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타주》해제 #21. 마르크시즘에 대한 단상들을 꼴라쥬
그동안 제가 했던 유물론과 마르크시즘에 관한 단상들을 꼴라쥬 해보았습니다. 순서는 편하신 대로 참조 하시길…
◎ 유물론, 마르크시즘, 공산주의는 같지만 다른 것이다.
◎ 유물론 본질은 관념의 발생만을 억제하기에 학제적인 선에서 그치지만, 마르크시즘은 그 관념과 상징을 파괴의 대상으로 지목하기에 이것이 강력한 행동을 낳게 되는 것이다.
◎ 결과적으로 마르크시즘은 관념의 파괴 과정에서 ‘개인’이라는 물질만 파괴한 채 그 추구하는 이상(utopia)에는 도달하지 못 함으로써 여전히 관념은 남겨두는 한계와 오류를 드러냈다. 결국 자신들이 숭배하던 그 신성한 물질이 불결한 관념으로 치환되고 만 셈이다.
◎ 그래서 유물론에 기초한 마르크시스트 크리스천의 경우 ㅡ공산주의적 기독교인의 경우ㅡ 단지 강한 인본주의 정도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 지배적일 것이나(예수의 인성만 강조하는 격이니), 역설적이게도 마르크시즘은 존재하지 않는 ‘나라’(utopia: 존재하지 않는 나라라는 뜻)를 기치로 삼는다는 점에서 그것은 이미 강력한 상징의 추구이며, 그래서 그 무엇보다 영적이다.
◎ 따라서 “종교는 아편이다”(Opium des Volkes) 라는 이 말은 영을 부인하는 말이 아니라 그 어떤 사상보다도 물(物)을 부인하는 말인 셈이다. 십자가는 물인가 영인가? 그 어느 것보다 物이며, 육체이며, 신성한 노동이다. 그러길래 마르크시즘이 적 그리스도 신학이라는 것이다.
◎ 단, 기독교에서는 노동이라는 말을 안 쓰고 실천(praxis)이라는 영적(이면서도 유물론적인) 용어를 쓴다. 그리스도의 노동 (x), 그리스도의 실천 (o).
◎ 그래서 둘은 상극인지라, 공산주의자는 언제나 기독교인을 가장 먼저 처형해왔던 것이다.
◎ 지구상에 공산주의(자)가 없었던 적은 없다. 다만, 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가 플라톤에 비해 폭력적이었던 건 자신의 불우한 기억을 토대로 그것을 산출했기 때문이고, 이 시대의 공산주의자들이 깊이가 없고 방정맞아 보이는 건 플라톤이나 칼 마르크스 같은 철학이 없기 때문이며, 그중에서도 어떤 색깔로 밖에는,ㅡ이를 테면 붉은색, 이를 테면 노란색, 이를테면 보라색ㅡ자기 정체성을 드러낼 줄 모르는 이들의 경우는 철학이 없을 뿐 아니라, 상업적 공산주의, 즉 그들 자신은 이미 맘몬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자본으로 환골탈태). 다시 말하면 오늘 날에는 신성한 순수 공산주의(자)는 없는 셈이다.
◎ 1789-94년에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후,
좋은 세상이 왔나 했는데,
지들끼리 박터지게 싸우는 통에,
1799년 11월 9일 나폴레옹이 쿠테타에 성공했다.
1820-30년대 산업화 드라이브가 걸리면서는 노동 빈민이 길거리에 널리고 콜레라까지 덮쳤다.
그로부터 한 5년 뒤,
1835년 칼 마르크스는 베를린大에서 열라게 ‘대삘이’였는데
1848년 2월 21일에 공산당 선언을 한다.
그로부터 50년 전후로 동구/소련을 중심으로 혁명이 성공을 하는 바람에,
칼 마르크스는 철학의 전 역사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버트란트 러셀은 말하기를,
고/중세의 일하지 않고 먹을 것을 빼앗아 가던 기사 계급은
여전히 공산당 뺏지를 달고서
일하지 않고 양민의 먹거리를 빼앗아 간다고 하였다.
이 100여년 새에 하나님은 어디 계셨느냐?
프랑스 대혁명 직후였던 1796년, ‘장 발장’과 잠깐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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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관념→정신→자아로 분열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근대 유물론/마르크시즘이 어떻게 탄생하는 지에 대해서도 꽤 다루었으니
제6장 마르크스의 神 역시 이 정도로만 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