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어로 (신약이 포함)된 성.경.전.서.이다ㅡ
제목이 이렇다.
“토라 네비임 케투빔
베하브리트 하ㅋ하다샤”
“오경, 예언서, 성문서,
새로운 계약”
ㅡ 이라는 뜻이다.
어떤가.
적절한가. 틀리는가. 아니면 더욱 적절한가.
‘구약'(Old Testament)이라는 명칭은 비록 4세기 개념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명시적이지 않은 합본은 우리가 읽는 성서와는 다를 수 있다. (설령 내용이 같더라도.)
왜냐하면 이 책의 경우, 그 표기에 따르면
베 하브리트ㅡ
즉,
‘…그리고 그 새로운 계약(And the New Testament)’
ㅡ 이란 뜻이기 때문에
신약은 토라, 네비임, 케투빔의
부록이 되는 셈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Old Testament와 New Testament의 경계는
예수 그리스도의 엄정한 표지이다.
그리고 그 경계를 수호하는 지위가
우리 이방인계에 있는 것이다.
(유대교에 막연한 미신적 열등감이 있는 이방인들은 이 사실을 간과한다.)
물론 ‘구약’이라고 했다면 과연 어느 유대인이 이 책을 읽겠는가 싶지만
그럼에도 이는 이스라엘의 회복, 백투 이스라엘, 시오니즘.., 이른바 역사의 수레바퀴 트랜드에 어떠한 질서를 부여해야 하는가ㅡ라는 이방계로서의 막중한 책무에 관한 좋은 예시가 아닐 수 있다.
이는 대체신학이 아니라 계약신학의 본령이다.
근자에 서구에서는 구약학을 아예 Old Testament라 하지 않고 단지 Hebrew 라는 명칭으로 개정하는 추세로 알려져 있다.
* 이 책은 이스라엘 성서공회에서 발행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