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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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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타주》해제 #7. 철학과 신학의 사생아 과학

      철학과 신학 사이에서 자식 하나가 나왔는데 그 내력은 다음과 같다.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주장하다가 종교재판에 회부 된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지동설의 처음 주창은 갈릴레오가 아닌 코페르니쿠스였는데도 새삼 17세기 들어 70대 노인을 기소한 건 본때를 보여주려는 측면이 크다.

      이때에 기소된 논리가 흥미로운데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성경에 대한 도전

      수 10:13 ㅡ 여호수아가 태양을 움직였는데, 니가 몬데 지구가 돈다는 거
      시 19:1-5 ㅡ 태양이 신랑 처럼 달리기 한다는데, 니가 몬데…
      시 104:1-5, ㅡ 땅이 흔들리지 않는다는데, 니가 몬데….
      사 40:22 ㅡ 땅은 주님 앉으신 곳 태양은 천막이라는데, 니가 몬데…

      둘째는 아리스토텔레스(아퀴나스) 철학에 대한 도전

      교회 예전의 신비와 교회론 전반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기반으로 집성되었던 바, 지동설은 천체과학의 문제 그 이상이었다.
      (사실 이 문제가 첫 번째 문제 보다 컸다)

      당대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으로 모든 설명이 다 되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퇴조는 전통/교의에 대한 전반적 침탈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왜 그럴까?)

      이 시기에 갈릴레오 처럼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맞다는 세계관을 책에 담아 정식 출판을 준비하다가
      이 종교재판 때문에 슬그머니 포기를 하고 만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데카르트.
      그가 37살 정도 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로부터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그가《제1 철학에 관한 성찰》이라는 책 한 권을 다시 쓰는데,

      이 책에 실린 서문 《의심할 수 있는 것들에 관하여》
      이게 기가막힌 명문이다.

      [* 전문을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에 담아 놓았다. 새로 번역해서]

      이 글의 필치를 다시 다듬은 이유는 데카르트라는 (용기 없었던) 인물이 “…나 이제 은퇴할 나이라 별로 두려운 거 없어… 지금부터 ‘의심’이라는 이 방법 하나로 온 세상을 전복시켜 볼께…” 하고 말하는
      그야말로 ‘소심한 용기’의 뉘앙스를 제대로 살려 놓기 위해서다.

      데카르트의 이 서문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정말 그는 ‘의심’이라는 방법을 통해 세계 전반에 걸친
      사고의 틀을 바꾸어 놓았다.

      이것을 학명으로 ‘방법적 회의’라고 부른다.

      이것은 어거스틴과 플라톤으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여기서 ‘의심’이라고 불리는 회의(skepticism)란 바로 플라톤-어거스틴의 그것에 상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정리하면
      결과적으로
      천동설은 아퀴나스-아리스토텔레스의 편대에,
      지동설은 어거스틴-플라톤의 편대로 갈라지는 추이를 포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데카르트가 주도하는 초기 과학에서는
      의외로 신(神)을 필요로 했는데,
      그 신은 태양을 멈춘 (교회가 가르치는) 神의 무위를 증명하기 위해 호출된 神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그것은 플라톤의 철학적 神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한편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다.
      데카르트가 먼저냐?
      종교개혁이 먼저냐?

      데카르트를 한 참 떠들다가 이런 질문을 하면 대개 ‘데카르트요!’ 하고 답하게 마련이다. 우리에게 서양 연대기가 들어서 있지 않은 까닭이다.

      그러나 이런 神이 부활하기 전에
      종교개혁이 먼저 있었다는 사실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종교개혁은 믿음으로 진작 되었는가?
      의심으로 진작 되었는가?
      의심 곧 이성이 없었다고 한다면 어떻게 당대의 믿음에 못을 박을 수 있었겠는가ㅡ

      그렇기에 믿음과 의심은 전혀 반대의 형식이지만
      언제나 함께 했던 것이다.

      이에 관한 추적을 이 책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제 2장으로부터 본격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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