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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42
    mimoon12
    키 마스터

      ‘카톨릭ㅡ'(국내에선 이 말을 ‘가톨릭’으로 부른다. 순번을 가장 앞으로 바꿔치기하려고) 하면, 개신교에서는 무슨 사교의 명칭처럼 여기지만 카톨릭은 ‘복음’의 실제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용어다.

      ‘Universal'(일반적인, 보편적인)이라는 뜻을 가진 이 ‘카톨릭’은 희랍어 카톨루(καθόλου)에서 온 말로서,
      κατά와 ὅλος가 합쳐서 된 말이다.

      가령,
      ‘카타(κατά) 요아넨~’ 하면 ‘요한에 따른 복음서’, 곧 요한복음이 된다.

      ‘카타 홀로스(ὅλος)~’ 하면 ‘전체에 따른ㅡ’
      ㅡ모두의 (복음)가 되는 것이다.

      ‘복음’이라는 전제는 반드시 카톨루(καθόλου)이어야 하기에 카톨릭은 중요한 개념이다.

      ‘보편’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기독교가 한국에까지 왔겠는가.

      베드로는 성령을 받고서 용기를 얻어
      ‘예수 사건’을 전체/홀로스(ὅλος)에게 진정했다.
      보복의 심정으로 했을까,
      설득의 심정으로 했을까,
      설득을 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마음에 찔렸다고 했다.
      설득에 성공한 것이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우리가 어이할꼬ㅡ” 하였다.
      이말은
      “이미 (예수를) 저렇게 죽여 놓았는데 어이할꼬ㅡ”
      하는 의미로 갈음한다.

      하지만 스데반은 달랐다.
      보편적이지 않은 라디칼한 논조로 저격을 일삼았다.
      그 말을 듣고 베드로 때와 똑같이 ‘마음이 찔렸다’고 기록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었다.

      바울에게 와서야 비로소
      카타 홀로스(ὅλος), ‘보편’이라는 합의 결과를 획득하여
      ‘예수 사건’은
      세계적인 계시가 되었다.

      자신이 들고 있는 태극기가 어떤 태극기인지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역사는 베드로의 전통도, 스데반의 급진도 모두 가치로 수용한다.
      그러나 ‘보편'(일반적으로)은 대충이라는 뜻이 아니라 가장 본질이라는 뜻이다.

      이 보편의 힘으로 구원을 받게된 피선교국 한국(인)은 그 보편을 한국산으로 만들려는 종교성이 강한데,
      종교적 교리에서 뿐 아니라,

      태극기라는 범용의 기호의 활용에서도 그런 경향이 있다.

      십자가는 본래 삼천년도 더 된 형틀의 상징이었으나
      목걸이로 쓸 정도로 기호의 탈환을 이룩한 것은 바로 보편의 권능이다.

      아모스는 이르기를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
      ㅡ라 하였는데
      70인역이 바로 이 의합해 동행하는 걸 카톨루 (καθόλου*)로 번역하고 있다.

      * εἰ πορεύσονται δύο ἐπὶ τὸ αὐτὸ καθόλου ἐὰν μὴ γνωρίσωσιν ἑαυτού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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