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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 5절 주석
“낮이라 칭하시고…밤이라 칭하시니라” ― ‘칭하다’ 카라(קָרָא)는 ‘부르다’이다.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름을 부여하는 장면이다. 낮은 빛에서 유래하였고 밤은 어둠에서 유래하였으니 이 양자의 주권이 모두 하나님의 것(시 74:16)이라는 선언이다. ‘부르다’라는 동사 ‘카라’는 선언(proclaim)을 뜻하기 때문이다. 어둠의 주권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말을 어둠을 창조하였다는 의미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그분은 빛과 어둠을 갈라낸 창조주이기 때문이다. 이 어둠과 빛의 순환을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고 제정하는 것은 독특한 세계관이다. 어둠이 먼저 있어서라기보다는 빛이 있을 때만 낮이라는 세계관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계관은 저녁을 하루의 시작으로 셈하는 유대인의 관습의 근거가 되었다. ‘날’ ― 날을 뜻하는 히브리어 ‘욤’(יוֹם)에 대한 여러 이해가 있어왔다. 우선 ‘욤’(날)이 한 시대(Age)를 가리킨다고 보는 입장이 있다. 그렇게 되면 5절, 8절, 13절의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는 운율은 한 시대의 종말과 다른 한 시대의 시작으로 상징화 된다. 시간적인 개념을 초월하고 있는 셈이다(시 90:4; 벧후 3:8). 이런 이해는 의미화에는 기여하겠으나 이 욤 주기의 핵심인 안식일을 간과한다. 욤의 주제는 바로 안식일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욤에 관한 ‘에이지’ 이론에는 요세푸스, 이레니우스, 오리겐 등이 관심을 보였다. 그런가 하면 ‘욤’을 문자적 시간으로 보는 견해도 있어왔다. 언어가 지시하는 일차적 의미에 준해야 한다는 입장에서이다. 일곱 번째 날을 안식일 한 날로 제정했다면 나머지 6일도 그 단위가 같아야 하며 특히 마지막 삼일은 사실상 태양의 주기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문자적 24시간 외에 다른 상징은 있을 수 없다는 견해이다. 이런 견해는 주로 루터나 칼빈에게서 나왔다. 상기의 두 입장을 절충한 듯한 ‘욤’에 관한 이해도 있다. 태양이 창조되기 나흘 전 3일은 인간계의 하루와는 다른 개념의 시간이며 그 뒤로 이어지는 3일은 우리가 인식하는 시간 개념이라는 견해이다. 이러한 이해는 어거스틴과 바빙크에게서 찾아볼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복잡한 동기로 창조를 하셨을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