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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 28절 주석
린 화이트(Lynn White)처럼 과정신학 하는 사람들이 기독교를 가리켜, “‘땅을 정복하라’는 창세기 1:28의 말씀을 근거로 기독교가 환경파괴에 앞장섰다”고 고발하였을 때 적지 않은 신학자들이 콤플렉스를 극복 못하고서 창조신학을 환경보호 신학으로 전락시켰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라고 말한 ‘그들’은 인간이다. 22절에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속의 ‘그들’은 동물이지만 28절에서 축복의 대상은 인간인 것이다. 그 축복의 조건도 다르다. 22절에서는 생육(פָרָה), 번성(רָבָה), 충만(מָלֵא)이었지만, 28절에서 인간에게는 생육, 번성, 충만에 덧붙여 정복(כָּבַשׁ)하고 지배(רָדָה)하라는 조건이 더 주어졌다. 즉, 엄밀한 의미에서 환경을 파괴하는 것만큼이나 본질을 파괴하는 행위가 바로 정복과 지배의 케류그마를 대신 해 콤플렉스로 채우는 일이다. 정복/카바쉬(כָּבַשׁ)에는 여러 의미가 포함된다. ‘발로 밟다’(미 7:19), ‘복종케 하다’(민 32:22)란 뜻도 있지만 그 중 ‘토벌하라’는 뜻도 있다. 이는 약자를 정복하고 예속화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카바쉬의 본질이 아니며, 오히려 약자를 괴롭히는 권세들이 주된 토벌 대상이다. 근래에 창궐하는 권세는 대부분 약자의 영혼을 점령해 포주의 이익으로 권력을 탈취하는 권세가 대부분이다. 이들이 토벌의 대상이다. 지배/라다(רָדָה)는 22절에서 ‘그들’(동물들)에게 명했던 생육, 번성, 충만에 대한 궁극적 ‘책임’이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다. 창세기 1장에서의 인간에게 주어진 식물은 이들 동물과 마찬가지로 채식에 한정되었기 때문에 “땅을 정복하라”는 문장으로 기독교가 환경을 파괴하였다는 린 화이트 같은 사람들의 주장은 적어도 이 문맥에 대한 도단(道斷)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