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에는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라는 말이 있다. 그러면서 그 영에 대해 이르기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하면서 구별을 시킨다.
그렇다면 이책 ‘영혼사용설명서’에서는 먹고 마시며 느끼는 영이라고 했는데 그 영은 무슨 영인가?
ㅡ하고 생각할 수 있다
영이 다르다기보다는 어휘를 다른 어휘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성서에서 해당 구절 전체를 옮겨오면 이런 내용이다.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11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2:10-12
여기서의 영은 ‘영혼사용설명서’에서 말하는 영 ψυχή(프쉬케)가 아니다
프뉴마(πνεύμα)를 말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 윗절 10절에 하나님의 영도 프뉴마(πνεύμα)라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성령이나 사람의 영을 표기할 때 함께 프뉴마를 쓰고 있는데 번역만 영, 성령 구분지은 것이다.
그렇다면 성서에서 프쉬케는 무엇인가?
그래서 성서 번역자나 조직신학자는 프쉬케는 단지 ‘목숨’ 정도로 여기는 경향의 (그리하여 ‘혼’과 ‘영’을 나누고 마는) ‘조직’적 이해를 펼치게 되었는데,
사실 성서는 전체적으로 이런 용어상의 조직을 갖추고 있지는 않다
어떤 때는 성령을 그냥 영으로 표기,
어떤 때는 그냥 영을 성령으로 표기,
또 어떤 때는 이들 둘 혹은 셋을 명확히 구별해야 할 때가 있다.
유념해야 할 사실은 이 한 가지다.
그렇게 기계적인 분할이 아니라는 것이다.
‘영혼사용설명서’가 이런 이해의 폭을 조력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