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_post_view]
- 이 주제에는 0개 답변, 1명 참여가 있으며 mimoon가 4 년, 10 월 전에 전에 마지막으로 업데이트했습니다.
-
글쓴이글
-
2020-01-22 8:14 오전 #8970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다.” 라는 선언이 앞의 26절에 이어 반복되는 이유는 그 ‘사람’에 관한 구성을 명확히 해두기 위함이다. 그 구성의 기초는 ‘남자’와 ‘여자’이다. 남자를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 셋이 있다. 아담(אָדָם), 이쉬(איש), 에노스(אֱנוֹשׁ). 구약성서에서 522회 나오는 아담은 흙/적토를 뜻하는 아다마(אֲדָמָה)에서 온 말이라는 유래에 기인하여 창세기 서막에서는 특화시켜 사용했다. “…사람을 창조하시되…”라 하였을 때 ‘사람’은 보통명사인 동시에 고유명사인 아담이다. 에노스는 불특정한 ‘어떤 남자’를 지목할 때 주로 사용된 편이다(222회). 그리고 이쉬는 구약성서에서 ‘남자’로서 가장 많이 사용된 말이다. 무려 2006회. 그런데 여기서 ‘남자’라는 명칭에 이 빈도수 높은 단어들을 안 쓰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편 여자를 뜻하는 어휘는 이샤(אִשָּׁה), 켈라(חֶלְאָה) 그리고 네케바(נְקֵבָה) 정도를 들 수 있다. 이샤는 남성 이쉬에 상응하는 단어로서 구약성서에서 781회 사용될 정도로 빈도수가 가장 높다. 켈라는 2회밖에 안 나온다. 여성을 ‘이스라엘 여자’로 특정하는 단어이다. 끝으로 네케바는 남성과 여성 암수를 구별할 때 여성성을 표지하는 단어이다. 이 구절에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 하였을 때 ‘여자’란 이 암수/자웅을 명확히 표지하는 여성성의 ‘네케바’이다. 바로 이 여성성 네케바와 짝을 맞추어 자웅으로서 남성성을 뜻하는 ‘자카’(זָכָר)를 쓴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의 기초 구성은 여성성(네케바)과 남성성(자카)인 셈이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는 이들 ‘남성성’과 ‘여성성’보다 중요한 말이 있다. ‘창조하다’라는 동사다. 한글이나 영어에서는 이 동사의 쓰임새에 대한 엄격한 구별이 드러나지를 않지만, 여기서 아사(עָשָׂה)를 쓰지 않고 바라(בָּרָא) 동사를 썼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만들다, 창조하다’라는 의미에서는 비슷한 단어임에도 아사 동사와 엄격하게 구별해 쓰는 이 바라 동사가 창세기 1장에서 총 5회 사용되었는데 여기 27절에서만 3회를 쓰고 있는 까닭이다. 이 3회를 그대로 담아 모두 번역해 옮길 경우에는 말이 엉성해지므로 개역성경은 ‘창조하다’란 말을 1회 생략하고서 번역했다(“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개정판에서는 3회를 그대로 옮기는 바람에 실제로 엉성해졌다.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개역개정)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바라 동사를 단지 ‘만들기’라는 조형에서만 이해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구현되고 있는 바라 동사의 엄격한 의미를 살려 옮기면 이런 말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창조하셨다(בָּרָא) // 사람(아담)을 자신의 형상대로 //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 그는 그렇게 나누셨다(בָּרָא) // 남자와 여자로 그는 그들을 나누셨다(בָּרָא).”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철학자 필로(Φίλων)는 이 대목을 주석할 때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을 가미하여 ‘아담’에게는 원래 남성성과 여성성이 함께 들어있었는데 그 양성이 ‘분리’된 것이라는 우화적 이해를 발표한 일이 있다. 그것은 남성성과 여성성의 동일 결합체로 보았던 헬라 사상을 은유로 채용한 유비(analogy)로서 근대 심리학에 채용되기도 한 고대의 헬라식 관념 이해이다. (그리스-로마에 동성애가 만연했던 동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우화의 본질은 헬라식으로 미분화된 관념 동일체를 완전체로 지향해서가 아니라, 신체적으로 명확하게 분리되고 구별된 두 자웅으로서의 성 정체를 궁극적 원형으로 지향한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둘째, 이들 분명한 두 개체는 궁극적 완전-결합체인 ‘가정’(Home)의 질료였기 때문이다. 토라(Torah)의 첫 책 첫 글자를 ‘집’을 뜻하는 베트(ב)로 시작한 이유와 유관하다(말 2:15 참조). 그럼에도 현대 사회는 남자와 여자라는 성 정체성을 관념에만 준거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가정을 파괴한다. 1장에서 5회 사용된 바라(‘나누다’) 동사가 가장 첫 절인 1절에서 하늘과 땅이 ‘나뉠 때’ 사용된 점을 유념할 것이다. 하늘과 땅이 섞이면 혼돈의 세계요 죄악의 관영이라는(창 6:4-5) 언명의 현시가 바로 이곳 27절 ‘남자’와 ‘여자’의 분명한 ‘나뉨’으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
글쓴이글
- 답변은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