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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783
    mi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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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이 ‘하나님’인가 ‘하느님’인가에 대한 문제는 이미 많은 논고가 있어 왔지만, 실질적으로 성서의 범주 안에서 번역된 엘로힘(אלהים)의 대응어로서 어느 것이 더 타당한가에 대한 요약이다.

      우선 ‘하나님’과 ‘하느님’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하나님’은

      /명사/ 기독교 ‘하느님’을 개신교에서 이르는 말.

      ㅡ로 정리되어 있는 반면 ‘하느님’은,

      /명사/
      1. 종교: 우주를 창조하고 주재한다고 믿어지는 초자연적인 절대자. 종교적 신앙의 대상으서 각각의 종교에 따라 여러 가지 고유한 이름으로 불리는데, 불가사의한 능력으로써 선악을 판단하고 길흉화복을 인간에게 내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슷한 말] 상제(上帝)ㆍ상천(上天)ㆍ천공(天公)ㆍ천제(天帝)ㆍ현제(玄帝)ㆍ황천(皇天).
      2. 가톨릭: 가톨릭에서, 신봉하는 유일신. 천지의 창조주이며 전지전능하고 영원한 존재로서, 우주 만물을 섭리로 다스린다. [비슷한 말] 상주(上主)ㆍ주(主)ㆍ천주(天主).
      3. 기독교: 그리스 정교회와 프로테스탄트 일부 분파에서 위 2항을 이르는 말.

      ㅡ이라 정리되어 있다.
      ‘하나님’에 대한 정의는 매우 무성의한 반면, ‘하느님’에 대한 정의는 장황하며 참으로 범신론적인 정의가 아닐 수 없다 싶지만 사전에 저렇게 정리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좀더 세밀한 사전들에 등재된 어휘 목록을 보면 ‘하나님’이라는 낱말과는 별개로 우리말의 고어인 ‘아래 아’를 써서 표기한 단어 ‘하ㄴㆍ님’이 등재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하ㄴㆍ님’이라는 옛말의 뜻이 바로 ‘하느님’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어원적으로는 ‘하ㄴㆍ님’(하나님)이 이미 ‘하느님’과 뜻이 같다는 사실이다. (중요)

      대개 개신교인은 ‘하나님’을 ‘한 분 하나님’이라는 의미로서 사용하지만 어원상으로는 ‘하나님’도 ‘하느님’이기에(왜냐하면 ‘하나님’도 ‘하ㄴㆍ님’에서 온 말이므로) ‘한 분’이라는 의미로서의 ‘하나님’은 개신교용으로 상기와 같이 따로 등재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국어사전에 등재된 ‘하나님’이란 원래의 어원을 가진 ‘하ㄴㆍ님’과는 별개의 개신교용 실용어에 불과했던 셈이다.

      그렇다면 개신교에서는 이제 어떻게 정의하면 좋을까.
      ‘하늘님’으로 불러야 하나?

      이를 결정하기 위해 우선 성서에서의 하나님 명칭이 이와 같이 ‘하나님/하느님’으로 표기된 역사적 사유부터 하나씩 정리해 보자.

      1. 역사적 유래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유입된 경로는 가톨릭과 개신교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 그 중에서 앞선 것은 ‘천주실의’ 등 중국을 경유하여 들어온 사상/문헌을 그 효시로 꼽을 수 있겠다. 왜냐하면 이는 선교사들에 의해 들어온 개신교와 달리 우리나라 실학자들에 의해 자의적 전수가 되었던 것이기에 문자적 측면에서 좀더 오랜 유래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중국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마테오 리치는 한자를 쓰는 중국인에게 기독교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연결시키고자 God/θεός라는 어휘를 이미 중국에서 사용하고 있던 천주(天主) 내지는 상제(上帝)를 대응어로 활용했고, 그러한 용어 선점에 따라 우리나라에 가톨릭이 들어올 때도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로 천주(天主)라는 어휘를 쓰는데 무리가 없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하나/느님은 ‘하늘’을 표지하는 우리나라의 빠롤 ‘하늘님’과 연계가 되었다.

      2. 어원적 유래

      그렇다면 ‘하나님/하느님’은 어떻게 하늘을 표지하게 되었을까. 어원적 유래이다. 하나님과 하느님은 둘 다 ‘하늘’의 고어체인 ‘하ㄴㆍㄹ'(하날)에서 유래하였다. 거기에 ‘님’자를 달아 존칭이 되어 ‘하ㄴㆍ님’이 된 것이다. 그 뒤에 ‘아래 아’라 불리는 가운데 점이 탈락되면서 ‘ㅏ’ 또는 ‘ㅡ’로 변화를 일으켜 비로소 ‘하나님’ 또는 ’하느님’이 된다. 다만 이때 개신교에서 유독 ‘하나님’으로 고착된 것은 그 의미가 ‘하나’(one)라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개신교의 선교 경로 특성상 북에서 남의 방향으로 전파되었던 바,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서북 방언이 주류가 되는 과정에서(서북방언은 ‘하ㄴㆍㄹ’이 ‘하날’에 더 가깝게 바뀜) ‘하느님’보다는 ‘하나님’을 선호하게 되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더 이상 ‘하나-님’(One)이 아닐까?
      아직은 단정하기 이르다. 원어적 유래를 하나 더 보자

      3. 원어적 유래

      구약성서에서 하나님 또는 하느님으로 번역된 원어는 엘로힘(אלהים)이다. 이 엘로힘이 우리에게 창조주의 신명(神名)으로 각인되기까지는 언뜻 생각했을 때 창세기에 집중적으로 등장하는 까닭 같지만, 실은 당대의 이교도의 신명으로도 광범위하게 사용된 명칭이라는 점에 모종의 역설이 있다. 즉 이 이름은 한마디로 ‘어떤 신’인 것이다. 그것이 거짓된 신이든 참된 신이든 총체적인 신(성)을 표지한다. 이는 그 이름에 ‘삼위일체’라는 교의를 투영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민족의 신들도 ‘엘로힘’이라 호칭하고 있으며(출 18:11, 출 20:3), 하나님께서 우상을 경계하는 문맥에서도 다 이 ‘엘로힘’(출 32:31, 출 34:17, 출 12:12)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성서를 통하여 만나는 궁극적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만이 아니라 고대 셈족이 사용하던 어휘인 엘로힘은 그야말로 보편적 의미로서의 ‘신’을 표지하는 보통명사였던 것이다. 명시적 구속사의 출발점을 지표하는 하나님 이름으로서 야웨가 고유한 이름이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대목이다.

      하지만 엘로힘이라는 명칭은 범용의 신명이기 때문에 하찮은 이름으로 그렇게 끝낼 이름인 것은 아니다.

      이 이름은 엘(אֵל)이라는 어근 속에서 ‘권세’, ‘강력한 자’… 즉 강한 하나님을 유추할 만한 기표를 보이고 있지만, 울(אוּל)이라는 어근에서는 내장과 몸, 또는 복부를 기호로 삼아 그 힘을 표지함이 매우 독특하다. ‘있다’(to be/ הָיָה)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야웨’(יהוה‬)와는 달리 결코 형이상학적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신, 달신, 별신, 나무신과 같은 아류의 저차원적 기호도 아니다. 특별히 그것은 이 엘로힘이라는 어휘가 다양한 빠롤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야웨’라는 고유성에 가히 비견될 만한 궁극적 구속사 기호를 내보이고 있다는 사실에서 이 신명만이 갖는 진정한 보편으로서의 위상을 드러낸다. 엘로힘 어군의 하나인 에일(אֵיל)의 연계형 명사 아일(אַיִל)에서 그것이 다름 아닌 ‘숫양’이었다는 사실이다.

      אברהם ויקח את־האיל ויעלהו לעלה תחת בנו׃

      ㅡ“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리는” 대목에서 뿔이 수풀에 걸렸던 그 숫양이 바로 이 “엘”이었던 것이다.

      엘로힘이 수풀에 걸려 계셨던 것일까!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는 순간 야웨의 사자가 제지를 가했을 때 벌어진 일이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두 가지 사실을 산출할 수 있다.

      첫째, 우리는 ‘보편’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그 의미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때가 많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런 뜻이 아니라 ‘없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서의 보편인 것이다. 야웨 하나님이 취했던 엘로힘이란 이름이 바로 그런 신명이었던 것이며, 우리말 ‘하나님/하느님’도 마찬가지이다. 양자가 ‘하늘’을 표지한다 하여 그것이 범용의 신이라는 그런 의미는 아니었던 것이다.

      둘째, 우리가 하나님(하날이라는 의미의)을 ‘하나님’(One)으로 사용해도 무방하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성서에서 엘로힘을 부를 때에 굳이 그것을 ‘내장과 복부’ 또는 ‘숫양’으로 의미가 회귀하지는 않듯이, ‘하날’의 하나님을 ‘하나’(One)로서의 하나님이라 불렀다 해서 그것이 결코 부당한 것은 아닌 이치이다. 왜냐하면 이 보편의 신명이 단수로서의 하나(one)라는 의미를 넘어서 무엇보다도 일치(Oneness)라는 기호로 집약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이삭 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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