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철학과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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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5 10:15 오후 #2310
우리나라에서 미학과(aesthetics) 출신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분은 다음 세 분 정도일 것입니다.
김지하.
진중권.
변희재.공교롭게도 이들 세 분은 같은 학교, 같은 과 출신인데도,
돈독한 선후배 사이인 것 같지는 않고,
알다시피
김지하 시인께서는 시문학 분야에서 대가이시며,
학번이 가장 낮아 보이는 변희재 씨는 좀 다른 분야로 유명하시고,
진중권 교수께서만 비교적 미학 관련 경력을 유지하는 듯 보입니다.진중권 교수께서는 미학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몇 곳에 중복해 기록으로 남긴 바 있습니다.
“19세기까지의 예술 관념은 아리스토텔레스적이다. 즉 극에서는 기승전결이 있어야했다. 그래서 극이 유기적인 전체성을 이루는 것이다… 급작스러운 사건이 등장할 때에도 항상 그 이유가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복선을 미리 깔아놓아야 하는 것이다. 벤야민이 보기에 영화 매체의 특성은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이러한 유기적 전체성에 있는 게 아니라 파편적인 충돌에 있었다. 영화에서 사용하는 ‘몽타주’라는 낱말의 의미 자체가 공장 생산에서 나온 것이다. 자동차 부품들을 조립하듯이 몽타주도 조립하는 것이고 유기체가 아니라 무기체적인 것을 다루는 기술이다. 예술은 유기적이지만 기술은 무기적인 것이다.”
이 말을 어떤 강연 시리즈의 프롤로그로 남긴 걸 한번 본 적이 있고,
자기 저서에도 남긴 걸 읽은 적이 있습니다.위 인용문을 풀어서 요약해본다면
영화 매체를 통해서 밝힌 그의 현대 문화 이해 정도가 될 것인데,
현대 문화를 대표하는 영화(라는 문학)는
기계적인 데서 비롯되었으며(왜? 그것이 필름 조각[파편]의 모음이니까)
그래서 결국 그것은 (예술이라기보다는) ‘기술’이며
그러나 ‘기술’임에도 예술을 능가한다는 취지의 분석일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과거의 예술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적’이었다고 격하하는 듯 보입니다.
왜냐하면 (파편을 모아서 개념을 창출해내는) ‘기술’처럼 세련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여기서 우리가 포착할 수 있는 것은
1) 그가 기승전결 파괴를 미덕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
2) 그래서 그것은 ‘해체’(postmodern)의 정당성이며,
3) 그래서 그의 비 학문적 활동 영역은 그렇게 기승전결의 파괴적 해체인가?
하는 전제들로서, 이 책의 기본 출발점이 된 것입니다.위와 같은 전제를 서문에 적시한 이 책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는 그러한 문화 이해를 이렇게 비평하고 있습니다.
“(저들이) 현대 극 예술을 몽타주로 이해한 것은 맞지만 그것이 아무런 이유 없이 찢고 오리고 느닷없이 갖다 붙이는 것인 양 정당화 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을 무기체로 규정하는 오용이 ‘예술은 유기적이고 기술은 무기적’이라는 그릇된 견해를 낳은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예술과 기술을 결코 분리한 적이 없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으로부터 2300여 년 전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예술’이라는 개념은 그 자체로서 이미 ‘기술’이었으며, 정작 Ars라고 불리는 ‘예술’이란 사실 근대 유럽에서 만들어진 말이자 개념이기 때문이거든요.
‘예술’(Ars)라는 단어가 있기 전에는 Tekne 곧 ‘기술’ 밖에 없었기에,
예술(Ars)이란 말 자체는 기술(Tekne)에서 나온 개념이었던 것입니다.이 책은 이렇게 서문을 맺습니다.
“우리는 아무것이나 찢고 오리고, 아무 때나 갖다 붙이지 않는다. 이것은 이 책에서 선호하는 철학이다. 그리고 우리는 반드시 원인과 결과, 특히 시작과 중간과 끝을 갖춘 원형의 모습을 보전함으로써 그 모방술의 원천을 지향한다. 예술(Ars)이란 말 자체가 기술(Tekne)에서 나온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 책에서 선호하는 몽타주 작업, 곧 미학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그것이 몽타주든 꼴라주든 융합할 때에, 그것이 지닌 본래 원형의 모습을 향해 찾아가도록 성실하게 화합해 나간다. 이것은 이 책이 선호하는 신학이다.”예수께서는 목수, 곧 기술자(Tekne)셨지요?
예술가였던 셈입니다.* 기술자가 예술가보다 낮다는 발상은 근대에 생겨난 그릇된 발상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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