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자(Μακάριοι)와 복 받는 자(εὐλογημένο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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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91
    mi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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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에스겔 34:11~16, 20~24
    시편 100 혹은 시편 95:1~7a
    에베소서 1:15~23
    마태복음 25:31~46

    각 주제:

    겔 34:11-16 | “I myself will search for my sheep and look after them.”
    시 100 | “Know that the LORD is God.”
    엡 1:15-23 | “God placed all things under his feet.”
    마 25:31-46 | “‘Come, you who are blessed by my Father; take your inheritance, the kingdom prepared for you since the creation of the world.”

    메시지 테마:

    상속받으라

    신학적 주제:

    수동적인 복과 피동적인 복

    파라볼레:

    혜민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재산’과 김동호의 청부론(淸富論)은 다 같은 것이다.

    해설:

    마태복음 25장에서 임금이 오른편의 양과 왼편의 염소를 가른 다음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복받을 자들이여”라고 칭하였을 때, 마카리오이(Μακάριοι)라 부르지 않고 에우로게메노이(εὐλογημένοι)라 부른 것은 놀라운 일이다. 마카리오이는 시편 1장 1절의 70인역으로서 유대인만이 선한 자라는 당대의 도그마를 깨뜨리고 ‘가난한 자’를 선한 자로 폭로하기 위해 사용한 수동적 명제였다면, 에우로게메노이는 오른편 양을 피동적(선천적) 상속자로 선언해버리는 테제에 사용하기 때문이다. 수동적 복자는 가난한 자리에 다다르면 얻을 수 있는 지위이다. 그에 비하면 피동적 복자는 타고나는 것이다. 이 복자 신분 여부를 어찌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리하여 수동적 복자는 단지 ‘가난한 자’(Luke)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Mt.)로 개정되었고, 피동적 복자는 예정론을 산출하기에 이른 것이다.

    ※ 에우로게메노이(εὐλογημένοι)는 아오리스트이기 때문에 ‘복 받을 자’가 아니라 ‘복 받는 자’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상속이 지속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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