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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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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 2장 21절 주석

      하나님이 아담을 위하여 아담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들었다고 하였을 때 이 의미를 해부학적으로 이해하는 것만큼 무지한 이해도 없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남성의 갈빗대 수가 여성보다 한 개 부족하다고 믿는 현대 기독교인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갈빗대로 번역된 쩰라(צֵלָע)는 ‘갈빗대’뿐 아니라 ‘옆’(곁)을 뜻하는 총체적 의미이며, 23절에서 아담이 ‘뼈’(עֶצֶם)라고 지칭하였기 때문에 그것이 갈빗대임을 확정한다. 특히 여기서는 복수인 쩰로타브(צַּלְעֹתָ֔יו)로 쓰였다. 갈빗대 한 줄이 아니라 갈빗대들인 셈이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이 문맥의 제1 주제란 ‘어찌하여 아담의 짝이 흙이 아닌 뼈에서 비롯되었는지’에 관한 탐문으로 좁힐 수 있다. 이 이야기가 과학적 동기가 아닌 윤리적 동기의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뼈와 살’은 형이상학적 신과 인간이 교제를 하는 주된 형식이다. 그것은 단편적 종교를 넘어서는 형식이다. 동물의 뼈와 살을 다루는 일은 고대 히브리인의 유서 깊은 관습으로 그들의 법전에까지 수록되어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기 전 500년 가까이 유지된 격식이지만, 비단 그것은 히브리 문명뿐 아니라 헬라의 전통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격식이다. 헬라인도 히브리인처럼 동물의 살과 기름을 태우는 방식의 동물성 제사로 신과 교제를 해 온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신과의 이 같은 협정 제사에서 뼈를 윤기 나는 비계로 감싼 제물 한 덩이와 살코기를 가죽으로 감싼 제물 한 덩이를 놓고 신으로 하여금 고르게 하여 비계는 신이 가져가게 하고(윤기가 흐르므로) 살코기는 자신이 차지했다는 프로메테우스 제사 이야기 따위는 다 ‘뼈와 살’을 기호로 삼은 대표적 우화이다. 이 우화는 윤기 흐르는 비계와 뼈를 가져가 속았다고 생각한 헬라의 신이 이를 벌하기 위해 내려 보낸 존재가 최초의 여성 판도라이며 그 헬라의 첫 인간 여성 판도라는 지식과 관련 있다는 의미로써 히브리인들의 기호와 통한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Προμηθεΰς) 프로메테우스와는 달리 ‘행동하고 생각하는 사람’(Ἐπιμηθεύς) 에피메테우스가 깊은 생각도 없이 선뜻 판도라를 아내로 맞은 사실은, 지식 나무의 열매를 범하는 하와가 아담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에서 비롯된 배필이라는 사실에 상응하는 윤리이기 때문이다. 헬라의 신은 가짜 제물에 상응하는 선물로서 모든 재앙 속에 희망을 감춰두어(판도라Πανδώρα는 모든 선물이란 뜻) 자신이 속은 것에 대한 앙갚음을 하였지만, 창세기의 하나님은 이 헬라 신화로 대변되는 인류의 구제할 수 없는 재앙의 근원을 말려버리기 위한 조력자로서 아담에게 배필을 이끌어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라는 문장에서 앞의 ‘잠’은 숙면을 뜻하는 타르데마(תַּרְדֵּמָה)이며 뒤의 ‘잠’은 만성적인 수면을 뜻하는 야센(יָשֵׁן)으로, 굳이 두 잠을 구별하여 구성한 것은 이 이야기가 단순 신화가 아니라 그 신화를 압도하는 구원사 맥락임을 방증한다. 마치 아담에게 선물(δῶρον, 도론)처럼 이끌려온 이 여성의 출현은 재앙에 관한 헬라적 유래에 동조라기보다는 세계 그 모든 재앙을 전복시키기 위해 창조주께서 마련한 프리퀄인 셈이다. 이것은 ‘사람’을 뜻하는 히브리어 보통명사 ‘아담’(אָדָם)이 21절부터 비로소 ‘사람’이 아닌 고유명사 ‘아담’이 되는 전거가 되었다. 아담이 인간의 군집을 뜻하는 ‘사람’에서 ‘아담’으로 불리게 되는 것은 히브리어 관사 하(הָ)의 있고 없음의 문제가 아니라(그런 식으로 따지는 구약학자들이 있다), 오로지 ‘돕는 배필’의 존재를 통해서만 비로소 고유한 존재로서 양식을 띠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Προμηθεΰς) 프로메테우스와 ‘생각 없이 행동하는 사람’(Ἐπιμηθεύς) 에피메테우스가 다 같은 인간 군집을 표지하듯이, 또한 첫 번째 아담과 두 번째 아담이 다 같은 군집으로서 ‘사람’의 표지였듯이(롬 5:12-21) 한 원리의 유사에 상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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