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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15
    mi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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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타주》 해제 #2 플라톤

      어거스틴이 이단자 도나투스, 펠라기우스를 패퇴시키는데 플라톤이라는 중화기를 썼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신학이면 신학이지 철학(자)이 웬말이냐!

      어거스틴이 활동하던 시기는 이제 막 정경 확정이 되느냐 마느냐 하던 시기라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가 개신교의 기치이다보니 이 기치가 전교회사/구속사에 미쳤던 보편 기치로 일반화 하기 십상이지만,

      종교개혁 이전에는 어디까지나
      시대마다 다른 의미로서 <오직 성경>이었으며,

      특히 신약성서의 정경 확정이 된 397년 이전에는 정경을 대신할 수 있는 다른 무엇이 그 화력을 대신 했다는 사실입니다.

      대신했던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전통(tradition)이었으며,
      이 전통의 다른 말이 교리 즉 도그마였던 것입니다.

      카톨릭이 ‘정경’ 텍스트 위에 ‘전통’을 우선시 위치 시키는 것도 이 근거에 의한 것이며,

      그래서 (카톨릭의 교조라 할 수도 있는) 어거스틴은 정경화 과정에서 다른 전선에 있는 텍스트 보존자들 보다 사본에 대한 유연한 태도를 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컨대,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인에 대한 텍스트의 경우 권위 있는 사본을 토대로 하는 사본학상으로는 위서 본문으로 판정이 나는 상태이지만,
      어거스틴은 주님의 일화로 과감하게 선언을 해버립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어거스틴을 지지합니다만)

      (다시, 도나투스/펠라기우스로 돌아가서.)

      그리하여 어거스틴이 진리를 수호하고 설명하는 단계에 있어 절대 필요했던 것이
      형식적인 면에서는 수사학이요,
      재료적 측면에서는 바로 플라톤의 이원론이었던 것입니다.

      이원론이 뭐라구요?

      위엣 것은 완전한 것, (절대)선한 것.
      아랫 것은 불완전 한 것, 더러운 것, 떨어진 것.

      플라톤의 《국가》10권과 《시론》제2장에서는 우주의 구조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화가와 목수와 신, 이 셋이서 세 가지 종류의 침대를 관장했네.”

      “네, 그 셋이서 그렇게 하고 있지요.”

      “그런데 신은 자연 속에 하니 이상의 침대를 만드는 것을 원하지 않았든지 아니면 하나 이상을 만들어서는 안 될 어떤 필연성이 있었든지, 아무튼 침대 자체 하나만을 만들었네. 그리고 그와 같은 침대가 두 개 또는 여러 개씩 신에 의하여 만들어진 적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네.”

      <중략>

      “그런 것 같군요”

      “따라서 우리는 신을 침대의 본연의 창조자라고 하든지 또는 그와 비슷하게 불러도 좋겠지?”

      “그렇게 부르는 것이 옳겠군요. 왜샤하면 신은 침대뿐 아니라 다른 것도 모두 본성에 따라 만들었으니까 말입니다.”

      “목수는 무엇이라고 할까? 침대 제작공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네. 그렇게 부를 수 있겠군요.”

      “그렇다면 화도 역시 침대 제작공이라 제작자라고 부를까?”

      “그건 안 됩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화가를 침대의 무엇이라고 부를 작정인가?”

      “제 생각으로는… 앞서 말한 제작자들이 만든 것을 모방하는 모방자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타당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본성으로부터 3단계 떨어져 있는 제작물의 제작자를 모방자라고 부르는 셈이네.”

      “틀림없이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 점은 비극 작가에게도 해당될 것이네. 그도 모방자인 이상 왕과 진리로부터 3단계나 떨어져 있는 사람이니까 말이네. 그리고 그ㅇ밖의 다른 모방자들도 모두 마찬가지네.”

      <생략>

      이상의 대화에 나타난 것 처럼 플라톤은 우리가 본 적도 만져본 적도 없는 절대 유형의 사물을 신적인 완전체로 상정하고 이 땅에 있는 사물은 그 모방물이며 불완전한, 떨어져나온 저차(원)적인 것으로 격하시켰습니다.

      어거스틴의 은총과 인간이해도 이 틀 속에서 강력한 논리의 옷을 입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플라톤의 이원론 속에서 모방술에 해당하는 예술은 모조/위조술로 격하되기에 이릅니다.

      프리드리히 니체(F. Nietzsche)는 말하기를 “유럽이 낳은 예술의 가장 강력한 적”이라 했을 정도니까요.

      왜냐하면 그것이 일종의 도그마(dogma, doctrine)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플라톤의 사물에 대한 경직된 교리는 자기 제자 때에 이미 혁파되기에 이릅니다.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천한 모방술을 천상의 기술(tekne)로 뒤집어 놓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는 호르헤를 그 물러가는 플라톤과 어거스틴으로 윌리엄 수도사와 제자 아드소를 마치 아리스토텔레스의 신 문물 처럼 구도 해놓았습니다.

      * 현대 미학/몽타주가 이 후진들의 권역 아래 있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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