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민족(all nations)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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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4232
    영진 이
    mimoon
    Keymaster

    “모든 민족을…모으고…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ㅡ에서
    ‘모든 민족’(all nations)은 누구인가?
    (1) 모든 유대인인가? (2) 모든 기독교인인가? 아니면 (3) 모든 비 기독교인인가? 아니면 (4) 모든 비 유대인인가? 아니면 (5) 전 인류인가?
    이는 중요하다. ‘최후의 심판’ 계층을 결정 짓는 기준이되므로ㅡ
    (게다가 주님의 직접 계시 본문이므로 계시록보다 중요.)

    #4233
    영진 이
    YOUNG JIN LEE
    Keymaster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1. 양과 염소, 두쪽으로 갈라질 ‘모든 민족’(all nations)이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이 최후의 심판 규모와 규격을 밝히는 일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2. ‘모든 민족’이 누군지를 밝히려면 그들을 심판한 심판 기준이 뭔지를 알아내야 한다. 심판 기준이 다 나와 있는 것 같지만 매우 정교하게 되어 있어 세심하게 읽어야 한다.

    3. 마태복음의 이 최후의 심판 본문은 에스겔서 34장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는 사실에 우선 유념할 필요가 있다. “나의 양 떼 너희여 내가 양과 양 사이와 숫양과 숫염소 사이에서 심판하노라”(겔 34:17)

    4. 그러나 에스겔 시대와는 중요한 차이점 하나가 발견된다. 마태복음은 마치 양과 염소를 가르는 심판으로 읽히는데 반해, 에스겔서는 양은 양끼리, 그리고 염소는 염소끼리(정확히는 숫염소에서 숫양을) 그 안에서 갈라내고 있다는 사실, 즉 두 집단이 각각 별개로 심사 받고 있는 점이다.

    5. 따라서 마태복음의 최후의 심판을 읽을 때 저지르는 가장 큰 오류는 ‘양’은 양이기 때문에 구원 받고, ‘염소’는 염소이기 때문에(눈알이 왠지 재섭서?) 지옥간다ㅡ는 식의 선입견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 선입견이 오른편은 오른편이기 때문에 구원 받고, 왼편은 왼편이기 때문에 지옥간다는 기준의 매몰을 불러 오는 것이다. 그런 본문이 아니다.

    6. 오른편 양들과 왼편 염소들은 완전히 다른 분류임을 유의해야 한다. 양들은 양들끼리 따로 분류 심문을 받고 있다. 염소는 염소들끼리 따로 분류 심문을 받고 있는 것이다.

    7. 이 두 집단을 따로 분류한 가장 중요한 키는 이것이다.
    오른편 양들에게는 →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어떤 처우를 했는지를,
    왼편 염소들에게는 → “(내 형제가 아닌)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어떤 처우를 했는지 심문한다.
    또한, 오른 편에게는 → “행했던 일”에 대한 심문을,
    왼편에게는 → “행하지 아니한” 것을 심문하고 있다.
    둘은 이미 완전히 다른 집단인 것이다.

    8. 그렇다면 양들은 누구이고, 염소들은 누구인가? 양들은 유대인이고, 염소들은 비유대인인가? 그렇게 볼 수는 없다.
    이 ‘모든 민족’을 두 인종으로 가르는 절대 준거는 하나, “행한” 집단과 “행하지 않은” 집단이라는 사실에 있다.
    한 마디로, 행함으로 영생에 들어가고, 행하지 않음으로 영벌에 들어가는 셈이다.
    그렇다면 구원은 믿음이 아닌 행위란 말인가??

    9. 이러한 연고로 행위를 통한 구원을 강조하는 가톨릭은 이들 여섯 가지 행함 덕목에 ‘죽은 자를 장례 치러줘라’는 항목까지 추가해서 아예 ‘일곱 가지 자비’(The Seven Works of Mercy)를 만들어 실천을 강조해온 바 있다.
    1) Feed the Hungry(주린 자를 먹이라),
    2) Give Drink to the Thirsty(갈한 자를 마시게 하라),
    3) Clothe the Naked(벗은 자를 입히라),
    4) Shelter the Homeless(집 없는 자를 맞으라),
    5) Visit the Sick(병자를 방문하라),
    6) Visit the Imprisoned(옥에 방문하라),
    7) Bury the Dead/죽은 자를 장례 치러줘라

    10. 하지만 이 여섯 자비는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준거가 아니라,
    “행함”으로 영벌에 들어가는 준거인 셈이다. (매우 중요)

    11. 다시 말하면, (여전히)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영벌은 자기가 행한 행위(행치 않음의 행위)로 받는다는 사실이다.

    12. 따라서 이 양과 염소의 최후의 심판에는 두 가지 경우가 은폐되어 있다 할 수 있다.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하지 않은” [양]들은 어찌 되는 것인지…
    “(내 형제가 아닌)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염소]들은 어찌 되는 것인지…

    13. 이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은폐되어 있기 때문에, 가톨릭은 연옥의 교리를 만들게 되었고, 개신교는 자신들의 구원의 최저치를 영생과 동급의 최대치로 과신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구원파가 여기서 나옴).

    14. 영생과 영벌 가운데 영생은,
    율법을 다 준수했던 부자 청년도 들어갈 수 없었던 바로 그 단계이며, 위험을 무릅쓰고 심야에 그리스도를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이해할 수 없었던 그런 단계인 것이며, 신학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와 동의어이기도 하다.

    15.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나 “(내 형제가 아닌)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나 모두 그 임금으로 오신 인자에게 행한 것과 동일하다는 심판의 일치.
    그리고 양들 중에서 자신이 양인 줄 착각하고 있던 자들은 왼편 집단으로의 이행 가능성(cf. 겔 34:17. 숫염소에서 숫양을/숫양에서 숫염소를).

    16. 끝으로 이 구원의 최대치 가늠자 노릇을 했던 ‘형제 중의 지극히 작은 자’가 중요한데, 이들은 오늘날로 치자면 가난한 선교사 또는 미자립 교회 목회자 정도가 될 것이다.
    (cf. 마 25:31-46; 겔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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