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
―이라고 했을 때,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
―이라고 했을 때,
1) 도(道)는 λόγος를 번역한 말이다.
2) 그래서 영어 역본에서는 word, message, preaching으로 번역들 하지만 도(道)가 더 적절하다.
공동번역은 ‘이치’라고 번역하기도 했다.
3) 그런데 여기서 ‘십자가의 도’는
‘십자가=도(道)’가 아니라,
‘도(道)=십자가’이다.
4) Ὁ λόγος (γὰρ) ὁ τοῦ σταυροῦ 를
대부분 (for) the λόγος of the cross로 번역하지만,
실상은 (for) the λόγος that of the cross이기 때문이다.
5)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명절에 믿지 않고 죽은 부모에 대한 기념(제사) 문제를 접근할 때,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라고 적용하는 바람에
자기 부모를 악령으로 강제 받는데서 분란이 야기되지만,
‘십자가의 도’는 부모님에 대한 효를 소급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길(Ὁ λόγος)이기 때문이다.
6) 그것은 이를 테면, 아브라함은 죽은 아내를 아무 곳에나 묻고, 가던 길을 가버릴 수도 있었지만,
아내 묻을 장소를 돈 주고 구입함으로써
바로 그곳이 그동안 추상적이기만 했던 약속의 땅의 실제가 되게 하였다. 그 이전에는 돈 주고 땅을 구입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미련하게도’ 매장지가 후손들의 도(道)가 된 것이다.
(환금성이 빠른 부동산만을 땅의 가치로 여기는 현대적 정서와는 상대적으로 지고한 개념으로
이것이 부활의 유래가 되었다.)
* [*] 1145. Instead of repeating a noun with the article it may suffice to repeat the article: ““ὁ βίος ὁ τῶν ἰδιωτευόντων η:` ὁ τῶν τυραννευόντων” the life of persons in a private station or that of princes” I. 2.4.
* cf. http://www.perseus.tufts.edu/hopper/text?doc=Perseus:text:1999.04.0007:part=4:chapter=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