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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철학과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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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5 10:20 오후 #2312
《몽타주》 해제 #1 어거스틴이 어거스틴 된 경위
첫 장 해제에 들어가기에 앞서 첨부된 그림을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소위 ‘도상해석’이란 걸 한 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도상해석’의 첫 순서는 언제나 해당 그림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는 일로부터 시작합니다.
이상한 점은 한 가지 일수도 있고 여러 가지 일수도 있습니다.
[이 그림에 대한 자세한 도상해석은 http://mimoonchurch.com/?p=801 여기를 참조하면 되겠습니다만,]여기서 제안하고 싶은 이상한 점은
사제가 누구고, 부제가 누군가 하는 점입니다.전면 우측에 황금색 도포에 고깔 쓴 사람이 바로 사제,
그리고 역시 황금색 도포를 입었지만 고깔은 안 쓴 좌측 사람이 바로 부제입니다.이 그림 상에서 사제는 어거스틴이고,
부제는 스데반입니다.어떻게 아냐고요? 도포자락 그림으로 압니다.
여기서 의문 하나를 제기하겠습니다.
비록 스데반이 집사였고 어거스틴은 주교에까지 오른 건 사실이나,
대(大) 스데반 집사는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인데다가 최초의 순교자이기까지 한데
어찌하여 어거스틴의 시중(?) 드는 부제로 표현할 수 있느냐!! 입니다.여기에 바로 중세 카톨릭 교회가 신봉하는
절대 하이라키 구도가 있는 것입니다.
적어도 이 그림 상에서
어거스틴의 위상은 성경에 등장하는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 집사를 능가합니다.왜 그럴까?
어거스틴에겐 여러 업적이 있지만 이번 해제를 위해
도나투스(파)와 펠라기우스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어거스틴이 태어나기 4-50년 전인 303-311년 경 로마 치하에서 발생한 박해 총 10회 중 가장 마지막 박해이면서도 가장 강력했던 박해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순교자도 많이 발생하였지만 수많은 배교자가 속출합니다.
도나투스(Donatus, ~355)는 박해가 지나간 후 이들 배교자 처우 문제를 놓고 교회에서 분파를 만들어낸 인물/종파의 이름입니다.이들이 분파가 되는 발단은 312년 경 카실리아누스(Caecilianus)라는 인물의 주교 서품을 놓고 벌어졌는데, 문제는 이 사람을 서품한 인물 팰릭스(Felix) 주교가 바로 배교자였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배교자 및 이단자에 의한 서품행사는 무효라고 천명한 도나투스(파)의 입장입니다.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배교자가 목사 안수를 주는 것에 대해서?이것이 도나투스 자신의 이념에 그치지 않고 분파(Donatism)로 발전하게 된 데에는
이들의 엄격함을 토대로 ‘재세례’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성직자 서품의 문제뿐 아니라 신앙의 근간인 세례조차도 ‘다시’ 받아야 된다는, 기존 세례에 대한 반동이 생겨난 것입니다.
언뜻 생각할 때 지극히 당연한 발상 아닙니까?
그러나 이 문제는 성사(聖事)가 과연 무효화 되는 것이 마땅하냐는 문제를 넘어서,
그렇다면 인간이 아닌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주어지는 성성(聖性)마저 무효화 되어야 하느냐는 문제가 잇따라 야기되면서 심각한 교리 문제로 확전되기에 이릅니다.결국 도나투스주의자는 이단으로 정죄 당합니다.
이들을 막아낸 인물이 바로 어거스틴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결코 단순한 사안이 아니었던 것은,
하나님 은총의 영속성과
자유의지(론) 문제가 연계되면서
심지어는 원죄(론)의 유/무효성까지 대두되는 등,시대에 따라 다른 사람에 의해 다른 옷이 입혀져
도전이 계속되었기 때문입니다.펠라기우스(Pelagius, 360~420)도 그 중 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죄의 책임은 유전되지 않는다”고 천명하였습니다.
펠라기우스(파)는 인간의 자유를 선택하고 행할 수 있는 자연적 능력으로 규정하면서
그에 따르면 죄란 오로지 인간 의지의 개별적 행동으로 성립된다고 보았습니다.인간을 본래부터 선한 존재로 보고 자유의지를 강조한 펠라기우스는
(우리에겐 흉악한 이단으로 먼저 소개되어 있지만)
나름대로 그리스도인 사이에 만연한 윤리적 태만을 염려하고
그들의 행위가 개선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엄격함이 있었다고 합니다. (앞서 도다투스가 배교자로부터 안수를 받을 수 없다고 천명한 것처럼)특히 펠라기우스는 인간이 약하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교리를(성악설?) 거부하고
하나님은 인간이 선과 악 사이에서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했다고 주장함으로써,죄란 한 인간이 하나님의 법을 저버리고 자발적으로 범하는 것이라면서
원죄에 대한 교리까지 거부했습니다.또한 앞서 도나티우스(파)가 재세례를 주장함으로써 기존 세례를 거부한 것 처럼 그 역시 (유아)세례를 거부했던 것입니다.
한편,
이들을 막아낸 어거스틴은 그에 반해,
죄(罪)를 선(善)에 대한 상실로부터 출발시켰습니다.죄가 이 세상에 들어옴으로써 인간은 선을 행할 수 없는 존재로서
자기 운명을 실현할 수도 없는 존재로 규정했습니다.타락 이전의 자유의지가 있었던 것은 맞지만
타락 이후에는 완전히 상실된 것으로 보고
하나님의 은총 없이는 죄를 피할 수도
선을 성취할 수도 없다고 천명했습니다.우리가 자유의지를 간직하고는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그 자유는 오로지
잘못을 저지르는 데만 사용된다고 본 것입니다.어거스틴은 이와 같이
하나님 은총의 절대성
인간의 절대 타락성
이들을 토대로
당대 교회를 수호했다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즉 카톨릭 보편(catholic) 교회의 기틀을 다지게 된 것입니다.이것이 바로, 그가 저 그림에서 스데반보다 격상된 지위를 얻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절대성과 자유의지 간의 분쟁은
오늘날 개신교 교파 형성 과정과 이어서 볼 수도 있고,
칭의와 反/半 칭의 노선 간의 분쟁으로 연계해 볼 수도 있습니다.그렇다면 지금까지 위 열거에서 이 해제의 구심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어거스틴이 자신의 교리를 위해 중무장 했던 그 화기
그 무력화기가
바로 플라톤의 이원론이었다는 사실입니다.플라톤은 이렇게 규정합니다.
위엣 것은 선한 것.
아랫 것은 악한 것, 더러운 것, 떨어진 것.이 책 첫 장이 그래서 어거스틴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 막깡 화력 어거스틴의 도그마의 퇴조를 그리고 있습니다.* 도나투스(파)에 대한 이단 규정은 개신교에선 모호한 편입니다. 그러나 카톨릭에서는 선명한 이단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배교자의 안수를 거부했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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