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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신학

“말씀과 신앙은 철학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목회자는 어김없이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골 2:8)라는 바울의 말을 동원하기 마련이지만, 아무렴 바울의 글만큼 철학적인 게 또 있을까. 신학을 듣고서도 철학이라 말하는 그런 사제는 대개 신학이 없기 때문이다. 본래 철학은 신학에서 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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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오늘날의 영화는 사실상 텍스트를 대체한다. 영상은 필경 사고를 짧고 단순하게 만드는 부작용도 있으나, 그럼에도 책을 멀리하는 이 시대에 텍스트로서 우리에게 임한다. 그래서 영화를 텍스트로 읽어내는 방법적 해석들을 이곳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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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칼 바르트는 말하기를 한 손엔 성경, 한 손엔 신문을 들라고 하였으나 사제로서 요즘 같이 시사를 입밖에 내기 어려운 시절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이념으로 양분되었기 때문이다. 사제 자신도 분명 어느 편엔가는 속해 있겠지만 반드시 비율(Logos)을 맞추는데 종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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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기독교 서적뿐만 아니라 다양한 책들에 대한 서평을 이곳에 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책뿐 아니라 그림 예술 작품에 대한 해석학적 지평도 편의상 이곳에 함께 담아 두었다. 표현은 여러 형식이지만 해석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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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설립 이후 줄곧 ‘성서일과’로 설교해왔다. 주제 설교를 지양하기 위해서이다. 주제 설교가 나쁜 건 아니지만 설교자 개인이 주제를 선정할 때에 그것은 원천적으로 지엽적이다. 한 주간 속(俗)에 있다 지쳐 나오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고서는 ‘사람의 입’을 타고 나오는 말을 들려줘야 하니, 그것이 일개 개인 자의로 선택된 것이라면 과연 얼마나 대언력을 갖출 수 있겠는가 하는 마음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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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신앙

교회와 신앙, 그러니까 말하자면, 보다 실천에 상응하는 이야기를 이곳에 모아 두어야 하나, 교회가 작다 보니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걸려 몇 자 적을 것이 없는 한계가 있다. 100명이면 100에게 던지는 익명의 소리가 가능하고, 50명이면 50명에게 던지는 익명이 가능하나 10명 안팍에서는 불가하다. 그걸 실천의 언어라 칭하고들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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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묵상

온라인에 개인 묵상을 공유한다는 데에는 다음 어려움이 따른다. 대부분 멋진 묵상만 보여주려고 뭔가를 꾀하기 때문에(그러면 묵상이 아님) 그리하여 상대적으로 보여주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매일’을 엄수하기 어렵기 때문에. 학기 중에는 얼마나 지킬 수 있을 건지 모르나 엄수 하고자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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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네이아 미문 (美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