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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장 15절 주석
창세기 3장 15절 주석. (1) 내가 원수가 되게 하리라 (2) 너와 그 여자 사이가, 그리고 (3) 너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가, (4) 그는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5)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이는 앞서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게 된다”는 저주와 이어진 뱀의 미래이다. 이것은 마치 인과론적(etiology) 문형을 이루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설이 아니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불교의 연기(緣起)를 영어로 통상 Conditioned Genesis라는 용어로 쓰는데 ‘조건적 창조’라는 의미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악은 무조건 악이지 조건적 악이 아니다. 선은 무조건 선이지 조건적(인과적) 선이 아니다. 악이 인연에 의거하여 선으로 거듭날 수 없다는 뜻이다. 죄는 마귀에게 속한 것으로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인 것이다(요 3:8). 따라서 악의 기원으로 상정되고 있는 뱀은 어떤 인과나 연기로서 임하는 ‘조건적 창조’가 아니라 심판주의 ‘주권적 창조’로서 그 악의 표상이다. 그러므로 뱀이 본래는 다른 짐승처럼 다리를 가졌으나 저주 받은 뒤에 배로 기어 다니게 되었다는 추론 따위는(Josephus나 Luther나 Lange가 그렇게 생각했다) 이 저주의 본말이 아니며, 어디까지나 뱀이라는 상징이 어떻게 이 절대 악의 표상을 구현하느냐를 이해함이 악에 대한 온전한 이해일 것이다. 발꿈치 아케브(עָקֵֽב)는 ‘끄트머리’를 가리킨다. 어떤 의미에서는 모든 신체에 있어서 혹은 모종의 지위/격으로서 크게 중요하지 않은 어떤 것을 가리킨다. 그렇지만 결정적이기도 하다. 야곱의 형 에서가 태 속에서 야곱에게 발꿈치를 잡혔는가 하면,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즉 아주 가까운 사람이 배신할 때의 결정적 ‘끄트머리’가 바로 이 발꿈치이다. 오이디푸스가 평생 다리를 절은 이유는 태어나기 전부터 운세가 좋지 않아 낳자 마자 사자(使者)가 아기인 그의 발꿈치를 철선으로 뚫어 꿰어 매고 갔기 때문인데,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뒤 그의 죽을 운수를 상징한 동시에 또한 그 운수를 회피하려고 발버둥쳤지만 결국 벗어나지 못한 운명을 상징했다. 언제나 그 운명의 머리 로쉬(רֹאשׁ)가 발꿈치를 도사리고 상하게 한 까닭으로, 이 연기를 파괴시키는 것이 바로 여자의 후손이다. 그래서 악은 뱀이라기보다는 뱀처럼 꼬리를 물고 끝없이 순환하는 도상(圖像)이라 할 수 있으며, 그래서 이 악을 가리켜 칼바르트는 무적인 것(無的; das Nichtige)이라 표현하기도 한 것이다. 악은 하나님이 아니며, 하나님의 피조물도 아니며, 또한 그것은 하나님과 그의 피조물이 존재하는 것처럼 존재할 수 없는 것으로서, 제 3의 방식 다시 말해 ‘무로서,’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으로서’(als nicht-seiend) 존재한다. 불교에서는 이 부존재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