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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 16절 주석
앞서 7절에서 ‘궁창을 만드사’라는 표현에서 개역뿐 아니라 개역개정, 공동번역, 표준번역 등 대부분의 공번역이 ‘만들다’라는 동사를 유지하는 바람에 1장에서 구사하고 있는 ‘만들다’의 진정한 의미를 가리고 있다. 7절에서의 ‘만드사’는 ‘바라’(ברא)이고 여기 16절에서 광명을 ‘만드사’는 ‘아사’(עָשָׂה) 동사이다. ‘궁창을 만드사’는 ‘만들다’라기보다는 ‘가르다’(devide)가 더 맞는 번역이다. 1장은 이 ‘아사’ 동사를 대단히 의식적으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법식대로 읽어줘야 한다. 아사를 쓰고 있는 구절들은 우선 “씨 맺는 채소를 내라”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고 했을 때 ‘맺는’으로 쓰였다. 그리고 땅의 짐승과 육축을 종류대로 만들 때도 동사 ‘아사’를 썼다. 아울러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할 때도 이 ‘아사’를 쓴다(식물의 씨 맺는 운율과 인간의 형상을 맺는 운율의 유사는 11-12절 주석을 반드시 참조). 끝으로 여섯째 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강조한 그 대상이 또한 ‘아사’ 동사로 지으신 그것들이다. 그렇다면 동사 ‘아사’를 의식적으로 쓰고 있는 그 의식은 대체 무엇인가? 두 가지로 집약할 수 있다. 첫째, ‘빚었다’고 하는 형태소적(shape) 의식이다. 둘째, 그 첫 번째 의식과 연하여서 형태소란 구체적으로 씨 또는 열매로서의 의미소를 잇는 생명소라 할 수 있다. 즉 광명은 빛의 열매인 셈이다. 그러나 이 두 개의 큰 광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독자는 유추할 수 있는데도 이 창조의 서막에서는 끝까지 그 이름이 태양과 달임을 명시하지 않고 있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당대의 태양신을 아카드어로 샤마쉬(Shamash)라 부르고 달신을 우가릿어로 야리쿠(Yarikhu)라 불렀는데 태양을 뜻하는 쉐메쉬(שֶׁמֶשׁ)와 달을 뜻하는 야레크(יָרֵחַ)의 각 음가가 이들 이교 신과 혼동을 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이다. 둘째, 이들 두 우상의 이름을 제거해버림으로써 이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음을 밝히려는, 다시 말해 안티미톨로지(Anti-mythology) 곧 반(反)신화 테제였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