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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21
    mi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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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타주》해제 #6. 개신교인도 알아둬야 할 수도회 종파 초간단 정리

      중세, 중세… 말은 많이 하는데 몇 년대를 일컫는지 모르는 분이 의외로 많다.

      중세라는 시기는 약 AD 500년 경부터 AD 1500년 경까지 천년을 이르는 말이다. 학술적으로는 서로마 제국이 무너지고 게르만족 대이동 시기를 출발 시점으로 보니 AD 476년에 이미 시작된 셈이다.

      초기의 기독교 박해는 AD 300년 초기 밀라노 칙령(313년)을 기점으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으나,

      문제는 그 소강국면 이후로 기독교에 대대적인 질적 저하가 왔다는 사실에 있었다.

      관(官)의 보호를 받다보니 면세 혜택이 주어지는 것에 착안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재산을 가지고서 너도 나도 사제로 귀의 하는 자들이 대거 발생하였다. 부흥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하여 당대의 사제 가운데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Text 종교 사제가 글을 못읽어 <(") ; ) 로마제국의 망조와 기독교의 질적인 퇴락은 함께 가는 동선을 보인다. 이러한 관제 신앙에서 떠나 광야를 바라보고 떠나는 은둔자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수도사(회)의 출발이다. 개인적 수도 생활로 시작하여 군락을 이루어 명성을 이룬 효시는 아마도 베네딕토(Benedict, 480-547) 정도일 것이다. 관제를 띤 교회가 서로마제국의 멸망과 함께 무너졌을 때 정신적 지주의 역할은 이들로 대체되었다. 개신교인은 중세! 하면 모두 카톨릭 산물로 여겨 나쁜 종자 취급하지만,
      황폐해진 토지를 농지로 바꾸어 당대에 헌신했음은 물론,

      고대의 위대한 책들도 이들이 필사하고 보존해주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우리는 그런 책들은 구경도 못했으리라.

      그러나 이 수도원들 역시 시간이 흐르자 비옥해지다 못해 비대해져

      축적된 부의 팽창으로 질적 저하 국면으로 접어들고 만다.

      수도원의 중흥이 13세기에 다시 일어나는데 우리가 주목할 만한 게 있다.

      청빈, 금욕, 순종의 덕목을 회복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수도회가 공통적인 염원이었으나 도미니크(1170-1221)가 세운 도미니크 파는 실천과 행함 외에 교리가 먼저 바르고 명확해야 한다는 노선을 가지고 있었으며,

      우리가 잘 아는 아시시의 프란체스코(1182-1226)가 세운 프란체스코 파는 극단적 청빈의 실천으로 가난 자체가 설교요 아예 누구를 (말로) 가르치려는 것을 불경시 하였다.

      그리하여 프란체스칸들은 사람들이 많은 장터에 나가 청빈을 실천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는 이런 엄격 수행을 존치하자는 엄격파와

      (그래도 맨날 어떻게 이러고만 살어~ 하는) 온건파로 나뉜 것이 황제파 교황파 기능을 하여 정쟁을 일삼게 된다.

      이들에 반하여 도미니칸들은 청빈, 금욕, 순종의 실천과 행함 외에도 학문을 수도사 수련의 원리로 추가하였다. 그러한 결과 여기서 위대한 학자가 많이 나왔는데 바로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 종파에서 나온 것이다.

      어거스틴이 카톨릭(뿐 아니라 기독교 전반)의 개념적 틀을 기초로 세웠다면

      아퀴나스는 그 기초에 방법적 틀을 입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유명한 신존재 증명 다섯 가지를 한번 옮겨본다.

      첫째, 운동으로부터의 증명.

      우리는 움직이는 사물을 볼 때 그것이 스스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안다. 즉 움직이는 모든 것은 그 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에 의하여 움직여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다른 것들을 운동시키는 “부동의 동자”(unmoved mover)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 “부동의 동자”가 바로 신이다.

      둘째, 능동인(能動因)으로부터 증명.

      본래부터 능동적인 것은 아무 것도 알려진 바가 없다. 어떤 사물이 그 자체로서 원인이 되려면, 자신보다 먼저 존재해야 되는데 그것은 명백히 불가능하다. 본질에 있어 알려진 모든 원인이란 동시에 다른 원인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관찰 가능한 유한한 원인에 대해서는 설명해 줄 수 없기 때문에 원인들이 무한정 계속될 수는 없다. 이것으로부터 결론지을 수 있는 것은 제1 원인(First-Cause)을 필요로 하며, 이것이 바로 신이다.

      셋째, 우연적 존재와 필연적 존재로부터 증명.

      관찰된 대상은 본질에 있어 우연적이다. 우연적(contingent beings)이라 함은 대상이 자신의 존재를 다른 사물에 의존함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대상들의 존재는 그들이 존재해 있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에 필연성이 아닌 가능성이다. 이와 같은 존재의 가능성은 그 이외의 것에 의존하지 않는 필연적인 존재(Necessary being)가 있음을 반증해준다. 이 필연적 존재가 바로 신이다.

      넷째, 자연의 위계에서 관찰되는 사물 단계로부터 증명

      우리는 어떤 사물은 다른 사물 보다 더 좋거나 더 나쁘다고 말한다. 이러한 가치 등급(degrees of value)은 필연적으로 판단의 규정과 일치하는 절대 가치(Absolute value) 기준을 방증한다. 즉 선함, 질서, 조화, 아름다움, 완전함 등의 기준이 바로 신이다.

      다섯째, 자연의 질서와 조화에 근거하는 증명

      자연에는 특정한 질서와 조화와 의미가 있다. 세계의 모든 일은 알게 모르게 자신들에게 맞는 목적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 같은 질서의 조화를 운명이나 우연으로 돌리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그것은 자신이 의도하는 목적에 따라(purposiveness) 모든 일을 이루어 나가는 한 지적 설계자가 있음을 지지하고 있는것이다. 그 설계자가 바로 신이다.

      * 한 10여년 전에 내가 이 다섯 가지를 요약한 한 아티클을 내 블로그에 게시했을 때, 어떤 카이스트 다니는 애 하나가 “이 증명이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었네?”하고 써놓았다.

      * 그래서 이렇게 답해주었다. “늬가 지금으로부터 한 700여년 전에 태어났으면 저런 논리 문장을 만들 수 있었겠냐?”

      * 여기서 등장하는 모든 논리 증명은 아퀴나스의 창작물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자 원리에 기틀한 고대의 과학 논증이다. 현대 과학 논증에 의해 무너졌다 해도 2300년 전 도구 하나 없이 철학의 사고 틀 하나로 논증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그것을 ‘신 존재’에 적용을 해냈다는 데에 토마스 아퀴나스의 공적이 있다.

      * 하지만 과학의 법칙이 교회의 교리에 지배를 받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점에서는 난조가 아닐 수 없다.

      * 적다보니 ‘초간단’ 하지 않게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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