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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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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 2장 3절 주석

      일곱은 완전수이다. 아브라함은 175세까지 살았는데 175세는 (5×5)가 7번 된 수이다. 그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의 가족이 이집트로 들어갈 때 그 인수는 70명이었다. 모세는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원로를 70명 뽑았다. 이는 완전수로 여겨지는 7을 주기의 완전수인 10을 연산한 결과인데, 시편의 저자는 인간의 수명을 대략 70세로 보았으며 예레미야는 바벨론에서의 유배 기간을 70년으로 내다보았다. 이 주석에서 자주 인용되는 70인 역(히브리어를 헬라어로 옮긴 역서)도 70명이 번역을 했다는 데서 유래한 역본 명칭이다. 12수도 완전수지만 이미 7도 완전수였던 것이다. 12사도를 대체하는 듯한 인상을 부여 받은 초대교회 집사들의 인수는 모두 일곱이었다고 사도행전은 기록한다. 그러나 이 완전수는 성서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길가메쉬 서사시>에서 길가메쉬가 여행을 마치고 도시 우루크로 돌아왔을 때 그를 맞은 현자 압갈루는 7명이었다. 그 우르크에 기근이 들었던 기간도 7년이다. 저승의 구덩이도 7개였다. 길가메쉬의 적수였다 친구가 된 엔키두가 죽었을 때 길가메쉬는 7일 밤낮을 코에서 벌레가 기어 나올 때까지 울어댔다. 본래 엔키두는 길가메쉬가 포악하고 못된 지배자였을 당시 신들이 길가메쉬를 처리하기 위해 보낸 괴수였다. 길가메쉬의 악행 중 가장 악랄한 것은 혼인하는 신부와의 첫날밤을 신랑이 아닌 길가메쉬 자신이 차지했던 악행으로, ‘Jus primae noctis’(초야권, 初夜権)이라는 라틴어로 보전되어 있을 정도로 지배자들의 악한 관습을 상징화하고 있다. 이러한 악행을 다스리기 위해 보내진 엔키두 역시 초기에는 통제가 안 되는 괴수였는데 신전 여사제가 길가메쉬와 싸울 장수로 길들이기 위한 동침 행위 기간이 또한 7일이다. 일곱 수는 이와 같이 보편의 완전수이지만 <길가메쉬>와 같은 고대 서사가 이 완전수를 점용하는 수법을 통해 고대 종교의 자리를 엿볼 수 있다. 당대 지배자들의 무한 권력 그리고 그것을 방어하기 위한 기제로서 주로 성적 행위가 종교로 해소되었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고대 종교와 그 거점이 된 신전이 성적이고도 매음 성격이 짙었던 이유이며, 이는 우상숭배와 음행을 동의어로 간주하는 성서 어법의 동인이기도 하다. 성서에서는 이 일곱 완전수가 처음 적용될 때 “일곱째 날을 복주사”라고 하였음에 유의할 것이다. 일곱째 날[에] 복준 것이 아니라 일곱째 날[을] 복주신 것이다. 복의 대상은 ‘날’이지 ‘일곱째’가 아니다. <길가메쉬>로 집약된 뭔가 어떤 (거듭) 행위를 통해 좋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날’에 진입해야만 좋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를 테면 ‘제 7일안식일예수재림교(안식교)’와 같은 명칭은 넌센스인 것이다. ‘일곱째 날’은 ‘한 날’이기 때문이다. 이 한 날을 “거룩하게 하셨으니” 여기서 카다쉬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다. 여기서 ‘그 날’에 임하는 카다쉬(קָדַשׁ)는 ‘거룩하다’라기보다는 ‘거룩하게 하다’ 즉 ‘거룩하다고 선언하다’가 원래의 뜻이다. 거룩해야만 그 날에 진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날에 진입해야만 거룩하다고 선언되는 이치이다. 이것이 유대/기독교를 관통하는 ‘안식일’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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