다음 자살한 인물은 사울이다. 다윗과의 애증 관계 속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다 블레셋과의 전투 중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그러나 자살로 끝맺는다(삼상 31장).

다음은 사울의 병기병이다. 사울이 죽여줄 것을 요구했지만 차마 그리하지 못하여 사울이 자신의 칼로 스스로 자결하자, 이 무명의 병기병도 같은 칼 위에 엎드러져 죽는다.

마르크 샤갈, 사울의 죽음. 1956년작

끝으로 가룟 유다이다. 가룟 유다의 행위에 대한 전승이 네 복음서 각각 공동체의 입장에 따라 약간씩 상이하게 보전돼 있다. 마태는 유다 자신이 스스로 선생님을 팔아 넘겼음에도 정작 법정에서 최종 유죄 판결을 받자 자살을 결심하게 된 듯한 인상을 남김으로써, 유다 자신의 양가적인 번민을 인상적으로 극대화시키고 있다(마 27장).

신약성서 저자가 당대에 자기들이 체험한 인물 가룟 유다의 종국을, 상기 구약의 자살한 인물들 가운데, 유독 다윗의 정적인 사울의 종말과 가장 흡사하게 유비시킨 것은 유의해서 보아야 할 대목이다.

선택받아 기름부음으로 시작했던 사울이 직제에서 탈락하며 맞이하는 비극적 결말을 가룟 유다의 자살을 통해 읽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모호한 죽음에 대한 단호한 입장이기 때문이다. 즉 자살로는 속죄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특히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γέεννα)’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는 어록을 직접 받아든 초대교회 설립자들이 규정하는 사후 세계야말로 사후의 진정한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마태는 가룟 유다의 사후에 부쳐, 대제사장들이 은전 삼십을 부정한 핏값으로 여겨 성전 금고에서 빼내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 묘지를 삼은 것에 주목했다. 그 밭이 피밭이라 불리게 된 연유를 예레미야의 예언과 결부지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이 있다.

대부분의 현대 주석가들은 마태의 이 예레미야 예언 인용부를, 사실 스가랴의 예언을 마태가 착각해서 인용한 것으로 여긴다. (내가 곧 그 은 삼십을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슥 11:12-13))

하지만 누가는 행전에서 마태의 인용이 착각이 아님을 보다 선명하게 보충하고 있다. 바로 이 대목이다.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어져 그들의 말로는 그 밭을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여기서 ‘Ακελδαμά(아켈다마)’는 사실상의 하계를 표지하는데, 실제 지리적으로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גהנום‬) 남쪽, 이른바 ‘살육의 골짜기’의 하크-에드-둠[빨간 밭]으로 추정됨을 감안할 때, 이는 보다 명확하게 지옥-‘게헨나(Γεέννα)’로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마태가 앞서 예레미야를 인용했을 때, 그것은 바로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본질을 예레미야가 통찰한 대목을 본 까닭이지, 스가랴의 예언과 혼동한 것이 아니다.

예레미야에 따르면, 힌놈의 골짜기는 본래 (하나님으로 은유된) 토기장이가 (인간으로 은유된) 토기를 부숴버리는 장소인 동시에, 몰렉에게 행하는 인신제사, 즉 자살 행위의 장소와 동일시하는 공간으로서 사악한 우상숭배의 진원지로 여기는 장소였던 것이다.

즉, 자살은 우상숭배의 총화인 셈이다.

이것이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는 근거이다.

유명인들의 자살을 마치 속죄의 한 양상으로 인준하는 듯한 일부 목회자의 언설과는 전혀 배치되는 것이다. 자살은 속죄의 양식이 아니다.

교회는 자살은 반드시 범죄요 지옥으로 들어서는 명백한 길임을, 성서가 말하는 대로 분명하고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University Lecturer | 저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2017), 영혼사용설명서 (2016),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논문: 해체시대의 이후의 새교회 새목회 (2013), 새시대·새교회·새목회의 대상 (2011), 성서신학 방법에 관한 논고 (2011). 번역서: 크리스티안 베커의 하나님의 승리 (2020). | FB | Twtr | 개인블로그

차별금지법 ‘찬성 교회’와 ‘반대 교회’를 가른 ‘두 뿌리’

차별금지법 입법 예고된 가운데 반대하는 시민들

한 교회 두 뿌리

차별금지법. 사안을 표면적으로만 보면 ‘차별 금지’를 반대하는 기독교는 참 이기적인 집단으로 보일 것 같다.

그러나 조금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차별금지법’은 그 차별의 주체와 객체의 불분명함 때문에 포괄적인 ‘통제법’이라는 것이 법조인의 대체적인 견해이다.

현대인치고 차별을 즐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굳이 종교적 경구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자신이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기에 평등은 보편적 가치이다.

그렇지만 그 평등한 지위로 우리가 종교와 같은 특수한 공동체에 귀의하였을 때는 차별화된 선택적 의지를 전제한다. (동성애자만 자기 속성을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선택적 참여로서 그 선택을 한 사람 자신이 사회적 역할과는 별개로 (수고스럽게) 부담하는 행위이다. 사회에 전가하는 행위가 아니다. 차별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래서 ‘구별’이라는 용어를 쓴다.

비단 기독교뿐 아니라 불교나 여타의 고등 종교는 국가와 사회의 질서에 반하는 권역이 아니기 때문에 민족과 그토록 오랜 세월을 함께 한 것이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의 질서가 이념이나 분쟁, 전쟁 또는 천재지변 같은 재앙을 겪으며 질서가 재편될 때는 핍박을 받아왔다. 그래서 종교로서는 이러한 탄압의 전조가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다.

같은 종교 내에 이러한 재앙적 입법 행위에 찬동하는 종교인이 있고 반대하는 종교인이 공존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원리주의를 고수하는 기독교 내에 그런 두 집단이 공존하고 있으며 금번에 차별금지법을 찬성한 교회와 반대한 교회가 그것이다.

왜 그럴까 싶겠지만, 사실 이는 역사의 복고이다.

차별금지법을 찬성한 교회

이 두 교회는 오늘 이 시점에 나뉜 게 아니라 뿌리를 다르게 갖고 있다. 그 두 뿌리를 약술하려고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우선 기독교 경전의 한 구간을 소개해드린다. 판독해보시기 바란다.

아래 인용문은 뭔가를 더하거나 뺀 구문이 아닌데도 ‘중요한 뭔가’가 하나 빠져 있다고 취급되는 구간이다.

“내 조상은 방랑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애굽에 내려가 거기에서 소수로 거류하였더니 거기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는데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히며 우리에게 중노동을 시키므로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보시고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

ㅡ신 26:5b-9.

이 구간은 신명기 26장 5-9절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더하거나 뺀 것이 없다. 그대로이다. 그런데 여기에 뭔가 하나가 빠져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기 시작했다. 무엇이 빠졌느냐?

바로 시내산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 있다.

위 문단은 야웨 신앙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신조(Creed)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고백의 문단에, 그토록 중요한 ‘시내산 이야기’가 단 한 줄도 없는 것이다. 이는 실제로 이상한 대목이다. 토라(오경) 전체에서의 시내산 사건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있을 수 없는 생략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발견을 놓고서 사람들은 결론 짓기를 토라, 즉 구약성서는 ‘편집된 본문’이라는 확신에 다다랐다. 이러한 방식으로 성경 읽기를 가르친 학자로는 구약학의 거장 폰라트를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읽기의 방식이 우리나라에 도입이 된 것은 1930년대의 일이다.

우리나라 근대기에 이러한 성경 읽기의 방식을 투척한 대표적 인물은 김재준(1901-1987)일 것이다. 한국교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시도를 ‘축자영감설’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 전통 한국교회에서는 즉각적으로 반응했고 결국 이것은 장로교 분열의 씨앗이 된다.

…회원 또는 후원 구독자 회원에게 공개된 콘텐츠입니다. 콘텐츠에 따라 회원가입만으로도 접근 가능한 경우가 있고 후원 구독자로 기한 약정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로그인 후 확인하십시오. 콘텐츠 공개 정책 보기.

This content only allowed by Contributors or Sponsor. You are a anonymous. Please be a contributors or sponsor through donation.



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University Lecturer | 저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2017), 영혼사용설명서 (2016),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논문: 해체시대의 이후의 새교회 새목회 (2013), 새시대·새교회·새목회의 대상 (2011), 성서신학 방법에 관한 논고 (2011). 번역서: 크리스티안 베커의 하나님의 승리 (2020). | FB | Twtr | 개인블로그

헤르메네이아 미문 (美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