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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moon
    키 마스터

      《몽타주》해제 #13. 이공계 Vs. 인문계

      이공계 학과 클래스에 인문학을 강의하면 참으로 난감할 때가 있다. 다는 아니지만.

      1+2=3에는 수긍을 하지만
      1+2=4에는 수긍을 않는다는 사실이다.

      1+2=4 ← 이렇게 해놓으면 ‘사연’이란 게 발생하는 거야 라고 말해도
      도무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1+2=3 ← 이런 논리 글을 써오면 너같은면 읽고 싶겠냐? 이 뻔한 게 재밌냐?
      1+2=4 ← 이래야 뭔가 읽고 싶지 않컸냐?
      그래도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는 것이다.
      어째서 1+2=4가 되냐고..
      1+2=4는 아예 비유로도 쓰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 미안허다- 자슥아.

      이 글에 첨부한 그림의 사물에서 발견되는 비율을 우리가 황금비라고 부른다. 1:1.618로 알려져 있다.

      이 비율이 가장 균형 잡히고 편안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책, 창, 명함, 신용카드…, 온갖 실용 디자인의 표준비율이 되기도 한다.

      예술가들은 일찍부터 여기에 관심해 자기 작품에 적용한 것 같다.

      밀로 섬의 아프로디테, 2500여 년 된 파르테논,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모두 이 비율이 있다.
      특히 다 빈치는 이를 위해 수학에도 관심을 가진 걸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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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20세기 들어서도 황금비 작가는 있다.
      몬드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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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그는 다 빈치와는 완전히 다른 화풍을 구사했다. 풍경을 그리더라도 어떤 도형의 조합/분할로 결론 맺는다.

      형태뿐 아니라 색상도 원색으로 정리되었다.
      소위 황금비의 극단적 재구성인 셈이다.

      사실, 두 화가 모두 황금비를 겨냥해 그렸는데 어째서 그런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일까? 다 빈치의 경우는 사실과 똑같은 그림을 위해 황금비를 썼다면 몬드리안은 그 사실적 장면들 속에서 황금비만을 부각해 사.실.을. 그렸다.

      육안으로는 모나리자가 더 실사로 느껴지지만 시각은 어차피 왜곡임이 훗날 규명된다.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의 작품이 자연(nature)에 충실했다고 말할 것인데 누가 더 충실한 것일까?

      1+2=4라는 수식/비유에다가 대고 일단의 적법성을 ㅡ 그들에게 그것은 일종의 ‘윤리’의 가늠자이기도 ㅡ 재고 버텨서가지고서는 그 다음 단계의 세계는 결코 볼 수 없다.

      그는 그 절벽에서 아마 극심한 좌절을 맛 볼 것이다.

      칸트는 관념 철학자들 가운데서 보기 드물게
      “없다”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있다” 하는 사람에 속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 그를 쉐카이나 즉, “있다”와 연결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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