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타주》해제 #15. ‘아는 것’ vs. ‘믿는 것’
비 기독교인 학생들에게 중간고사 마다 내는 시험문제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한 번 풀어 보십시오.
1. ‘믿는 것’이 ‘아는 것’ 보다 우월할 때, ‘아는 것’의 무지성에 관하여 서술하시오.
2. ‘아는 것’이 ‘믿는 것’ 보다 우월할 때, ‘아는 것’에 관하여 서술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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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이 문제를 내면 일부 비 기독교 학생들은
항의라도 하듯(자신은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듯) 공란/백지로 그냥 내고 나가려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혼냅니다.
“야ㅡ 왜 백지 내. 여기 하나님이라는 말이 있어, 교회라는 말이 있어. 왜 못 적어! ‘아는 것’, ‘믿는 것’, 이걸 몰라서 못 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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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하는 답은 다음과 같이 표명될 수 있습니다.
1_ ‘아는 것’이 ‘믿는 것’만 못할 때의 아는 것은 고등교육을 받은 자식이 고등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는 아버지를 부끄러워 하는 상태를 예로들 수 있습니다. 그 이후로는 아버지의 아버지로서 경험을 신뢰하지도 믿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아버지가 되어 자기 아들에게 부끄러움의 대상으로 여겨질 때, 그는 자신의 ‘알았던 것’에 관한 무지성을 알게 됩니다.
2_ 자식을 제물로 불가운데 지나가게 해야만 액운을 제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을 떨쳐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믿음의 대상과 그의 속성에 대해 ‘아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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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가《판단력 비판》을 했을 때 그 판단력, 즉 비판의 대상은 바로 전자의 ‘아는 것’이었으며, 또한 그 비판에 활용한 도구 역시 바로 ‘아는 것’이었습니다. 후자에 해당하는 ‘아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를 알 되,
돌아가시기 전에 ‘아는 것’과
사후에 ‘아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데,
그렇지만
이미 ‘아는 것’이 없었다면 사후에도 아는 것이 없게 됩니다.
이미 ‘알고 있었다’ ㅡ그렇지만 몰랐던ㅡ 는 사실을 알게 되는 바로 그것!
그것이 ‘아는 것’이며
다른 말로 선험 (구조)라고 합니다.
바로 이걸로 당대의 이성을 깨부순겁니다.
* 결국
만물 속 황금비를 ‘알고 있(었)다’,
만물 속 음계를 ‘알고 있(었)다’,
아버지를 ‘알고 있(었)다’는 개념은
하나님이 ‘있다’(쉐카이나) →I AM/ YHWH 와의
구조 속에 로고스(ratio) 자신을 드러내기에 이르는 것입니다.
* 핑계할 수 없다(롬 10:16-21)는 인식론적 심판의 주석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