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33/40) 한(恨)이 많은 민족

사순절 (33/40) 한(恨)이 많은 민족

 
 
* 한민족의 한(恨)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매일묵상/ 2016년 3월 18일 금요일

 
본문:

10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11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13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16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ㅡ히브리서 2:10-18.

 
관찰:

1. 구원의 창시자 (10)
2.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 (18)

 
묵상:

3.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역사적 존재가 어느새 영적 존재.

 
느낀점:

4.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역사적 존재(히브리인)가 저렇게 영적 존재로 환골탈태된 데 대해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다니.

 
해설:

5. 언젠가 도올 김용옥 교수님의 강의 한 편이 유튜브에서 눈에 띄어 시청한 일이 있다.
그분은 강의 도입에서 회중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다.

“20세기 우리 민족에게 있어 가장 큰 충격이 무엇이냐?”

사람들이 잘 답변하지를 못했다. 그러다가 일부에서

“남북 분단!”

ㅡ하고 답하자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했다.

그래도 사람들이 답변하지 못하자 답답해하며 이렇게 외쳤다.

“한일합방!”

그러면서 아마 이런 말을 이어나갔을 것이다. (다 기억할 수는 없는데 내 기억엔 이렇게 남아 있다.)

“한일 합방은 주체 상실의 시대요, 자기 배반의 시대다.
독립? 혼자서 서야 독립인데 디딜 땅 자체가 없이 무슨 (독립을) 해?
…그 시절에는 두 종류의 한국인이 있었다.
일본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친일),
그리고 독립투사들 몇…”

이 강의의 도입부만 들었는데도 나에겐 어느새 적개심 같은 것이 일고 있었다.

적개심과 한(恨)으로 치자면 이스라엘과 우리는 역사적 동질감을 지녔다.

도올 김용옥 교수님의 말처럼 우리 근대사의 가장 큰 획이 ‘한일합방’이었다면,
이스라엘 민족의 종교와 토라는 ‘바벨론 포로기’를 떠나서는 논의 자체가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와 빼닮았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들 민족성에 배인 한이 결코 적개심으로 소진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종교는 본래 ‘약속의 땅’이라는 모토로 응집되어 있었다.
그런데 디딜 땅(독립)이 없어지자 어느새 ‘약속의 사람’이라는 모토로 전환되었다.

‘약속의 땅’ → ‘약속의 사람’ (중요)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 혹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말이 어느새 형이상학적 술어가 된 전거다.

이들에게 ‘한’이 많지만 자기 조상을 매국노와 독립투사로 가르지는 않는다.
압제자의 땅에서 자기들의 생명을 보호했던 은인들이 깊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에스더나 다니엘은 외국인과 결혼한 여자 또는 압제자의 권력에 기댄 매국노가 아니라 은인으로 남아있다.
그렇다고 매국 청산이 안 된 것도 아니다.
단, 바벨론 본토에서 귀환한 사람들이 정경적(canonizing) 땅과 사람만을 솎아낸 것은
마치 일본 본토에서 귀환한 자국 사람들이 자국 로컬의 친일 청산을 한 격이라 역설,
그러나 어쨌든 그들의 선생들은 이 정경화 작업 속에서 사사로운 적개심과 복수심은 제거하고
은혜만 남겼다.

자고로 희랍어로 ‘선생’을 뜻하는 디다스칼로스(διδάσκαλος) 라는 말은
‘아름다운’을 뜻하는 칼로스(κάλος)와 ‘가르친다’는 뜻의 동사 ‘디다스코’(δίδάσκω)가 합쳐서 된 말이다.

즉, ‘선생’은 아름다운 것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땅이 사라졌는데도 약속이 사라지지 않고
‘땅의 약속’에서 ‘사람에 대한 약속’으로 바뀌었다고 민족에게 공지하고,

메타피지컬 한(전세계를 아우를 만한) 민족성으로 승화시킨 것은 어디까지나 바로 이 선생들의 공적이다.

 
결단과 적용:

6. 우리에게 애국심과 자존감보다는 한(恨)이 가득차 있다면 그것은 다 ‘선생’들의 잘못일 것이다.

 
기도:

7. 나― 아름다운 것을 가르치게 하소서.
너― 아름다운 것을 배우게 하소서.
우리― 선하고 아름다운 민족이 되게 하소서.

 
cf. Lectionary, Friday (March 18, 2016): Psalm 31:9-16; Isaiah 54:9-10; Hebrews 2: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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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University Lecturer | 저서: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도상해석학과 신학의 지평융합: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후 해체시대의Post Secular 새교회 새목회 (2013). | Fb/@pentalogia Twtr/@pentalogia | You can add my to your circles. 로 연결해 보세요. 개인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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