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년(辛丑年)─기독교인에게 ‘소의 해’란?
동물이 지닌 기질을 통해 만물의 순환 원리를 예측하거나 규정하는 행위는 미신 행위이다. 고대에는 동물의 배를 갈라 내장의 도상에서 신점을 치는 미개한 행위가 성행하였다. 하지만 동물이 지닌 기질에서 기호를 추출해 사물을 읽어내는 일은 미개한 행위도 미신 행위도 아니다. 형이상학적인 관조 행위이다. 성서 안에 등장하는 수많은 동물과 그 역할은 이런 범주에 해당한다.

올해는 소의 해이다. 거듭난 기독교인은 ‘소띠’가 아닌 ‘예수님 띠’라고 말하겠지만, 2021년을 맞이하여 ‘소’라는 동물로 읽는 사물의 기호에 관해 몇 자 남기려고 한다.
일반적인 기호
고대로부터 소는 풍요의 상징이었다. 남성적 생산력의 상징이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태양과 비, 폭풍과 벼락을 가져오는 힘으로서의 건조함과 습윤의 원리로 연관지어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황소를 제물로 바치는 행위는 고대의 오랜 관습이다. 특히 신년에 소를 잡는 행위를 겨울의 죽음과 창조/생명력의 탄생으로 여겼다.
고대 문명 수메르에서의 모든 제례 의식이 소를 매개로 치러졌다. 의인화된 소는 일종의 문지방 수호신으로 보화의 상징이었는가 하면, 바벨론의 신 마르둑이 바로 ‘빛의 황소’였다. 고대 중동에서 숭배된 이 황소는 하늘 공중의 커다란 고랑을 지나가는 ‘하늘의 황소’로 신화화 되었다. 그들의 신 아슈르와 아다드는 이 하늘 황소를 타고 다니는 신이다.

고대 크레타 섬을 중심으로도 소에 관한 신화가 발달해 있는 것은 다른 문명과 마찬가지로 이 지역에서 역시 소를 우상시 했음을 방증한다. 호메로스에 따르면 대지의 신은 황소를 좋아한다. 땅에서 일어나는 지진은 황소가 뿔로 대지를 들이받아 생기는 현상으로 알려졌다. 크레타 섬에서 역시 황소는 번식력의 상징이었다.
종교적인 기호
힌두교에서의 소는 소 자체가 신이다. 현대의 인도에서도 살아 있는 소가 신으로 숭배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힌두교의 소는 힘과 풍요의 상징에 이어 속도를 상징한다. 이는 힌두교의 다양한 신이 황소를 타고 다니는 신화와 관련 있으며, 풍요의 신 인드라의 표면적인 형상이기도 하다.

불교에서 소는 자아(ego)를 상징한다. 특히 도덕적인 자아이다. 불교가 형이상학적 종교 같지만 죽은 자들의 신 염마를 소로 표징한다는 점에서 힌두교와 맥락이 비슷하다.
이집트 신 아피스와 오시리스의 형상 또한 소다. ‘므느베스’는 이집트에서 숭배 받는 소를 일컫는 명칭이다. 또한 이집트의 고위급 신 라(Ra)는 하늘의 황소라 불리면서 매일 같이 천공의 여신 누트를 잉태시키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한편 유대교는 비(非) 시각적인 종교 특성과는 배치되게도 여러 동물과 함께 소가 자주 등장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경배의 대상이 되거나 신전의 장식물로 활용된 사실을 경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유대교가 ‘야웨를 이스라엘의 (황)소’로 간주하였다는 상징학 관련 보고가 있지만, 이는 면밀하게 다루어져야 할 일이다. 이제부터 언급할 성서에서의 ‘소’에 관한 이해는 양가적이면서도 복합적인 양상을 띠기 때문이다.
구약 성서에서의 기호
국가로서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분기점인 모세에 의한 법전 수여의 장면이 다름 아닌 ‘소’에 대한 숭배 장면과 중첩되어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유대교가 단순히 소를 숭배했다고 규정할 수 없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 장면은 소를 숭배하였다는 사실보다는 소를 숭배하는 제의를 거부하는 장면으로 더 기능하기 때문이다.
상기에 열거한 소에 대한 문화/종교적 기호를 읽다 보면 모세 법전의 수여를 기다리던 이스라엘이 난데 없이 ‘황금 송아지 상’을 제단에 올린 근거가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게 된다. 아마도 모든 문명에 성행했던 소 숭배의 영향이었을 것으로 그 중에서도 이집트의 영향이 가장 컸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분열했을 때 다윗 가문에 반기를 든 북 왕조의 설립자 여로보암이 마치 모세처럼 이집트에 망명했다 돌아와 벧엘에 아예 송아지 제단을 세운 사실은 모세의 법전에 반기를 든 행위라기보다는 (아론의) 한 전승으로서 송아지 신앙에 기초했을 것이다. 예루살렘과 경쟁하려는 조처였다.

그러나 소에 관한 전승의 잔재는 근절되지 않았다. 송아지로 구성한 벧엘 제단을 이교도 취급하며 적대적이었던 예루살렘 성전에서조차 송아지 상은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들 고대 이스라엘은 송아지 상을 천사의 형상으로 간주하였을 것이다(대하4:6).

신약성서에서의 기호
소가 죽음의 기간(겨울)을 몰아내고 창조/생명력을 표지한다는 사실은 신약의 시대에도 도입된 상징 이해이다. 소는 한마디로 출생의 도상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나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었다(눅 2:7)는 대목에서 많은 사람이 이 구유를 ‘말’ 구유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소’의 구유로 보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특히 누가에 따르면 목동들에게 천사가 말하기를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가 표적이라 하였는데 표적은 아기가 아니라 구유이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사 1:3
이사야의 이 예언에 따르면 그 임금을 알아보는 생물은 소 또는 나귀이기 때문이다. 현대적인 성탄절 동화에서는 구유의 아기 예수 곁에 (소는 없고) 말 따위만 등장하는 것과 달리 유서 깊은 옛 도상에서 소가 등장하는 이유이다.

아울러 소는 누가복음의 상징이다. 마태복음은 날개달린 사람으로, 마가복음은 날개달린 사자로, 요한복음은 독수리의 상징으로 읽으려는 방식은 복음서 이해를 위한 오랜 전통이다. 1세기 초 활동하던 교부 이레네우스가 네 개의 복음서를 네 생물체와 연결시켜 설명한 이래로 네 복음서의 주제에 관해 활발하게 다루던 메타포였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소는 누가복음의 상징일까? (소) ‘구유’에 관한 언급 때문일까? 그보다는 도입부의 이야기가 제사장 사가랴의 이야기임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사람은 목자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성전을 떠나지 않고 있던 노인들(시므온과 안나)이었음을 상기할 것이다.
제사장은 소를 잡는 직무이다. 히브리서에서 대제사장 자신의 희생이 소의 희생을 대신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시는 첩경을 예비한 세례 요한이 세례로써 그분을 세상에 드러냈을 뿐 아니라 목 베임당해 죽음으로써 그리스도의 공생애가 시작된 것을 볼 수 있다. 누가는 이 세례 요한을 제사장의 아들로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누가는 소다.
소에 관한 궁극적인 기호
그러나 소에 관한 진정한 기호는 정교한 의미에서 숙고할 필요가 있다.
앞서 이사야 선지자가 그리스도의 탄신을 표지하며 말하기를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았다”고 하였을 때 일컬은 ‘소’는 쇼르(שׁוֹר)를 말한다. 쇼르는 황소 파르(פַר)와는 다르게 수소를 이르는 말이다. 이 쇼르가 나귀와 짝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나귀는 종교적 의미에서 ‘더러운’ 동물이다. 나귀(ass)가 오늘날에도 문란한 엉덩이(ass)로서 몸매 자체를 상징하게 된 것은 종교적 이교도를 상징했던 사실에 유래한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선교에서 ‘부정한’ 고기와 ‘정결한’ 고기를 한 보자기에 놓은 상징을 바라봄으로써 나귀는 차별 없는 교회의 표지가 되었다. 이는 소의 구유에서 탄생한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성으로 진격해 들어갈 때 타고 간 동물 품종에서 기인하였을 것이다.
나귀와 쇼르가 이처럼 이사야의 예언 속에서 짝을 이루는 것은 황소의 경우 그야말로 힘과 번식력의 상징이었던 것에 비해 쇼르는 인내, 강함 그리고 수소 자신이 진 멍에를 상징한다는 사실에 있다. 나귀는 사람이 타거나 짐을 실어나르기 위해 개량된 품종이었다면, 쇼르는 암소(Cow)나 황소(Bull)와는 달리 거세된 수소(Ox)라는 점에서 바로 이 짐 실어나르기 위한 나귀와 통하는 것이다.
이런 쇼르로서 수소(Ox)의 기의는 현대적인 의미로 가공되었거나 각색된 것이 아니다.
이미 고대에서부터 태양에 속한 황소와는 달리 달(Moon)에 속한 의미로서의 기호에 가용되기도 했다. 생산 능력을 갖춘 황소와는 달리 거세된 수소는 생산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달의 기호를 갖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에 관한 이같은 상징의 약사를 통해 보건대, 유서 깊은 전통의 기호에서 우상숭배(미신)의 기호로 전락하는 준거는 사람을 ‘소띠’로 규정하거나 특정 연도를 ‘소의 해’로 규정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게 아니라, 사람 또는 그 시대가 스스로를 의식할 때 멍에를 짊어진 것인지 아예 거세를 당한 것인지 혼동을 일으킬 때 발생하는 것이다. 멍에의 윤리학이 변질될 때 해 또는 달(月)을 숭배하는 일에 종속당하고 말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이같은 어두움과 멍에를 함께 매지 말라 하였다(고후 6:14).
2021년 신축년의 ‘소’를 달을 위해 거세된 소로 전락시키느냐 아니면 멍에를 감당하는 진정한 쇼르 ‘수소’가 되도록 하느냐는 우리 모두의 믿음과 그에 걸맞은 희망의 태도에 달려 있다 할 것이다.

에필로그. 이중섭의 <길 떠나는 가족>이 그가 아내에게 보내고자 작성한 편지 삽화를 장식하고 있다. 일본인 아내 이남덕 여사와 아들 둘을 태운 달구지를 소가 이끄는 장면이다. 이중섭은 친일파라는 낙인과 위협 속에서 가족과 생이별한 채 제주도에서 홀로 살았다. 가족과 만나고 싶은 그의 희망을 ‘소’가 이끌고 있는 것이다. ‘소’를 주제로 한 여러 작품을 남긴 이중섭에게 ‘소’는 한국인의 성실성이다. 특히 6·25 전쟁 직후인 1954년 작품인 ‘흰 소’의 경우 소가 하얀 이유는 백의민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는 보통 살과 근육으로 힘을 나타내기 마련인데 그의 작품 속의 소는 마르고 앙상한 뼈를 통해 우렁찬 힘을 드러낸다. 전쟁 직후의 우리나라를 표지한다.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한 ‘소’의 궁극적 기호가 잘 표현된 작품들을 남겼다. 이중섭은 전쟁 중에도 붓을 놓지 않은 몇 안 되는 화가였다. 쇼르의 이 우직한 기상으로 국가의 정신을 다시 탈환하는 2021년이 되기를…
내가 당한 불행은 하나님의 뜻인가?
2020년에도 각자 개인에게 크고 작은 행(幸) 또는 불행(不幸)이 있었을 것이다. 행복에 관하여는 누구나 이의가 없다. 그러나 불행은 과연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인가? 의문을 갖기 마련이다.
불행 중에는 감당할 만한 불행도 있고 감당하기 어려운 불행도 있다. 불행을 당한 당사자의 기준에 따라 그 중압감도 다르다.
성경에는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고 팔리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하는 것이라 했다(마 10:29). 떨어지는 것은 페세이타이(πεσεῖται), 팔리는 것은 폴레이타이(πωλεῖται), 어감에도 신경을 쓴 듯한 구문이다.
그렇지만 누가복음에서는 다르다. 마태복음에서의 참새가 당한 불행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지만, 누가복음에서의 참새가 당한 불행은 하나님이 잊지 않으시는 불행이다(눅 12:6).
마태복음의 참새와 누가복음의 참새 간의 차이는 그것뿐이 아니다.
마태복음에서의 참새는 “두 마리에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참새들이다.
누가복음에서의 참새는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참새들이다.
이들 참새 두 마리(마태)와 다섯 마리(누가)의 차이는 이런 의미로 볼 수 있다.
가령 1천 원에 붕어빵 2개 주는 묶음과 2천 원에 붕어빵 5개 주는 묶음이 있다면 당신은 어떤 묶음을 살 것인가?
연봉이 1억 정도인 사람에게는 둘의 차이가 별로 체감이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일당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그 구별이 선명하다.
당연히 2천 원에 5개 짜리 붕어빵이 더 가성비 있는 묶음이지만, 오히려 가난한 사람은 1천원에 2개 짜리를 살 수 밖에 없다. 단가가 비싼 것을 알지만 1천 원만 쓰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누가의 참새는 더 ‘경제적’이고 마태의 참새는 더 ‘운명적’인 참새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의 (하찮은 많은) 참새는 ‘기억이 되는가?’ 라는 문제가 주제이고, 마태의 (많은) 참새는 ‘떨어지느냐?’(죽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눅 12:6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마 10:29
결론은 참새가 ‘죽는다’는 사실에 있다. 다시 말하면 죽는 게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했던 유명한 독백을 떠올리게 만든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 말은 “안 죽겠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지금 죽느냐 나중에 죽느냐” 그것이 문제라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셰익스피어의 예정(내지는 예언)론은 언제나 탁월하다.
특히 햄릿이 뒤에 가서는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Hamlet, 5.2.192-6).
“Not a whit, we defy augury: there’s a special providence in the fall of a sparrow. If it be now, ’tis not to come; if it be not to come, it will be now; if it be not now, yet it will come: the readiness is all…”
Hamlet, 5.2.192-6
(전혀. 우린 징조 따위는 거부하네. 한 마리의 참새가 떨어지는 것도 특별한 섭리가 있지. 지금 일어날 일이라면 나중에 일어나지 않을 일이고, 나중에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면 지금 일어날 것이네. 지금 일어날 일이 아니면 나중에 벌어지겠지.)
그럼에도 적지 않은 현대 기독교인은 햄릿만 못하다.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는 말을 단지,
“안 죽게 해줄께.”
ㅡ라는 말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저 말은 오로지
“기억 해줄께.”
ㅡ라는 말일 뿐인 것을.
세속 기독교인은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 하지, 기억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의 두려워 하지 않을 정도로 퇴화되어 있다.

언젠가 길을 가다 ‘쿵!’해서 돌아보니 아파트 유리 현관에 부딪쳐 떨어져 죽은 새가 보였다. 이 아이를 누가 기억한단 말인가. 하나님 외에.
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University Lecturer | 저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2017), 영혼사용설명서 (2016),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논문: 해체시대의 이후의 새교회 새목회 (2013), 새시대·새교회·새목회의 대상 (2011), 성서신학 방법에 관한 논고 (2011). 번역서: 크리스티안 베커의 하나님의 승리 (2020). | FB | Twtr | 개인블로그
낙태된 자들에 의한, 낙태된 자들을 위한, 낙태된 세상
‘낙태’란 말을 보통 유산(流産)과 구별된 의미로 쓰지만, 유산 자체는 본래 자연유산(stillbirth)과 인공유산(abortion)의 통칭이다. 낙태와 유산이 구별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기독교 경전에서도 낙태는 유산(abortion)과 구별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 시대 법리가 발달해서가 아니라 다산이 미덕인 시대에 인공유산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공유산 개념 자체가 없었던 것 같지는 않다.
서로 다투다 임신한 여인을 쳐서 낙태하게 하였을 때는 벌금 처벌을 받는 경우도 있었던 까닭이다(출 21:22). 유산의 원인을 의식하고 있었던 셈이다.
보다 정교한 의미로서는 낙태된 생명도 ‘존재’로 인식한 흔적이 있다.
욥은 “낙태되어 땅에 묻힌 아이처럼 존재하지 않게 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특히 그는 그렇게 낙태된 생명을 가리켜 “빛을 보지 못한 아이들”이라며 존재로 명시했다(욥 3:16).
2세기 초 교회 지도자인 오리겐은 플라톤의 영혼 선재설을 따라 아기가 생성되기 전부터 영혼이 있다고 가르쳤다.
그렇지만 출생하는 시점에 영혼이 창조되어 결합하는 인상을 주는 본문이 없는 건 아니다. 창세기 2장 7절, 전도서 12장 7절, 이사야 57장 16절, 스가랴 12장1히절, 히브리서 12장 9절은 다 영혼창조설에 인용되는 대표적인 예시이다.
(아담을 제외한) 인류의 영혼이 남성과 여성이 결합하여 생성하는 단계에서 직접 생산되는 것이라는 합리적 이해가 도입된 것은 16세기 종교개혁 이후의 일이다. 창세기 2장 2, 21절, 로마서 5장 1절, 히브리서 7장 9-10절을 토대로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 6:3, 그리고 찰스 핫지(Charles Hodge), 레이몬드(Robert L. Reymond) 등이 이와 같은 입장이다.
12세기 중세까지만 해도 가톨릭은 임신한 태아의 영혼을 이해할 때 “영혼 없는 태아”에서 “영혼 있는 태아”로의 발전단계로 규정하다 13세기 들어서는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남자의 배아는 임신 40일 후, 여자 배아는 90일 후 “영혼이 불어 넣어진다”고 규정하였다. 다소 미개한 논리지만.
이것은 성서 지식이라기보다는 논리의 조직이다.
창세기 2장 7절에 나오는 네페쉬 하야(נֶפֶשׁ חַיָּֽה)란, 그야말로 살아있는 존재로서 어떤 지식이나 이성을 초월한 존재 자체로서의 개념인 바, ‘배아’라 하여 영적 존재가 아닌 것으로 여기는 개념을 성서의 인식으로 볼 수는 없는 이유이다.
심지어 배아가 되기 전 태어나지도 않은 후손을 (아브라함의 허리에 들어있는) 존재로 여겼던 관념 따위를 기억할 것이다.
이는 어떤 관념이 아니라 연대된 생명으로서의 인식이었다.
한글 성경에는 낙태라는 말이 8번 정도 나오는데, 사실 명시적인 낙태라는 개념으로서 어휘는 욥기 3:16에 나오는 네펠(נֵ֣פֶל)일 것이다.
untimely birth, 즉 ‘조기 출산’이라는 뜻의 명사이지만 ‘떨어지다’라는 동사 나팔(נָפַל)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고대에 과연 현대적인 의미의 abortion, 즉 ‘인공유산’ 내지 ‘인공낙태’가 있었을까.
당연히 있었다.
다만 현대인에게는 낙태를 어떤 ‘의술’이라 여기는 교묘한 관념을 구현한다. 그래서 그 ‘의술’이 가하냐 불가하냐로 판단을 내리려 한다.
그러나 본질상 낙태는 의술이나 과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말이다. 의료적 기술 이전부터 그 어휘가 정확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듯이 그것은 ‘떨어지다’인 것이다.
욥기와 창세기는 거의 동시대 언어로서 창세기에 나오는 이 대목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이 ‘네피림’이라는 명사가 바로 나팔(נָפַל)이라는 동사에서 나온 말이다.
한 마디로 ‘낙태된 자들’이라는 소리다.
이들 네피림은 하늘(하나님의 아들)이 땅(사람의 딸)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그야말로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은 결과로서 존재라 할 수 있다.
1세기 예수 시대는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 자체가 ‘낙태된 세상’이었다. 종교적으로 이 세상을 영지주의라 부른다. 모든 사람이 하나 같이 자신을 낙태된 것만 같은 존재로 여긴 것이다. 현대에도 이런 네피림은 얼마든지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목격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권력이 주입하고 있는 교시는 언제나 ‘낙태된 세상’인 까닭이다. ‘헬조선’,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대한민국’…. 그런 다음 자신들이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아 낳은 듯, 사생아 같은 자신들의 죄상들은 모조리 낙태시킨다. 그들의 모든 죄상은 세상에 빛도 못 본채 덮인다. 낙태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이 기도하는 낙태 합법화 기조는 너무나 당연한 절차로서, 낙태를 ‘의술’로 보게 만드는 수법은 네피림으로서 자기 존재의 정당성을 얻으려는 전략적 윤리에 불과하다.
유대/기독교 성서는 자연유산(stillbirth)이나 인공유산(abortion), 둘 모두를 죄(ἁμαρτία)로 보는 시각을 갖고 있다.
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University Lecturer | 저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2017), 영혼사용설명서 (2016),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논문: 해체시대의 이후의 새교회 새목회 (2013), 새시대·새교회·새목회의 대상 (2011), 성서신학 방법에 관한 논고 (2011). 번역서: 크리스티안 베커의 하나님의 승리 (2020). | FB | Twtr | 개인블로그
예수의 제자와 히포크라테스의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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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시대의 의료
유대인은 하나님의 율법에만 순종하면 건강을 보장 받는다고 믿었다. 그 율법에는 여러 건강 관련법이 포함되어 있다. 정기적인 휴식, 양질의 음식, 오염된 물 엄금, 결혼 규정, 청결, 전염병 격리 등에 관한 규정이다. 형법과 연계된 이런 위생법은 다른 주변국보다 높은 수준의 건강을 안겨줬다.
하지만 건강이 형법 원리와 연결된 결과, “율법을 어기면 질병이 생긴다”는 저주의 원리로 작용했다(참조. 신 28:60-61).
그리고 유대인은 의사를 부르지 않았다.
의사에게 의지한 사람은 하나님 뜻에 어긋난다는 비난을 받았다. 역대하 16장 12절의 아사 왕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시이다. 치병의 올바른 절차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었다(민 21:7; 왕상 20; 대하 6:28-30; 시 6; 107:17-21).
다른 나라의 병에 관한 태도는 유대인과 사뭇 달랐다.
이집트와 바벨론에서 질병은 악령의 활동에 대한 결과로 진단되었다. 이에 대한 대응이 의사의 역할이다. 의료 행위가 마술 수준에 그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미개한 마술 행위 속에서도 수술을 통한 의학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이들에게는 의료 행위를 통제하는 법도 있었는데 함무라비 법전에 따르면 남성이 구리 랜싯(의료용 양날 칼)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의 눈을 수술했을 때 그 사람이 눈을 잃으면 의사의 눈도 같은 구리 랜싯으로 빼내야 했다.
한편 이집트인은 뇌수술에 능했다. 두개골에 구멍을 뚫어 수술을 감행했다. 악령이 빠져 나가도록 하려는 목적에서였다. 이 과정에서 물리적 내부의 압력이 완화되면 그것을 치료라 느꼈다. 이런 기술은 여호수아가 점령했던 가나안족의 후예 라키슈(Lachish)에서도 시술되었다. 또한 이집트인은 치과 진료를 했으며 일부 페니키아인은 금니를 소유하고 있었다.
주변국의 의료에 대한 이런 이해는 앞서 유대인의 신학적 입장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에게 영향을 미쳤다. 유대인 중 일부는 악령을 막기 위해 부적을 착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욥기가 기록될 무렵에는 양상이 달라졌다. (욥의) 병은 죄의 결과가 아니라는 선언이 그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초림하기 200여년 전 기록인 전도서에 따르면 하나님은 치유자이시며 사람에게 치유의 선물을 주셨다고 전한다. 이사야는 말하기를 유대 민족의 상태에는 정화, 붕대, 연고가 필요하다고 했다(사 1:6). 아사 왕의 경우처럼 의사들은 주변에 존재했으며, 출애굽기 21장 9절은 사지가 다쳤을 때 목발을 사용하였음을 암시한다. 히스기야는 종기를 치료하기 위해 찜질을 한 것 같다(왕하 20:7).
몰약과 섞인 포도주가 진통제로 사용되었는가 하면(참조. 마 27:34), 맨드레이크 뿌리는 임신을 돕는 것으로 여겨졌다(창 30장).
이미 모세가 갓난아기였을 시대부터 조산술이 성행했다(출 1:15; 겔 16:4).

예수시대의 의료
예수님 시대에는 도리어 의학에 대한 불분명한 태도를 보인다.
마가복음 1:32-34에는 질병에 관한 당시의 인식을 보여준다. 질병에는 나병, 역병(이질, 콜레라, 장티푸스)뿐 아니라 시력을 잃는다든지, 청각장애 같은 장애가 포함되었다. 간질이나 기타 신경 장애도 존재해왔다(참조. 삼하 12:15; 왕상 17:17; 왕하 4:20; 5:1-14; 단 4:33).
그런데 유대인은 앞서 의사들을 수용한 선조들과는 달리 의사에 대한 불신이 있었다. 질병과 죄의 연관성이 있다고 믿은 것이다(참조. 요 9:2). “의사는 자기 스스로를 고치라”(눅 4:23)는 경멸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모든 마을에는 의사가 있어야 했음은 분명하다. 여성출혈병 문제로 해당 여성이 여러 의사와 상담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막 5:26). 성전에는 언제나 의사가 상주했다. 그런데도 마가는 의사에 대해 부정적이다 (막 5:26).
예수님의 태도는 구약과 모순되지 않았다.
그는 질병을 세상에서 사탄의 악한 활동의 결과로 여기는 듯 보였다. 그러므로 싸워야한다고 했다.
하지만 질병이 반드시 개인의 죄의 결과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요한복음 9장이 그 명백한 경우이다.
길을 가다 태어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을 보고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다. “선생님, 이 사람이 맹인인 것은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입니까, 그의 부모입니까?”
“이 사람의 죄도 부모의 죄도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는 하나님의 역사가 그의 삶에 나타나도록 일어난 일”이라고 해명했다.
예수께서는 질병이란 영혼이 그 질병을 소유한 결과임을 또한 수용했다(마 12:27).
초대 교회 시대에 기독교 사회가 의사를 받아들이는 일에 가속화한 데에는 질병에 대한 예수님의 이러한 정의에 근간한다.
이제 의사로서 누가는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의 명시적 동반자이다(골 4:14).
다시 말해서 현대인은 누가를 생각할 때 오늘날의 의료 수준에 의거한 첨단 과학도로 여기지만
전통 유대교에서는 수용을 주저하는 주술이요
새로운 세대에게만 유용한 과학이었을 것이다.
즉 누가의 등장은 의사/의술의 수용 여부에 관한 상징적인 일면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는 그리스인이었고 당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는 의술 학교들이 여럿 있었다.
히포크라테스의 가르침이 상징된 헬레니즘의 의료가 초대 교회 특히 바울의 선교 여행에 동반되었다는 사실은 새로운 이해와 지식이 선교의 주요 동력으로 활용되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기독교는 히포크라테스의 후예와 함께 종교의 선진화를 꾀하였다면, 히포크라테스의 후예는 왕족이나 귀족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기독교를 통하여 대중화를 이룩한 것이다.
21세기 한국의 초엘리트 왕족들이 의사들을 공공재로 전락시켜 자기 자식들에게 기술을 빼돌리려는 이때에 이들 고대 사회 의료인들의 생존의 방식을 세심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함께 읽을 글: 내가 의사들의 파업을 지지하는 이유
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University Lecturer | 저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2017), 영혼사용설명서 (2016),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논문: 해체시대의 이후의 새교회 새목회 (2013), 새시대·새교회·새목회의 대상 (2011), 성서신학 방법에 관한 논고 (2011). 번역서: 크리스티안 베커의 하나님의 승리 (2020). | FB | Twtr | 개인블로그
8·15 코로나 박해를 대하는 한국교회 엘리트주의 방식

어게인 1907
십여 년 전 ‘어게인 1907’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한국교회에 강타한 적이 있다. 2007년을 앞두고 몇 년간을 들썩였는지 모른다.
‘1907’이란 숫자는 한국 기독교 역사에 있어 마치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오순절 성령 강림처럼 부흥의 분기점이 되었다 하여 “한국의 오순절 강림일”로 불리며 가장 의미 있는 사건의 발생 연도로서 기리는 상징 수이다.
2007년을 앞두고 몇 년 전부터 그 해가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100주년이라는 상징성의 극대화 때문인지 마치 시한부 종말의 사인처럼 기독교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설렘을 자아냈다. 2007년에 무슨 이벤트가 있는지, 그것을 주관하는 주체는 누구인지, 전혀 알지도 못하고 정해진 바도 없으면서 몇몇 인기 찬양 인도자 중심으로 그렇게 2007년을 향하여 돌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7년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평화와 평등만 외치는 낭만주의 기독교인은 아마도 1907 ‘평양’에서 일어났다는 그 한 가지 사실만 부각하여 2007년 실제로 평양에서의 ‘평양 대부흥 1907’을 복고하리라 야심에 차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단상의 ‘의자’ 가지고 싸우느라 부활절 연합 예배 하나도 제대로 못 치르게 된 대형교회 또는 교파주의자로서는 ‘1907’은 큰 구미를 끌기 어려웠을 것이다(내 자리 어디야).
2007년이 되자 한국교회를 강타한 것은 ‘아프칸 피랍 사태’였다.
탈레반이 한국 개신교인 단기 자원봉사자 23명을 피랍하여 감금 억류하다 심성민씨와 배형규 목사, 두 명을 살해하고 나머지 단원을 42일만에 풀어준 사건이다. 당시 개신교는 단기 선교라는 ‘관광 상품’에 물질과 시간이나 허비하는 상식도 없는 독선의 집단이라는 집중포화를 맞았다. 그 상식의 돌팔매에는 개신교 엘리트들이 던지는 돌이 다량 섞여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실제 1907
기독교인에게 ‘1907’은 막연한 로망 내지는 상징성으로만 남아 있다.
역사적 날줄이 실제로 어떻게 임하였는지는 잘 기억 못한다. ‘1907 대부흥’이 과연 성공한 부흥이었느냐는 그 후 3년 뒤에 일어난 사건을 통해서만 제대로 된 평가를 할 수 있다. 3년 뒤에 일어난 충격적 사건은 ‘한일 병합 조약’이기 때문이다. 대부흥회 후 3년 뒤에 나라를 완전히 잃고 만 것이다.

책으로 만나는 역사는 자기 필요한 것만 골라 극적으로 읽을 수 있지만, 실제로 살아 내는 역사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것은 마치 BC 7세기 유다왕국 요시야 왕의 대대적인 종교개혁에도 나라가 멸망하고 말았던 비극처럼, 그리고 ‘어게인 1907’을 고대한 한국교회에는 탈레반의 테러와 더불어서 같이 쏘아 대는 엘리트 기독교도들의 조준 사격처럼, 1907년의 통렬한 대 회개 운동은 ‘한일 병합 조약’이라는 결과로 매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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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University Lecturer | 저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2017), 영혼사용설명서 (2016),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논문: 해체시대의 이후의 새교회 새목회 (2013), 새시대·새교회·새목회의 대상 (2011), 성서신학 방법에 관한 논고 (2011). 번역서: 크리스티안 베커의 하나님의 승리 (2020). | FB | Twtr | 개인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