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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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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 1장 3절 주석

      ‘가라사대’(아마르) ― ‘가라사대’는 ‘말하다’의 옛말인 ‘가로되’(가로다)의 높임말로 오늘날에는 쓰지 않는 사어(死語)이다. 그러나 이남덕의 <어원연구>에 따르면 ‘가로다’(가라사대)는 ‘풀다’(loose)를 뜻하는 ‘가르다’(divide)와 계보가 같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것이 유교나 불교 경전의 언해체에서 공자 왈(曰) 맹자 왈(曰)로 쓰였던 것은 그 ‘말하다’가 일반적인 말이 아니라 경계를 분명히 하는 ‘가르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가라사대’가 ‘빛’의 존재보다 앞선 그 ‘말’을 표지하기에 제격인 것이다. 실제로 빛이란 ‘말’의 이해를 타고 우리 뇌리의 빛이 되지 않던가. 그런데 이 중차대한 하나님의 ‘가라사대’가 다바르(דָּבַר)가 아닌 아마르(אָמַר)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마르는 히브리어 성경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이다(약 5298회). ‘있다, 이다, 되다’로 번역되는 하야(הָיָה) 동사보다도 더 많이 쓰였다(3561회). 오늘날 해석 과정에서 지나치게 신학화된 다바르에 비하면 흔하디흔한 동사 아마르(‘말하다’)가 빛보다 앞서 있다는 사실은 이 창세기 이전의 혼돈을 의식한 배열일 수 있다. 그 의식이란 마치 욥기에서 볼 수 있었던 언어 산란과도 같은 혼돈일 것이다. 수많은 언어가 일으키는 산란으로 인해 분간을 할 수가 없게 된 세상. 그 언어 산란을 하나님의 아마르(가라사대)가 ‘가르고’ 정지시키고 있는 셈이다. 이 아마르가 6일간의 창조 과정에서 10회나 반복된다. 그러면 창조의 궁극은 무엇인가? 피조세계의 언어를 정지시키는 일이 창조이다. 우리에게 아직 할 말이 많이 남아 있다면 흑암인 셈이다. 이리하여 유대/기독교는 ‘책의 종교’(Religion of Book)가 되었다. 바로 이 ‘가라사대’(가로다, 가르다)가 “빛이 있으라”며 세상을 가르고 있는 것이다. 빛이 말의 부수적 존재라는 사실이 요한복음 첫 장에서 복고되기도 했다. 빛을 “만들다”라 하지 않고 “있으라”고 한 이 특이한 문법은 이후에 전개될 하야(הָיָה) 동사의 특별한 활동과도 관련 있을 것이다. ‘있으라’보다는 ‘되게 하다’(let there be, יְהִ֣י)로 의미를 알고 있으면 좋다. 그것은 이신론적 자연신관(Deism)이 아니라 모든 만물의 운행에 있어 언제나 존재로 임재하는 하나님의 속성을 반영한다. 빛이 없다면 하늘도 땅도 산도 바다도 건물도 자동차도 없는 것이다. 그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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