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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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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 1장 2절 주석

      앞의 1절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끝났기 때문에 “땅이 혼돈하고…”로 시작하는 2절은 마치 분리되어 읽히지만 원전에서는 “베 하레트 하예타”(그런데 그 땅이 혼돈하고)이다. 문법상 ‘그런데 그’(베 하레트/ 접속사+정관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완벽한 인과를 표명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혼돈하고”란 도저히 생물이 살아갈 수 없는 상태임을 고한다. ‘혼돈’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토후’는 공허하고 헛된 상태로(삼상 12:21; 사 40:17) 형체가 전혀 없는 황량한 상태를 말한다. 이 ‘토후’라는 단어가 노아의 홍수 장면에서도 유사하게 등장한다. “공허하며”를 뜻하는 히브리어 ‘보후’는 주로 void(공허한)으로 번역되어 왔다. ‘토우’와는 마치 한 쌍처럼 서술된다. 토우와 마찬가지로 갖추어진 것이 없는 환경을 표지한다. 그러므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였다”는 것은 우리가 사는 이 땅이 무가치하고 무질서하고 황량하게 비어 있어 조화를 갖추지 않은 상태, 즉 생물/생명체가 살 수 없었던 환경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을 서술하는데 있어 원어의 리듬이 “…하고 …하며”(…was…was)를 띠고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는 앞서 말한 대로 혼돈/카오스를 표현하는 시제의 운율이다. 이러한 카오스를 의인화된 악/사탄의 인격적 상태로 연결지어 설명하는 데는 상당한 신학적 주의가 필요하다. 가령 유다서 등의 표현들, 즉 하나님에게 거역한 사탄(군대)이 하나님의 심판에 갇힌 상태를 이 창세기와 이어가는 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창세기를 읽어내는 좋은 습관이 아니다. 창세기가 빛을 비치는 만큼만 읽을 일이다. 그러면 그 거악의 시절은 우리가 사는 현재의 흑암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에서 ‘흑암’은 빛과의 대립이나 그 빛은 가시광선으로서의 빛만이 아니라 포괄적 빛을 내포한다. 참고로 “어둠이 깊은 물 위에 뒤덮여 있었고”라는 번역도 있다(공동번역). ‘깊음’으로 번역된 ‘테홈’은 ‘깊은 바다’(시 42:7; 겔 31:15) 또는 깊은 지하수의 근원지(시 78:15)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노아의 홍수에서 다시 한번 이 어휘가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창 7:11). 그러니까 ‘토후’, ‘보우’, ‘테홈’은 미분화된 물을 분화시켜 질서를 잡아나가는 주요 어휘로서, 하나님께서는 제1장 천지창조에서 한번만 역사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주신 인간의 환경이 파괴될 때 새로운 창조를 복고하신다는 의미의 주요 술어인 셈이다. 이 창조/재창조의 술어에 덧붙여 빼놓을 수 없는 주체가 하나 더 있다. 바로 “하나님의 신”(루아흐 엘로힘)이다. ‘루아흐’는 ‘바람’(8:1)이나 ‘숨’(욥 9:18)을 가리키는 포괄적 어휘이다. 이 바람이 혼돈으로 가득한 태초의 물에 ‘운행하였다’ 사실과 홍수에 뒤섞인 물을 정리하고 감하셨다는 것은 상통하는 의미이다. 이러한 루아흐의 사역을 조직화된 삼위의 의미로서 ‘성령’에 직접 대입하는 것은 바람직한 구약적 이해가 아니다. 바람은 바람으로, 호흡은 호흡으로, 영은 영으로 창세기가 인도한 만큼만 읽어내는 것이 구약을 읽는 중요한 비결이다. 물론 이것이 하나님의 파이널 에이전트로서 ‘성령’의 사역 범주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런 전제를 벗어 놓고 읽는 것이 창세기에 대한 바람직한 읽기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신이 “운행하시니라”의 본래의 의미는 “알을 품다”(라하프/ רחף)이다. 마치 새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열망하며 알을 품은 은유로도 이해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이런 표현도 있는 것이다.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신 32:11-12).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 23:37; 눅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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