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타주》해제 #24. 희망은 왜/어떻게 솟아나는가
입대를 앞둔 아들에게 뭔가 조언을 해야 할 텐데…
다음과 같이 조언하였다.
입소 첫 날 가장 강한 좌절과 두려움이 강타할 것이다.
아마 그것이 첫 번째 관문이 될거다.
그것은 ‘이제 갇혔다!’ 라는 생각과 함께 피어오를 것인데,
‘내가 지금 여기 왜 와있지?’
ㅡ라는 생각과 더불어
‘여기는 내가 와 있을 곳이 아니야!’
ㅡ라는 생각으로 변할게다.
첫 날보다 둘째 날이 나을 것이고,
둘째 날보다 셋째 날이 나을 것이지만,
힘써 밀어내지 않으면
그것은 언제든 계속해서
스물스물 올라오고야 만다.
어쨌든 첫 날만 넘기면 강도는 다소 약해진다.
그 다음은 숨이 차오를 때 강한 좌절이 찾아올 것이다.
아다시피 체력에는 두 종류가 있지 않더냐. 폐활량과 근력.
근력보다는 폐활량에서 더 큰 좌절이 오게 마련이다.
팔다리 근육보다
폐/심장의 장기가 마음과 더 가깝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겨낼 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그러나, 반드시 ‘쉬는 시간’은 주어지게 되어 있다.
‘쉬는 시간’을 바라보며 견딜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전체 일수 중 절반은 왕노릇 할 것이지만,
절반이 넘어가면서는
첫 번째 달게 될 계급(장)을
선망하게 될 것인데,
그러고 나면 희망이 들어 찰 것이다.
가령, 네가 지금 볼 때
역전이나 터미널에서
작대기 하나 달린 이병 계급 군인 보면 어떻게 보이드나.
까마득해 보이자?
그러나 그 일반 병사들이 훈련 기간 말미에는
그 작대기 하나가
마치 별 처럼 여겨지게 되어 있단다.
통상 4-5주면 사람이 그렇게 바뀌는기라…
이 리듬에 순응하거라.
♤
이것은 군대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면서 희망을 산출하고 치환해내는 기술에 관한 예시일 것이다.
또한 이것은 인간 만이 지니고 있는 위대한 능력이기도 하다.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 앤디와 한 날 감옥에 들어갔던
뚱보 죄수는 그 첫 날의 두려움을 넘기지 못해
죽고 말았다.
유기수(有期囚)는 자신이 감옥에서 나갈 날을 (비교적 손쉽게) 희망으로 환산할 것이다.
그러나 무기수(無期囚)는 희망으로 환산할 날짜가 없다.
이때,
니체는 이 문제에 대해 별로 해줄 수 있는 답변이 없었기 때문에
초인(Übermensch*)이라는 개념을 들여왔다.
[*돌고 돌면 Superman 된다는ㅡ cf. 윤회]
그러나 그것은 결과적으로 희망이라는 관념까지 죽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많은 사람이 관념을 학살하는데 동참했고
또 지금도 그 학살을 자행하고 있지만
관념은 거짓이 아니라
무기수로 하여금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다음) 세상을 희망으로 치환해낼 수 유일한 자산이다.
니체와 같은 사조가 유행하게 됨에 따라
이 세상에 초인(Übermensch)보다는 흉악한 파괴자(Frankenstein/프랑켄쉬타인)가 들끓게 된 것은 다 그런 까닭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 땅이 감옥이요 우리 모두 무기수인 까닭인 것이다.
* 어차피 죽을 몸인데 자살이 금지된 것도 이 감옥/무기수 원리에 상응한 것이되, 희망이 제거되면 아무리 좋은 철학도 신학도 죽음의 원리에 종사하게 되고 마는 법이다. 경계하라.
* 희망은 왜/어떻게 솟아나는가: “하나님이…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전 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