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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743
    mimoon
    키 마스터

      《몽타주》해제 #28. ‘자기우상 파괴’란 무엇인가?

      프로이트가 당대에 사회 자기 동료/후배들로부터 배척 받은 이유는

      좀 단편적인 예시지만,

      “유아가 젖을 빠는 것은 ‘식욕’이 아니라 ‘성욕’이다”라고 하는
      이 직설을 전혀 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을 굳이 ‘생물학적인 요인’으로 몰아부쳐 뜻을 굽히지 않은 것은 그 자신의 정체성이 의학도였기 때문이겠지만 그것이 또한 그의 한계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이전 사람들도 하지 못했고, 그 이후의 사람들도 넘을 수 없는 그의 공적은 앞서 말했듯이 ‘내 속의 다른 존재’를 밝혀냈다는 사실에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1500년 전 사람들은 자기 마음 속에서 들려 오는 마음의 소리를 신의 음성으로 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보고는 필경 불신자가 수집한 통계일 테지만 그것이 꼭 1500년 전 사람 만의 체험은 아니다.

      엊그제 한 개신교인이 절에 난입해 불상을 파괴하고서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한 바 있다. 성당에 가서도 그리함. (http://www.huffingtonpost.kr/2016/01/19/story_n_9015020.html)

      만일 그가 이르기를
      “그것은 내가 꼭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한 일입니다!”
      ㅡ라고 증언했다면 어땠을까?…

      지금은 개신교에서도 싸이코로 보는 눈치다.
      개신교도의 사과가 이어진다고 하니.

      그를 싸이코로 보는 개신교도는 그의 계시를 믿지 않는가?

      이와 같이 내이(內耳)로 듣고 조음(調音)하는 행위는 비단 이 미개한 기독교인뿐 만이 아니라 비교적 건강해보이는 교회 내지는 일부 선교 단체의 훈련에도 도입되는 걸로 알려져 있다.

      대단히 위험천만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어거스틴과 아퀴나스를 건너서, 니체와 마르크스, 그리고 무엇보다 프로이트를 넘어온 시대를 살고 있는데, 자기가 자기의 소리를 신의 음성으로 듣겠다니…

      자기 마음(에서 들려오는 소리)을 따라서 신의 소리라고 규정하는 행위를 금지한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겔 13:1)

      그런데 프로이트가 그 소리의 진원지를 구체적으로 밝혀낸 것이다.

      그렇다면 또 이런 질문이 들 것이다.
      내 마음에 들려오는 모든 소리 가운데서 그럼 하나님의 음성은 단 한 절도 없소?!

      여기서 나타난 그 한계가 바로
      데카르트, 칸트, 헤겔, 니체로 이어져온
      프로이트의 방법(적 회의)이라 할 수 있다.

      자기 마음에서 울려나오는 모든 소리를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규정하는 것!

      이 방법이 아니고서는 성령을 더럽히는 저 이단들을 일거에 소멸시킬 방도가 없는 것이다.

      이것을 포괄적으로는 탈신화화(demythologizing),
      프로이트에 부쳐서는 ‘자기우상파괴’라고 부른다.

      따라서 ‘정신분석’이라는 장르를 유신론자가 (유신론적으로) 다룬다는 것은 언어의 도단인 것이다.

      단, 무신론적으로는 다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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