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에 대하여.
매일묵상/ 2016년 2월 23일 화요일
본문:
1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3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
4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5 내가 말하되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천사는 곁에 섰더라
6 여호와의 천사가 여호수아에게 증언하여 이르되
7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행하며 내 규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가운데에 왕래하게 하리라
8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들이라 내가 내 종 싹을 나게 하리라
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거기에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
ㅡ스가랴 3:1-10.
관찰:
1.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2)
2.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3)
묵상:
3. 더러운 옷에 대하여 묵상.
느낀점:
4. 여호수아는 누구인가. 그가 입은 더러운 옷은 무엇인가.
해설:
5. 여기서 등장하는 대제사장으로서 여호수아의 역사성을 찾으려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우선은 천상회의에 대하여,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과 대화 하는 사탄의 기능을 이해하고 그 회의의 귀결이 무엇인지에 관심하는 것이 생산적이다.
여호수아를 그리스도로 보는 입장도 있고 이스라엘로 보는 입장도 있다. 이스라엘로 보는 입장은 일반적인 사람의 허물, 곧 더러운 옷이 표지하는 바 우리의 죄를 상징한다고 본 다음, 그 옷 갈아 입히는 과정을 속죄의 기회로 해명할 것이다. 하지만 그를 그리스도로 간주한다 하더라도 그 속죄의 도식이 흐트러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개개인의 ‘옷 갈아 입음’(속죄)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과정에 귀속되는 바, 이 장면에 담긴 일련의 표현은 대속의 은혜 그 자체를 그리고 있다 할 것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그 더러운 옷의 선행된 표현으로서, ‘불에 그슬린 나무’ 같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아마도 이런 뉘앙스로 책망하는 것 같다.
“봐라. 이놈아 네가 한 짓을! 엔간히 했어야지, 불에 그슬린 나무와 같이 (시련을) 당하지 않았느냐! 여봐라~ 당장에 옷을 갈아 입혀라.”
따라서 이 ‘더러운 옷’이란 것도 실상은 아무렇게나 더러운 모든 것을 무조건 안쓰러워 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불에 그슬린 나무와 같이 치열한 ‘더러움’만 이에 해당한다는 거.
이를 테면 자기 본성이 표독스럽거나, 자기 본성이 색(色)을 좋아해 음란하거나.., 뭐 이런 따위들을 저 ‘더러운 옷’으로 이해해서는 착각이라는 거.
(속)죄에도 사실은 격조가 있다.
결단과 적용:
6. 그러므로 죄라는 것은 불에 그슬린 나무와 같이 되었을 때 비로소 어느 정도의 ‘격조’를 띠는 것.
죄는 죄지만 이미 ‘시련’으로 환골탈태 한 의미로서 죄.
죄에 대하여, 시련에 대하여 치열할 것을 결단.
기도:
7. 나― 시련에 치열하게 하소서.
너― 시련을 이길 힘을 주소서.
우리― 옷을 갈아 입혀 주소서.
cf. Lectionary, Tuesday (February 16, 2016): Psalm 17; Zechariah 3:1-10; 2 Peter 2: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