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시절 어느 해인가 신년에 강북의 한 대형 교회 새벽 예배에 참석한 일이 있다.
새벽인지라 좌석에 사람이 드문 드문 앉아 있었는데 내가 앉은 좌석 저 편에 한 분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서인가 많이 본 분인데?
그를 기억하는 이유는 키가 아주 작은데다가 등이 굽은 척추 후만증(Kyphosis, 곱추)이 있는 할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가 누구인지 생각났다. 서울역 근방의 한 육교에서 구걸을 하는 사람이었다.
(참고로 그는 지저분한 노숙자 행색이 아니었다. 정갈하게 입은 단정한 거지, 한 마디로 직업이 거지였다.)
그렇게 그를 기억해내고는 나는 큰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거지가 교회를 다니다니…
당시에는 내가 무엇 때문에 충격을 받았는지 몰랐으나 이제는 원인도 알고 설명도 할 수준이 되었다.
당시 초신자였던 나는 기독교라는 것이 그래도 어느 정도는 살 만한 사람이 믿는 종교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그가 살 만하지 않았을 거라고 여기는 것 자체가 예단이지만,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최고급 자가용도 자동차고
최저가 자가용도 자동차다.
그런데 여기서 풀옵션의 최고급 승용차에만 있는 기능은 차가 갖는 본질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풀옵션의 최고급 차보다 폐차 직전의 자동차가 본질에 응할 때가 있다. 사력을 다해 나와 내 가족을 태우다가 그만 수명이 다했을 때이다. 나를 격조있게 꾸며주는 차는 차의 본성은 아니다.
신앙에 있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향유하는 가장 기초에 응할 때에 본질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인 것이다.
이때 이 일용할 양식을 #영혼사용설명서 에서는
‘영양섭취(능력)’이라고 부른다.
식욕이 아니다.
‘영양섭취능력’이다.
통닭이나 갈비 먹고 싶은 능력이 아니라
‘영양섭취능력’이다.
이것이 영혼의 제1의적 능력이다.
약간 사악한 영의 소유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 제1의 권능을 이드(Id)라고 지목했다.
그러나 Id는 욕구 곧, 두 번째 힘이지 첫째 능력은 아니다.
* 청년 시절 초신자 때 나는 기독교가 약간 살만한 사람들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믿는 종교인 줄 알고 있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