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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108
    mimoon
    키 마스터

      미얍마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탁월한 분석을 내놓는 비 언론 기고자들이 있어 노트에 담는다. (이 리포트는 다소 음모론을 전제한다.)

      —-

      【미얀마 군부 쿠데타는 딥스테이트 미국과 시진핑 중공이 결별하는 패인가?】

      ● 미얀마 군부 쿠데타 사태를 냉정히 판단하기 위해서는 미얀마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왕 역사 공부를 하려면 잊혀진 선사시대의 문명부터 살펴보자.

      근래에 <순다랜드 문명>이란 초고대 문명이 주목받고 있다.
      약 15,000년 전 해수면 수위가 지금보다 100미터 이상 낮았을 때 이야기다.

      동남아시아와 남태평양에 존재했된 초고대 문명을 순다랜드(sundaland) 문명이라고 한다.
      세계 사대문명보다 만년 정도 앞선 이 문명권이 심지어는 호모사피엔스의 발원지라는 주장도 있다.

      한반도에 벼농사 전래는 인도에서 중국을 거치거나 동남아에서 배를 타고 정착한 남방계에 의해서 시작되었다는 게 종래의 학설이었으나, 순다랜드에서 중국 동부와 한반도 서부 그리고 일본이 육지로 연결되었던 시기에 전래되었다는 가설이 힘을 얻고 있다.

      첨부한 사진을 보면 말레이반도와 미얀마 그리고 인도네시아가 모두 육로로 연결되어 있던 시기다.
      순다랜드의 중심부에 미얀마가 있다.

      기원전에 티베트버마족이 남하하여 버마족 왕국을 세웠다고 하니,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북방기마민족이 남하하여 버마왕국을 세운 것이라 여겨진다.
      이 버마왕국은 13세기 몽골군에게 침략당했고 몽골군과 같이 남하한 샨족에 의해 지배받는다.

      이후 포루투갈, 프랑스, 영국 등 외세와 손잡은 부족들이 각각 왕국도 세우고 전쟁도 한다.
      그러다가 청나라 고종이 침입해 오나 격퇴한다.
      이후 영국령 식민지가 되었다가 1947년 버마민주공화국연방으로 독립한다.

      여기까지의 역사를 보면 과거의 영광과 식민지배를 받았던 서구열강에 대한 반발과 중국의 침략으로 국경을 이웃한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이해될 것이다.

      ● 버마연방은 국명에도 연방이 있지만 여러 다른 민족의 연합체이며 민주공화주의와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정당이나 단체를 결성하고 서로 대립해 왔다.
      부족이 다르니 당연히 종교도 기독교, 불교, 토속종교, 이슬람교가 뒤섞여서 공존하거나 대립한다.

      1962년부터 시작된 군사정권은 이후 1988년 미얀마연방공화국으로 새로시작했으나, 현재까지 실권은 군부가 가지고 있다.
      이번에 가택연금된 아웅산 수치 역시 선거에 의해 당선된 정부 수반이기는 하나 실질적 권한은 없었다.
      아니 미얀마의 현실이 무력 외에는 국가를 유지하기 힘들다고 해야 옳게 말하는 것 같다.

      중국에서 장개석군과 모택동군 간의 국공내전에서 패퇴한 서부 중국군은 사천 운남을 거쳐 버마로 쫓겨왔다.
      이에 미국은 이들을 지원하며 버마 영토 내에 군사기지를 건설하고 비행장도 짓는다.
      중공군이 이들을 쫓아 국경을 넘으면 버마 국토가 전쟁터가 될 것을 우려한 버마군부는 이들을 공격하여 승리하고 이들은 버마 북동부 메콩강 산악지대로 쫓겨간다.
      이들이 정착한 이곳이 나중에 골든 트라이앵글(황금삼각지대, 버마/라오스/태국)이라 불리는 세계 최대의 아편 재배지의 하나가 된다.

      또 카렌 반군을 비롯한 내전이 끊이지 않는다.

      이런 환경에서 미얀마의 군부는 반중, 반미의 기조 아래 동남아 소국인 자신들이 기댈 이웃을 찾다가 인도와 일본에 러브콜을 보내고 의지했으나, 인도는 중국보다 약해서 제 몸 건사하기도 벅찼고, 일본의 대동아 공영권(大東亞 共營圈)이라는 구호에 이끌렸으나 실제로는 미국의 푸들이었던 것.

      ※ 서구열강의 식민지배를 경험한 동남아인에게 동아시아, 남아시아, 오세아니아에서 서구를 몰아내고 아시아인의 힘으로 공영권을 만들자는 일제 군부의 구호는 꽤 솔깃했었다.

      ● 역시 믿을 건 패권국밖에 없고 원교근공이라는 국제정치학의 진리에 따라 중국을 배격하고 미국과 가까이한다.

      미국의 요구 – 아웅산 수치 등 민주 인사를 석방하고 선거를 통해 민주정부를 구성하라. 그러면 우리가 미얀마를 지켜주겠노라.
      미얀마 군부는 실권은 가지고 있되 미국의 요구는 들어주는 딜로 친미국가가 된다.

      미국의 힐러리, 소로스 등은 아웅산 수치를 밀어주는 대신 중국으로부터 미얀마를 지켜주기로 한다.

      ● 중공의 시진핑이 일대일로 전략에 따라 미얀마에도 중꿔 바람이 불어 미얀마를 관통하는 송유관이 개설된다.
      중국은 중동산 석유수입 루트가 말레카 해협을 거치는데, 이곳을 미국이 봉쇄하기라도 할 경우 에너지 수급에 큰 지장이 오게 된다. 따라서 중국은 미얀마 항구에 유조선을 대고 육로로 윈난성 쿤밍(昆明)까지 파이프라인으로 수송하는 방안으로 중국이 자본을 대고 건설하는 사업을 시작한다.

      아래 첨부 사진에서 인도양의 짜욱퓨 항구는 수심이 30m를 넘는 천혜의 조건을 지니고 있어서 중국은 이곳을 대대적으로 개발해 외항으로 건설하려 했다. 하지만 아웅산 수치의 정부는 (중국에게) 너무 많은 돈을 빌렸다가 갚지 못할 경우 스리랑카처럼 항구를 빼앗길 가능성이 있다는 미국의 조언에 따라 – 명목상으로는 캐나다의 컨설팅 회사 – 항구 개발을 축소한다.

      ● 그런 와중에 미얀마는 대선을 치루게 되는데 아웅산 수치는 90%대의 압승을 한다.
      십년 집권 동안 지지기반을 쌓은 수치는 선거 결과를 두고 군부가 가진 권력을 회수하려 했고 군부는 (그동안) 미국과의 관계를 위해 보험을 드는 셈치고 명목상으로만 국가수반의 역활을 맡겼던 수치의 공고함에 위기를 느껴 부정선거를 이유로 정권을 뒤집어 버린다.

      이후의 사태는 설명이 필요없을 것 같다.
      미국은 수치 정권을 쿠데타로 몰락시킨 미얀마 군부에 대한 강경 기조를 예고했고 군부는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중공과 손을 잡는다.

      사실 이런 사태를 부추긴 게 중공이라는 정황이 많다.
      약체 치매바인 미국 정부를 여기저기서 찔러 보며 ‘우리가 쥐고 있는 너희 약점 때문에 너희는 꼼짝 못할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을 것이다.

      ● 이제 치매바의 의중에 관계없이 미국이라는 패권국에게 도발한 중국은 미국이라는 시스템을 건드린 대가를 치루게 될까?
      미국의 소프트적인 반격은 시작되었다.
      하드적인 반격이 언제이고 어디부터일까?
      미중의 대리전 지역은 이란, 미얀마, 베트남, 필리핀, 대만 그리고 한반도이다.
      어디서부터 시작될 것인가?
      동시다발인가?
      한반도에서 미국은 한국을 입맛에 맞는 동맹으로 레이짐 체인지하고 북한을 공격할 것인가?
      미일 연합작전으로 폭격만 할 것인가?

      by 서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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