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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주의(Dispensationalism)와 대체신학의 극단성에 주의를 요구한 글이다.

우선 히브리인, 이스라엘인, 유대인이라는 명칭에 대한 명확한 차이를 유념해야 한다.

히브리인

히브리인은 아브라함을 일컫는 말이다. 현대 이스라엘인을 히브리인이라 부른다면 한국인을 고조선 사람이라 부르는 것처럼 올바른 표기가 아니란 뜻이다.

이스라엘인

이스라엘은 야곱을 일컫는 성명이었다. 이 성명이 기원전 6세기까지 국호에 사용되다 나라가 멸망하면서 사라졌다.

유대인

유대인이란 명칭은 야곱의 넷째 아들 성명을 자기 정체성으로 규정하던 이들이 고대 헬라의 국제사회에서 유다이오스(Ἰουδαῖος)로 불리다 지역적 의미로서의 라틴어 ‘유대’(Judea, Ιουδαία)라 불린 데서 유래하였다. 앞서 기원적 6세기에 멸망하고 포로로 끌려갔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돌아온 사람들이 4세기경 나라를 재건할 때 자기 정체성을 순혈주의로 한정하는 과정에서 표지로 삼은 명칭이다. 그것은 유다라는 한 부족의 이름을 표방한 것이었지만, 일종의 사회 무브먼트였다.

또한 그것은 그 이후에도 오랜 세월 나라 없이 떠돌던 이 민족에게 여러 지역에 퍼져 명맥을 지탱할 때 국가란 개념보다는 종족주의적 의미를 부여해준 이름이기도 하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 창궐하는 종족주의가 수많은 사회 문제를 양산하고 있듯이 이들의 재건 운동은 말기에 다다를수록 한계를 드러냈고, 그들에 대한 혐오가 성경에서도 ‘바리새인’이라는 명칭으로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러니까 예수의 실존 사역을 훼방하고 최종 사형 언도를 받기까지 역할을 한 세력은 유대인 유대주의인 셈이다. 공관복음에서 예수의 주된 적대자를 ‘바리새인’으로 명명한 것은 이 민족에 대한 혐오를 예방한 배려일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유대인을 예수의 명백한 적(anti)으로 규정한 복음서가 있었으니 그 문헌의 이름이 요한복음이다.

예수의 실존 사역과 죽음뿐 아니라 이제 그 후예들이 명맥을 이어가는데 있어서도 강력한 위협과 저주가 된 세력은 단연 유대주의였다. 예수의 추종자를 색출해내 잔당을 소탕하고 돌아다닌 대표적 인물로는 파울로스/바울을 들 수 있다.

성경에 남아 있는 유대인에 대한 혐오감은 중세 시대로부터 유럽의 기독교인에게 그릇된 정보를 주었다. 예수를 죽게 만든 원흉으로 유대인을 지목하는 근거로 활용된 것이다.
그 때문에 유대인은 십자군 전쟁 때도 고초를 당해야 했고 히틀러가 집권했을 때도 멸종의 위기에 처했다.

상기에 언급한 바와 같이 ‘유대인/유대주의’의 기원이 갖는 특수한 의식은 현대 유대인에게도 관습으로 발전하여 이들을 대하는 각 나라 현대 프로테스탄트의 반응이 두 가지 양상으로 갈라지는데 영향을 끼쳤다.

세대주의

하나는 유대인의 특수한 선민의식에 잠식당한 열등한 역사 의식이다. 기원전 4세기발 특수주의 유대 문화를 기독교의 원형으로 보려는 관습의 전이이다. 이들은 이것을 모종의 영원회귀의 운동으로 규정한다. 이 운동에 대한 경멸의 의미로 붙여진 명칭이 이른바 세대주의이다.

다른 하나는 유대인을 선민으로 보는 이 특수주의 시대가 종식되었다고 규정하는 기독교인들의 사상이다. 이들은 이스라엘이라는 명시적 정체성이 교회로 완전히 이행하였기에 더 이상 회귀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대체신학이란 명칭은 이들을 경멸하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유대인과 한국인

양자는 다음 두 가지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전자는 뭔가 원형으로 되돌아가겠다는 순혈 감성이 주도해서겠지만 실상은 사마리아 컴플렉스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마치 예수를 만난 사마리아 여자가 전혀 순혈이 아닌 자기 정체를 망각하고 순혈의 상징 산인 그리심산에서 예배드린다고 자랑한 것과 같은 모습이다.

후자는 율법을 마지막 최후의 순간까지도 폐기하지 않았던 초대교회 설립자들의 교회론을 망각한 탓에 발호된 신학이다. 공관복음이 그리스도에 대한 안티를 ‘파리사이오스’(바리새인)로 제한한 것은 율법의 형식을 폐지하고 율법은 보전하려는 조처였음을 망각한 것이다.

이들 양자는 유대인을 적으로 명시한 요한복음의 깊은 의도를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유대인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마리아인에게 이르기를 구세주가 유대인에게서 났다는 사실을 명시하기 위한 조처인 동시에(요 4:22), 역시 이 세상 모든 사마리아인에게 고하기를 유대인에게서 난 그 구세주가 바로 세상(세계)의 구세주라는 사실을 명시하기 위한 의도로 기능한다(요 4:42).
자신이 종교적 사마리아인이라는 열등감 때문에 새삼 양을 도살하는 제사를 원형으로 탐닉하는 한국 기독교인들ㅡ,
역시 자신이 사마리아인이라는 열등감 때문에 양이 아닌 유대인을 도살하려는(또는 도살해도 좋다는) 한국 기독교인들은 예수께서 선언한 바, “저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아버지께 예배할 때”로 지목한 그 시간성 예배에 관해 깊이 숙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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