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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저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만물을 밝히 보는지라” ─막 8:25
글을 쓰다보니
다음과 같은 분류가 생겨났습니다. 성서와의 지평융합을 지향합니다.
시사
칼 바르트는 말하기를 한 손엔 성경, 한 손엔 신문을 들라 하였으나 요즘처럼 시사를 입밖에 내기 어려운 시절도 없었을 것이다. 사회가 이념으로 양분되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 자신도 분명 어느 편이든 속해 있기 마련지만 반드시 비율(Logos)을 맞추는 본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교회와신앙
많은 사람이 성경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교회만큼은 용서하지 못해 혐오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아니고서는 누구도 하나님 형상에 다다를 수 없습니다.
설교
‘성서일과’ 설교를 지향합니다. 주제 설교를 지양하기 위해서입니다. 주제 설교가 나쁜 건 아니지만 설교자 개인이 주제를 선정할 때 그것은 원천적으로 자의적이기 때문입니다.
“빛보다 상쾌한 것은 무엇이냐?”
맛은 생존이며 대화(ἑρμηνεία)는 행복(εὖ)입니다. ─Aristotle
“우리는 흙을 통해 흙을,”
물을 통해 물을, 공기를 통해 신성한 공기를, 불을 통해 파괴적인 불을, 그리고 미움을 통해 쓰라린 미움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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